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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틀 바위와 용랑 이야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2009
한자 -龍娘-
이칭/별칭 「베틀 바위와 용랑」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용두리
집필자 임세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2년 - 「베틀 바위와 용랑」 『화순의 전설』에 수록
관련 지명 용두리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용두리 지도보기
성격 전설|사물 명칭 유래담|자연물 유래담|굴 유래담|인물전설
주요 등장 인물 용랑|왜장|정처사
모티프 유형 용랑이 베를 짜던 굴을 베틀 바위라 부르게 된 유래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용두리에서 용랑과 베틀 바위의 유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베틀 바위와 용랑 이야기」는 부모님을 여의고 베를 짜며 혼자 살던 용랑이 정유재란 당시 왜장에게 욕을 당하기 전에 왜장과 함께 예성강에 빠져 죽은 이야기와 용랑이 죽은 후 정처사가 용랑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 정자를 지은 이야기, 그리고 용랑이 베를 짜던 굴을 베틀 바위라 부르게 된 굴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2년에 강동원이 편찬한 『화순의 전설』「베틀바위와 용랑」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화순군 춘양면 용두리에 용랑이라는 처녀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용랑의 아버지가 병을 얻어 앓기 시작하더니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어서 용랑의 어머니도 남편을 잃은 충격으로 시름시름 앓더니 끝내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졸지에 혼자가 된 용랑이 부모님의 3년상을 치르고 있을 때 홍수가 나서 마을이 물에 잠겨 버리고 말았다. 용랑은 홍수를 피하기 위해 예성산 중턱의 동굴 속으로 살림살이를 옮기고 베 짜는 일을 계속했다. 당시는 정유재란이 발발하여 왜병들이 예성산 기슭에 진을 치고 예성산성과 대치를 하고 있을 때였다.

용랑이 예성산 중턱의 동굴 속에서 베를 짜고 있었는데 이를 왜장이 발견하고 용랑을 덮치려 했다. 용랑은 왜장에게 욕을 당하느니 자결을 하겠다고 하며 왜장을 껴안고 예성강에 몸을 던졌다.

그 후 마을에는 가뭄이 계속 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진사 정처사가 예성강 변을 지나는데, 이때 용랑이 나타나 자신의 한을 풀어줄 것을 부탁했다. 용랑의 의로운 죽음을 알게 된 정처사는 용랑을 위한 정자를 짓고 제사를 지내 주었다. 그러자 마을에는 풍년이 들고 재앙이 없어졌다.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용랑이 베를 짜던 굴을 베틀 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베틀 바위와 용랑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용랑이 베를 짜던 굴을 베틀 바위라고 부르게 된 유래’에 대한 것이다. 「베틀 바위와 용랑 이야기」는 인물담으로 정유재란 당시 왜장을 껴안고 자결하여 의로운 죽음을 맞이한 용랑의 이야기와 신앙담으로 용랑의 한을 풀어주고 의로운 죽음을 기리기 위해 정자를 짓고 제사를 지내주게 된 이야기, 그리고 굴 유래담으로 용랑이 베를 짜던 굴을 베틀 바위라 부르게 된 유래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나타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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