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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리 정남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812
한자 井南里井南堂山祭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정남리 정남 마을
집필자 서해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마을 공동 제의
의례 시기/일시 음력 1월 14일
신당/신체 느티나무|입석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정남리 정남 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의.

[개설]

화순군 능주면 정남리 정남 마을에서 음력 1월 14일 밤 9시부터 10시까지 지내는 마을 제사를 ‘당산제’라고 한다. 당산제가 1990년대에 복원되면서 이장과 부녀 회장이 당산제와 관련된 전반 사항을 주관하고 있다. 제비는 마을 기금으로 충당하는데, 대략 10만 원 정도 소요된다. 정갈하게 준비한 제물을 가지고 당산 나무와 입석에서 각각 제를 지내는데, 유교식 제차에 따라 엄숙하게 진행된다.

[연원 및 변천]

당산제를 언제부터 지내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현재의 당산 나무 자리에는 원래 수령 150년 정도 되는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1970년대에 태풍 사라호에 의해 소실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나무는 그 이후에 다시 심은 것이다. 이전 당산 나무가 쓰러지기 전에는 능주면정남리석고리가 함께 당산제를 지냈었는데, 태풍으로 인해 당산 나무가 쓰러지면서 당산제가 중단되었다. 그런데 1990년대에 젊은 사람들이 교통사고 등 사를 당하는 일이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의 합의를 거쳐 12년 전 당산제를 다시 복원했다. 당산제를 다시 복원할 때 ‘천상천화무여불’이라는 입석을 당산 나무 앞에 세웠다. 그 이전에는 당산 나무에서만 당산제를 지냈는데, 복원한 이후에는 당산 나무와 입석 두 곳에 제를 지내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당산제는 석고리에 속해 있는 하천가의 ‘당산 나무’와 당산 나무 바로 앞에 위치한 ‘천상천화무여불’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입석이다. 당산 나무의 수령은 30년 정도 되었으며, 수종은 느티나무이다. 입석은 가로 71㎝, 세로 163㎝, 두께 33㎝로 구체적인 신격은 없다고 한다.

[절차]

제일 당일인 음력 정월 14일이 되면 부녀 회장을 중심으로 마을 회관에서 제물을 마련한다. 밤 9시경에 이장과 마을 사람들 중에서 깨끗한 남자 3명이 제물을 들고 제장으로 이동한다. 특별한 복장은 없고 깨끗한 평상복을 입는다. 먼저 당산 나무 앞에 돗자리를 깔고 제물을 진설한다. 제물은 일반 기제사와 같이 삼실과, 탕, 삼채, 마른 명태, 돼지 머리, 시루떡을 올리며 메 두 그릇, 술 두 잔을 올린다. 먼저 이장이 술을 한 잔 올리고 절을 한 후에 참여한 사람들도 술을 올리고 절을 한다. 이때 돼지 머리에 돈을 꽂기도 한다. 축을 읽거나 소지를 하지는 않는다.

당산 나무에서 제가 끝나면 입석 앞에 돗자리를 깔고 다시 한 상을 차린다. 올리는 제물은 동일하다. 당산 나무와 마찬가지로 입석에서도 이장과 제장에 참석한 사람들이 술을 올리고 절을 한다. 모든 절차가 끝나면 제물로 올린 음식을 조금씩 떼어서 당산 나무 아래에 묻는다. 마련한 음식은 당산제가 끝난 뒤 마을 회관에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다.

[부대 행사]

과거에는 당산제를 지낸 다음날부터 집집마다 마당밟이를 했다고 한다. 또한 당산 주변에서 석고리정남리 마을 사람들이 씨름 대결을 하기도 했다. 6·25 전쟁 이전에는 능주면 소재의 5개 마을이 수북과 수남으로 나누어 대동 쌍줄다리기도 했다고 하지만, 6·25 전쟁을 거치면서 줄다리기의 전승이 단절되었고, 태풍으로 인해 당산 나무가 소실되면서 마당밟이의 전승 또한 단절되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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