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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965
한자 口碑傳承
이칭/별칭 구비 문학,구전 문학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집필자 나경수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예전부터 말로 전해져 내려온 무형의 문화 자원.

[개설]

구비 전승이란 구비 문학이라고도 한다. 구비 문학이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말을 통해 전승되는 문학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한자 구(口)와 비(碑)는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진다. ‘구’는 말하는 입을 뜻하며, ‘비’는 기억을 뜻하는 비석과 통한다. 즉 구비 문학이란 발화될 때는 입을 통해서 말로 구현되고, 또 기억을 통해서 전승이 이루어지는 속성을 뜻하는 것이며, 이러한 속성을 가진 문학을 일러 구비 문학이라고 한다.

그러나 구비 전승은 말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때로는 노래로 불리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행위[무용 또는 노동]와 함께 표현되기도 한다. 따라서 구현 방식에 따라서 말로만 이루어진 구술 문학, 노래로 불리는 구창 문학, 행위와 함께 표현되는 구연 문학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구술 문학은 신화, 전설, 민담을 포함한 설화와 속담, 수수께끼 등이 있다. 구창 문학은 일반적인 민요가 이에 속하지만, 잡가, 시조, 가사와 같은 사설류도 구비 전승되는 예가 있다. 구연 문학이란 판소리, 무가, 가면극, 노동요, 의식요, 세시요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설화]

화순의 설화는 그간 몇 차례에 걸쳐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여러 관련 책자가 발간된 바 있다. 본래 설화란 신화·전설·민담을 포함하지만 전승 지역과 관련된 설화는 전설이다. 강동원이 『화순의 전설』을 1982년에 발간한 바 있으며, 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현 한국학 중앙 연구원]에서 1987년에 『한국 구비 문학 대계 6-9(화순편)』를 발간한 바 있다. 또한 1998년 남도 민속 학회에서 현장 조사를 통해서 발간한 『화순군의 민속과 축제』 및 2012년에 발간된 『화순 군지』 등에도 많은 전설이 실려 있다. 화순의 전설 중에서 전국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운주사 전설일 것이다. 또 쌍봉사규봉암 전설도 유명하며, 그 외에 땅이름의 내력을 밝히는 전설들이 많다. 또한 화순군에 와서 방랑 활동을 했던 김삿갓 전설, 의병장 최경창 전설, 화순에서 사약을 받았던 조광조 전설 등 역사적 인물에 관한 전설도 전하고 있다.

[민요]

민요는 민중들의 삶과 함께 해온 노래로 삶의 방식에 적응해서 기능요와 비기능요로 우선 분류된다. 기능요는 일을 하면서 부르는 노동요(勞動謠)와 어떤 종교성을 가진 의식요(儀式謠)로 크게 대별되며, 비기능요는 놀면서 부르는 유희요로 구분한다. 따라서 굳이 3원 분류를 하자면 노동요, 의식요, 유희요로 분별이 가능하다.

화순군에서 불린 다양한 민요들의 사례를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간에 조사 보고된 예로 보면 1983년 강동원의 『화순의 민요』, 1987년 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의 『한국 구비 문학 대계 6-9(화순편)』, 1998년 남도 민속 학회의 『화순군의 민속과 축제』가 있으며, 2010년 화순군에서 발간한 『화순 우봉리와 도장리의 옛 노래와 민속 문화』, 그리고 2012년 화순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나온 『화순 군지』 등에 많은 민요가 실려 있다.

특히 화순군에서는 그간에 춘양면 우봉리에 전승되어 왔던 들노래와 도암면 도장리에서 전승된 밭노래 등을 향토 자료로 지정하여 전승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판소리]

판소리는 17세기에 출현하여 19세기에는 우리나라의 가원(歌苑)을 평정했던 대표적인 성악곡이다. 본래 12마당이 전하다가 현재는 5마당만 전하고 있다. 화순은 호남 지역에서도 음악이 잘 발달했던 곳이다. 다른 지역 못지않게 수많은 명창들이 태어나 활동했으며, 한국 판소리계를 주도했던 인물도 많다. 화순은 전형적인 서편제의 전승지로서 성가가 높지만, 또한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해서 보성제를 익힌 명창들도 많았다.

현재의 화순군은 조선 시대 동복현, 능주현, 화순현 등 세 개의 현이 합해져 하나의 군이 된 곳으로 현청마다 신청(神廳)이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국악이 크게 성행했다. 현재도 남아 전하고 있는 능주의 신청에서는 거의 매일 소리꾼들이 모여 소리공부는 물론 경연과 공연도 즐겼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화순의 명창 출신들은 대개 이들 신청을 중심으로 공부를 하면서 기량을 연마하여 전국적인 성가를 높인 사람들이 많다. 화순의 판소리 계보에 대해서는 남도 민속 학회에서 펴낸 『화순군의 민속과 축제』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출신지와 출생 연도를 기준으로 화순의 대표적인 명창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김채만은 1865년경 능주 지역에서 태어나 박유전과 이날치를 잇는 서편제 3대째의 명창이다. 공창식은 화순 출신의 조동선과 조몽실을 제자로 두었으며, 공대일 명창도 그의 조카로서 소리의 맥을 이었다고 전한다. 조몽실은 1900년 화순군 능주면에서 태어나 같은 마을에 살았던 공창식 명창에게 소리를 배웠다. 조상선은 1903년 능주면 잠정리에서 태어났으며, 정정렬의 수제자이다. 성원목은 1912년 화순 남면에서 태어났으며 김채만에게 소리를 배웠다. 성창순 명창의 아버지이다. 공대일은 1910년 화순군 동면 자포실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판소리에 뜻을 두어 능주면에 살던 공창식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박기채는 1911년 능주면에서 태어났다. 보성소리의 대부인 정응민의 수제자였다. 한일섭은 1929년 이양면 강성리에서 태어났다. 성창순 명창의 아버지인 성원목 명창의 문하에서 어려서부터 수련하여 소년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다. 김동준은 1928년 북면 외아리에서 태어났다. 김채만의 제자였던 박동실에게서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등 3바탕을 이수하였다. 김일구는 1940년 이서면 이서리에서 태어났다. 9세부터 아버지 김동문에게 「춘향가」와 「흥보가」 등을 배우면서 소리의 기초를 닦았다. 박송희는 1927년 화순읍 향청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박정자이며, 박녹주가 지어준 지희라는 예명도 있다. 박초선은 1931년 화순읍 교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봉례이고, 박봉선의 동생이다. 14세부터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공옥진과 함께 공대일에게 「흥보가」와 「수궁가」를 배우면서 소리의 길을 시작하였다. 성우향은 1935년 화순읍 교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성판례이다. 6세부터 안기선에게 「춘향가」를 배웠다. 그 외에도 김막동은 1910년 능주면 잠정리 출신이고, 공기남은 1917년 도곡면 신성리 출생으로 박동실의 제자로 5바탕에 능했으나 박동실과 함께 월북하였다. 박농주는 1925년 동면 마산리 출신으로 박송희 명창의 언니이다. 또한 화순 출신 명창들로는 이진영, 정명수, 조경환, 전일도, 박화기, 정명암, 조명수, 백현옥, 전명옥, 하벽도, 염금달, 박영순, 신평일, 박농월, 박농옥, 박소우, 하벽산, 유일호, 정옥진, 정행옥, 신금월, 조순애, 박봉덕, 임선례, 박금선, 장양금, 김형규, 하재옥 등을 꼽을 수 있다.

판소리는 명창뿐만 아니라 고수의 역할도 중요하다. 고수는 북으로 소리를 받쳐주는 반주자의 역할뿐만 아니라 추임새를 통해 창자와의 교감을 나누는 구실을 하며, 무대를 관객과 하나로 묶는 역할까지를 소화해주어야 한다. 화순 출신의 명고(名鼓)로는 19세기 후반의 조상엽, 주봉현, 주응조 등과 20세기 중반의 성원목, 문남구, 김동준 등이 잘 알려져 있다.

[무가(巫歌)]

무가는 굿을 진행하면서 무당이 부르는 노래를 지칭하는 말이다. 무가는 서사적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성조무가, 제석무가, 바리데기 등도 있지만, 비념의 내용을 가진 무가도 많다. 무속이 발달한 곳에서는 역시 무가도 발달하게 되는데, 무악 반주에 맞춰 부르는 무가는 일종의 신화적 성격을 가진 서사 무가와 기도의 내용을 가진 서정 무가로 크게 대별하기도 한다.

1992년 강동원은 『화순 무가 사설집 굿소리』를 편찬한 바 있으며, 1998년 남도 민속 학회의 『화순군의 민속과 축제』에서 체계적인 정리가 이루어진 바 있다. 또한 한국학 중앙 연구원에서 호남 무속 총서로 발간한 『호남의 몸주 천도굿』에서는 현장 조사를 통해서 굿판에서 불리던 무가에 대해 사설은 물론 음악까지 채보하여 싣고 있다. 2012년에는 남도 민속 학회 주관으로 『능주 씻김굿의 현장과 가치』라는 조사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이 책은 현재 능주면에서 무업을 계속하고 있는 박정녀 무녀의 생애사를 비롯해서 무가와 무악, 무복무구 등 종합적 조사를 통해서 이루어낸 성과품이다.

현재 화순군은 과거의 수많은 무당들이 없어지고 정통 단골무는 능주의 무속인 박정녀가 거의 유일하다 할 정도이다. 화순의 판소리가 성창했던 까닭도 화순에 유능하며 이름난 무당들이 많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무속 전통이 와해되면서 판소리 등 국악 역시 쇠잔해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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