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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480
한자 -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희송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71년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천암리 마을 진입로 300m 확장 공사 시작
전개 시기/일시 1976년 - 새마을 운동 협동권 사업인 천암 대교 건설 착공
전개 시기/일시 1977년 - 새마을 운동 협동권 사업인 천암 대교 완공
전개 시기/일시 1977년 - 새마을 운동 협동권 사업인 돗재 도로 건설 착공
전개 시기/일시 1980년 - 새마을 운동 협동권 사업인 돗재 도로 완공
발생|시작 장소 천암리 마을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천암리 지도보기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1970년대에 전개된 지역 사회 개발 운동.

[개설]

새마을 운동은 정부가 범국가 차원에서 농민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한 지역 사회 개발 운동이다. 근면·자조·협동의 정신을 바탕으로 농촌 개발과 국가 발전을 추구한 개발주의적 사회 혁신 운동이다.

[역사적 배경]

새마을 운동은 1970년 4월 22일에 박정희 대통령이 부산에서 열린 가뭄 피해 대책 지방 장관 회의에서 ‘새마을 가꾸기 운동’을 제창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이어 1971년 전국 3만 300여 개 마을에 각각 335포대의 시멘트를 무상으로 지원하면서 전국적으로 본격 실시되었다. 당시의 새마을 운동은 지붕 개량, 마을길 확장, 농로 개설, 공동 빨래터 설치 등의 기초적인 환경 개선 사업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시멘트의 무상 지원은 경제 개발 과정에서 과잉 생산된 시멘트 재고를 해소하는 효과와 함께 마을 단위에서 농민 스스로 시멘트 사용처를 결정하게 함으로써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새마을 운동은 마을 회관 건립, 상수도 설치, 소하천 정비, 복합 영농 추진, 축산, 특용 작물 재배 등의 성과로 이어졌다. 중앙 정부와 지방 행정 기관이 자재·보조금·융자 등의 경제적 지원과 경쟁·표창 등의 정치적 지원을 동시에 제공함으로써 새마을 운동에 대한 농민의 참가 의욕을 이끌어냈다. 정부는 또한 새마을 운동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행정력을 최대한 동원하는 한편, 새마을 지도자를 양성하고 작목반, 협동회, 부녀회 등 각종 농촌 협동 조직을 육성하였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은 농촌 새마을 운동을 시작으로 공장 새마을 운동, 직장 새마을 운동, 학교 새마을 운동 등 사회 전체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화순군 역시 이러한 변화에 맞춰 새마을 단체를 설립하였으며, 농업은 물론 화순군의 변화로까지 연결되었다.

[경과]

화순군의 새마을 운동은 1971년 화순군 도곡면 천암리의 마을 진입로 300m를 확장하는 사업부터 시작되었다. 이를 계기로 마을 안길 확장, 담장 개량, 공동 우물 공사 등 기초 환경 개선 사업이 본격화되었다. 도곡면 천암리에서는 1974년에 마을 회관 1동, 마을 창고 1동, 농로 250m 개설, 하천 제방 250m 구축, 1976년에는 특별 지원 사업으로 창고 1동 신축, 1977년에는 새마을 협동권 사업인 천암 대교 건설 완료 등을 함으로써 화순군 새마을 운동의 대표적인 지역이 되었다.

1970년대 화순군의 새마을 운동은 마을 단위 생활환경 개선 운동에서 협동권 사업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협동권 사업은 두 개 이상의 인접 마을이 서로 협동하여 도로나 도수로, 보나 하천 사업 같은 마을 사이의 공동 숙원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마을 사이의 협동 의식을 높이고 투자 효과를 높여가고자 기획된 사업인데, 1976년 착공하여 이듬해 완공된 천암 대교 공사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원화 1구, 원화 2구, 천암, 신덕 3구 등 4개 마을 주민이 참여한 천암 대교 공사는 적은 비에도 4개 마을 주민들의 발이 묶이고 학생들의 등교가 불가능했던 당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었다. 화순군청은 정부로부터 새마을 사업용 비축 시멘트 5,000포를 우선 지원 받아 4개 마을 주민들을 동원하여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천암 대교 공사는 주민들의 숙원 사업이었지만 정부 지원의 부족과 과도한 주민 동원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1977년에 겨우 완공될 수 있었다. 화순 지역의 협동권 새마을 사업은 한천면 돗재 도로 개설 사업으로 이어졌다. 1977년 본격화된 돗재 도로 건설에는 연인원 6,500명의 면민이 동원되어 1980년 9월 완공되었다.

한편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취락 구조 개선 사업은 화순군 내 대부분의 마을에서 추진되었는데 주로 지붕 개량과 좁은 마을길 넓히기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또한 마을별로 새마을 사업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방법으로 새마을 창고[이른바 대통령 하사 창고]가 지어지기도 했다.

[결과]

1970년대 화순군에서 진행된 새마을 운동은 도로 정비, 주거 환경 개선, 마을 회관 건립 등 마을 기간 시설[인프라]을 구축하는 성과로 나타났다. 그런데 새마을 운동을 통한 농촌 지역 기간 시설 구축 작업에는 국가의 지원금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지역 주민들이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였고, 지역 주민들이 직접 부담해야 할 공사비도 상당했다. 1971년부터 1978년 사이에 생산 소득 기반 사업, 공동 이용 시설 구축, 복지 환경 사업 등 총 1만 6759건의 새마을 사업이 추진되었는데, 소요 경비의 73%는 주민 부담으로 충당되었다.

결국 화순군의 새마을 운동은 정부의 지원을 토대로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결합한 지역 사회 개발 운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 부분은 지역민들의 노동력 동원과 경비 충당이라는 동원된 사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1970년대 화순군의 새마을 운동은 화순 지역의 빈곤을 타파하고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지만, 동시에 저곡가 정책에 따른 이농과 지역 공동체 파괴라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했다. 주택 개량 사업, 도로 개설 등 마을 기간 시설 구축의 경제적 혜택은 주민들로 하여금 새마을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였지만 새마을 사업 경비 대부분을 지역 주민들이 부담하면서 이에 대한 반발 또한 상존했다.

[참고문헌]
  • 『화순 군지』(화순 군지 편찬 위원회, 2012)
  • 새마을 운동 중앙회(http://www.saema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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