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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효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110
한자 孝子孝婦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덕진

[정의]

전통 시대 화순 지역에서 부모를 섬기는 데 정성을 다한 자녀.

[개설]

효(孝)는 예로부터 백행(百行)의 근본으로 강조되었으며, 가정 질서의 기본이 됨은 물론 국가를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인식되었다. 효에 대하여 『소학(小學)』에서는 ‘부모를 지성으로 섬기는 것’이라 하였고, 『논어(論語)』에서는 ‘예(禮)에 어긋남이 없게 하는 것’이라 정의하였다. 또한 『효경(孝經)』의 첫 장에서는 몸과 머리카락과 피부는 부모한테서 받은 것이니 이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며, 열심히 노력하여 출세함으로써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의 마침이라고 가르쳤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것을 인륜의 근본으로 삼았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효녀 지은(知恩)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자신이 스스로 부잣집 종이 되고, 그 대가로 얻은 쌀로 어머니를 봉양한다는 내용의 대표적인 효의 사례이다.

성리학을 지배 이념으로 채택한 조선 시대에는 국가 차원에서 더욱더 효를 권장하고 아울러 포상도 실시하였다. 즉 세종 때 충신·효자·열부(烈婦)에 관한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전국에 보급하여 효열(孝烈)을 장려하였고,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효자·효손 등 선행을 한 자는 해마다 예조에서 조사·보고하도록 하였다. 또 이들에게 관직이나 물품을 내리거나 특이한 행실이 있으면 정려(旌閭)를 세워주고 세금을 면제해 주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효자에 대한 행적은 문집이나 읍지류에 기록되어 후세에 전해짐으로써 가문의 자랑거리가 됨은 물론 불효를 경계하는 본보기가 되었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를 통하여 효자에 대한 표창과 효를 중요시한 전통은 전국 각지에서 많은 효자를 탄생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한편 효자와 비슷한 개념으로는 효녀(孝女)·효부(孝婦), 조부모를 잘 받들어 모신 순손(順孫) 혹은 효손(孝孫) 등이 있다.

[효자]

화순군의 효자로 다음과 같은 인물이 있다. 고진표(高鎭表)는 효성스러움이 육적(陸績)[회귤고사로 유명한 효자]과 황향(黃香)[아버지를 봉양할 때 더울 때면 침상과 베개를 부채질하고, 추우면 제 몸으로 자리를 따스하게 한 효자]과 다름이 없었다. 장표황(張表晃) 형제, 오인혁(吳仁爀), 김학린(金學隣), 조홍천(曺弘天)은 어버이가 병이 났을 때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드려 수명을 연장시켰다. 유성오(柳成五)는 화재가 나서 사당을 구원하려고 신주를 안고 나오다 죽었다. 문명규(文命圭)는 어버이가 병에 걸리니 천태산에서 약을 찾아 다니다 산삼을 얻었다. 송상언(宋相彦), 배경복(裵景復), 정치업(丁致業)은 부모님의 상(喪)을 당하여 효를 다하여 신묘한 일이 있었다.

조기태(曺基泰)는 저축을 하여 어머니에게 선물을 해드렸으며 조석윤(曺錫胤)은 어릴 때부터 밖에서 과일을 얻으면 품고 돌아와 어버이에게 드려 당시에 효자주(孝子酒)[효자의 술]와 효자어(孝子漁)[효자의 고기]의 이름이 있었다. 그 외에도 공수원(孔洙源), 김용언(金龍彦), 유덕용(柳德容), 문창후(文昌後), 이선리(李先离), 임민기(林敏基), 장내권(張乃權), 정대학(程大鶴), 조신승(曺愼承), 최언숭(崔彦崧), 최주해(崔冑海) 등이 있다.

[효부]

조선 시대 화순군의 효부로 다음과 같은 인물이 있다. 이택화(李宅和)의 자부(子婦) 수원 백씨(水原 白氏)는 황해도에서 시아버지와 시동생의 시신을 지고 오니 조정에서 정문을 세워 포상했다. 임남수(林南洙)의 처(妻) 단양 우씨(丹陽 禹氏)는 남편이 죽은 후 홀로 시부모를 봉양하고 어린아이를 양육하니 향교에서 표창을 했다. 황재출(黃再出)의 처 경주 최씨(慶州 崔氏)는 집에 불이 날 때 시어머니를 구하려다 나오지 못하고 함께 죽으니 조정에서 정려(旌閭)하였다.

[관련 유적]

1610년 동면 복암리에 효자각, 1683년 도암면 용강리에 하동 정씨 쌍효문, 1735년 청풍면 신리에 효자문, 1776년 화순읍 계소리에서 효자각, 1794년 동면 국동리에 효부각, 1869년 이양면 품평리 밀양 박씨 쌍효지려, 이양면 풍평리 청령동에 쌍효각, 1870년 도암면 용강리에 오씨 효자 정려, 1877년 춘양면 부곡리에서 효부각, 1893년 도암면 용강리에 김해 김씨 효자 정려가 건립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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