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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남 문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836
한자 圭南文集
이칭/별칭 하백원 문집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대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46년연표보기 - 『규남 문집』 간행
소장처 『규남 문집』 소장처 - 국립 중앙 도서관
소장처 『규남 문집』 소장처 - 계명 대학교 도서관
성격 시문집
저자 하백원
편자 하백원
간행자 하태영
권책 7권 3책
행자 11행 24자
규격 사주 쌍변|22.2×16.0㎝[반곽]
어미 상하 2엽|화문 어미
판심제 규남 문집

[정의]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한학자 하백원의 시문집.

[저자]

하백원(河百源)[1781~1845]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에서 출생하였는데, 무등산의 남쪽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호를 규남(圭南)이라고 하였다. 여암 신경준, 존재 위백규, 이재 황윤석 등과 함께 18세기 호남의 4대 실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1804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때부터 53세까지 학문에 전념하고 본격적인 실학 연구에 몸을 바쳤다. 1832년 51세 때 참봉이 되어 벼슬을 했고, 1842년 61세에는 석성 현감으로 나갔으나 지방 토호의 모함으로 충청도로 유배되기도 하였다. 그의 실학 정신에 입각한 작품에는 양수기 같은 자승차, 자명종, 물의 수압을 이용한 강흡기, 타이머 같이 조정하던 약탕로, 소변통을 밭까지 실어 나르던 거북이 등이 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보다 51년이 앞서 제작된 「동국지도」, 「만국전도」, 시서화에도 능하여 「쌍작도」 등이 전한다.

[편찬/간행 경위]

1946년 하백원의 5대손 하태영(河泰永)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송낙헌(宋洛憲)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김문옥(金文鈺)과 하태영 등의 발문이 있다. 1977년 영인 과정에서 권두에 이현종(李鉉淙)의 해제와 하겸진(河謙鎭)의 서문, 그의 작품인 영모(翎毛)·도장, 권말에 「동국지도」·「만국전도」 등을 사진으로 찍어 첨가하였다

[형태/서지]

7권 3책으로 석인본이다. 규격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반곽(半郭)은 22.2×16.0㎝이며, 상하 2엽(上下二葉)의 화문 어미(花紋魚尾)이다.

[구성/내용]

『규남 문집(圭南文集)』의 구성을 보면 권1은 시(詩) 156여수, 권2~3은 서(書) 34편, 권4~5는 잡저(雜著), 권6은 서(序) 10편, 기(記) 3편, 제발(題跋) 10편, 권7은 명(銘) 1편, 상량문(上梁文) 6편, 축문(祝文) 3편, 제문(祭文) 5편, 애사(哀辭) 2편, 가장(家狀) 1편, 부록에는 묘갈명, 가장이 있다.

시 등도 주의해 볼 만하지만, 특히 권5 잡저편의 「호옥재기윤주설변(胡玉齋朞閏註說辨)」, 「역상차록(曆象箚錄)」, 「자승거도해설(自升車圖解說)」, 「자승거도해(自升車圖解)」는 조선 후기 실학 사상의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자승거도해설(自升車圖解說)」, 「자승거도해(自升車圖解)」는 일종의 양수기 역할을 하는 자승거(自升車)를 만들게 된 이유와 도해를 함께 수록하고 있어 주목된다. 1810년 하백원이 30세 되던 해에 작은 가뭄에도 비옥한 들판과 기름진 토양이 타들어가는 것을 근심하는 백성들의 열악한 농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외에 하백원은 술을 따를 때 술잔의 70%만 차게 하는 계영배, 펌프 역할처럼 물의 수압을 이용한 강흡기, 시간이 되면 스스로 소리를 내던 자명종, 청기와, 유리, 벽돌 등의 제조 및 『대동여지도』 보다 51년 앞선 것으로 평가되는 동국지도, 세계지도, 천문도 등이 있었다. 하백원의 시(詩)는 실학사상적인 측면보다는 지방 사림층의 고뇌를 읊은 것이 많다. 하백원은 성리설에 치우친 당시 세태 속에서 유교 경전은 물론 성신(星辰), 율력(律曆), 산수(算數), 전예(篆隸), 도장(圖章) 등에 두루 통달한 진정한 문장가, 성리학자, 실학자, 과학자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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