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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975
한자 金文鈺
이칭/별칭 성옥(聖玉),효당(曉堂)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안동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1년연표보기 - 김문옥 출생
몰년 시기/일시 1960년연표보기 - 김문옥 사망
출생지 김문옥 출생지 - 경상남도 합천군 용주면
거주|이주지 김문옥 이주지 -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수학|강학지 김문옥 강학지 -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절산리
사당|배향지 절산사(節山祠) -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절산리 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광산(光山)

[정의]

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성옥(聖玉), 호는 효당(曉堂). 아버지는 김기추(金琪錘)이고 어머니는 현풍 곽씨(玄風郭氏)이다. 그의 선조는 대대로 광주(光州)에서 거주하였고, 조부는 광주 각화동에서 살았다.

[활동 사항]

김문옥(金文鈺)[1901~1960]은 어려서 아버지에게 『소학(小學)』과 『통감(通鑑)』 등을 배웠다. 1914년에 왜인들의 위협에 못 이겨 합천 보통학교에 들어갔다가 그 해 가을에 학교를 그만두고 무산 정사(武山精舍)에서 율계(栗溪) 정기(鄭琦)에게 수학하였다. 이 때 스승과 문답한 것이 「대학 척의(大學摭義)」이다. 1925년에 중국 학자 영봉(靈峯) 하진무(夏震武)에게 편지를 보내 학문 교류를 청하였다. 1927년 10월에 스승을 따라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으로 이거한 후 경학과 문장에 정진하였다. 이듬해에는 덕천정(德川亭)에서 정기의 문하생들을 맡아 학문을 강론하였다.

1931년에 서울 흑석동에서 살던 정인보(鄭寅普)를 방문하여 홍명희(洪命熙)·안재홍(安在鴻)·변영만(卞榮晩)·임해려(林海旅) 등과 교유하였다. 1933년 5월에 일제 저항을 야기하는 학문을 한다는 이유로 왜경에 체포되어 임실 구치소(任實拘置所)에서 3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고 9월에 다시 순창 구치소로 이감되었다.

1934년 1월에 출감한 뒤 10월에 광산 김씨 집성촌인 지금의 화순군 사평면 절산리로 이주하였다. 이곳에서 윤정복·나갑주·위계도 등 여러 문인들과 학문을 강론하였다. 1948년에 화순군 이양면 오류리로 이거하였고, 이후 장흥군 부산면 호계리에 있는 동백정(冬栢亭), 김제군 와룡리, 벌교읍 부용동, 고읍리 산정동 등지에서 강학 활동을 펼쳤다. 1958년 8월에는 화순군 동복의 적벽(赤壁)에서 시회(詩會)를 열었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효당 문집(曉堂文集)』 16권 9책을 남겼는데 1961년에 후손과 문인들에 의해 발간되었다.

[상훈과 추모]

문인과 유림들이 협력하여 1974년 4월 7일에 절산사(節山祠)를 세우고, 매년 제향을 지내고 있다. 이 사당은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절산리에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10.12 현행화 남면→사평면
이용자 의견
윤** 2020년 1월 1일부터 남면에서 사평면으로 변경 되었습니다. 수정해주세요.
  • 답변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 완료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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