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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817
한자 勿染亭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물염로 161[창랑리 373]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조태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66년연표보기 - 물염정 중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1년 - 물염정 보수
문물 지정 일시 2001년 7월 21일연표보기 - 물염정 전라남도 화순군 향토 문화유산 제3호로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4년 - 물염정 광주 전남 8대 정자 제1호로 지정
현 소재지 물염정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물염로 161[창랑리 373]지도보기
성격 누정
양식 단층 끌기와 팔작지붕
정면 칸수 3칸
측면 칸수 3칸
소유자 금성 나씨 남강공파 문중
관리자 금성 나씨 남강공파 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화순군 향토 문화유산 제3호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있는 조선 전기 물염공 송정순이 경영했던 누정.

[개설]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라는 뜻의 물염정물염공 송정순(宋庭筍)[1521~1584]이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던 중 경치가 좋아 띳집을 지은 데서 연유한다. 송정순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중립(中立), 호는 물염정(勿染亭)이며, 담양 출신인 송구(宋駒)의 아들이다. 1558년(명종 13)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조 정랑·구례 현감 등을 지냈다. 성질이 충후(忠厚)하고 효성이 뛰어나 재직 중에 청렴결백하고 덕으로써 정사를 살펴 이름이 높았다. 유희춘(柳希春)과 함께 경사를 강론하였고 송징(宋徵) 등의 문인을 배출하였다. 동복(同福) 창랑(滄浪)에 정자를 세워 거기서 여생을 마친 뒤 담양의 구산 서원(龜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위치]

현재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물염 마을에 위치해 있다. 물염정은 창랑적벽, 망미적벽으로 이어져 있으며 그 아래에는 창랑천이 구비치며 동복댐으로 흘러든다. 앞에 위치한 절벽에는 황어굴이란 동굴이 있다.

[변천]

물염정은 1566년 건립된 후 물염공 송정순은 외손들에게 물염정을 물려주었다. 이 물염정을 물려받은 이가 바로 물염공의 외손 금성 나씨 창주 나무송구엽 나무춘 형제이다. 이후 수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다 1966년에 중창하였고, 이를 다시 1981년에 보수한 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단층 끌기와 팔작지붕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정이다. 외벌대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아 그 위에 원주를 세웠다.

[현황]

정내에 김인후, 이식, 권필, 김창협, 김창흡 등 선비들의 시문이 즐비하며, 23개의 현판이 있다. 또한 이곳 물염정김병연 일명 김삿갓 시인과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누정이다. 현재 물염정 주변에는 그와 관련한 시비와 기념비들이 줄을 지어 서 있어, 마치 그의 평생을 늘어놓은 듯한 풍경을 만든다.

최근 광주광역시 관광 협회와 『무등 일보』가 공동으로 ‘광주 전남 8대 정자 선정 위원회’를 구성하여 물염정을 비롯하여 담양 식영정, 완도 세연정, 광주 호가정, 고성 함허정, 나주 영모정, 영암 회사정, 장흥 부춘정 등을 선정한 바 있는데[2004년], 이때 이곳 물염정을 8대 정자의 제1호로 지정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