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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년 전통을 이어가는 야사마을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A010104
분야 지리/인문 지리,지리/자연 지리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숙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마을지 할아버지 당산나무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마을지 화순 야사리 쌍 느티나무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마을지 화순 야사리 은행나무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마을지 금사정 터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마을지 연자방아 돌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마을지 화순 동면 중학교 이서 분교터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800년 전통을 이어가는 야사마을 당산제야사마을 당산제

[정월 보름 전날에 정갈히 귀한 음식을 준비해요]

2013년 정월 열나흗날 밤, 매년 모셔오는 유서 깊은 당산제를 모시기 위함인지 야사 마을에서는 엄숙함이 짙게 깔려있다. 당산제를 모시는 세 곳의 당산나무와 제장 주변에는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함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당산제는 해마다 지냉께. 긍께 잘 모셔야 마을이 평안하고, 그 뜻으로 모시제.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제. 햇수가 겁나지[오래되었지].” (라정숙)

“당산나무가 마을 지켜준다고 믿을 수밖에 없고, 동네에서는 아주 큰 보물이지요. 당산제는 세 군데나 지내요. 은행나무는 마지막으로 지내는 할머니당산나무고.” (하상백)

당산제를 준비하는 마을 회관의 분위기는 엄격하면서도 분주하다. 엄격한 가운데도 눈에 띄는 것은 마을 회관을 가득 채운 음식들이다. 일반적으로 제사상에 올리는 삼실과와 나물류, 과일류, 고기류, 떡 등을 물론이고 말린 오징어와 문어를 오린 건어물, 낙지호롱 등 일반적으로 제사상에는 오르지 않은 음식들도 많다. 제수는 화주를 중심으로 준비하게 되는데 구할 수 있는 귀한 음식은 다 올린다고 한다.

음식을 장만하는 화주는 12월 말경에 마을 총회를 통해 동네의 아낙 중에서 선출한다. 제수를 위한 비용은 마을에서 운영하는 동답에서 나오는 쌀값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가끔 부족한 경우는 마을회비에서 지원을 받기도 한다고.

예전에는 5일장을 이용했지만, 교통이 편해지다보니 최근에는 화순읍내에 있는 큰 마트나 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구입한다. 당산제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음식을 준비하는 화주 외에 3명의 축관과 1명의 집사 등 최소 5~6명의 제관이 필요하다. 3명의 제관과 집사 등도 마을회의에서 생기복덕을 맞춰 보고 12월 말경 총회에서 뽑는다. 그들도 화주만큼은 아니지만 항상 목욕재계하고 모든 일을 삼간다.

[제물을 나무 손수레에 싣고]

야사 마을의 당산제는 맨 먼저 마을 안쪽 새로 심은 할아버지 당산나무인 느티나무와 은행나무에서 시작해서, 할머니 당산인 화순 야사리 쌍 느티나무,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을 입구의 화순 야사리 은행나무에서 마무리하게 된다.

밤 10시가 되어가자 제를 모시는 제관들은 풍성히 준비된 음식들을 제장으로 옮기기 위해 재밌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200여 m 정도 떨어진 제장까지 음식을 옮기기 위해 이제는 잘 사용하지도 않는 오래된 나무 리어카를 끌고 나온 것이다. 보름 전날 밤이었음에도 불구하도 달이 구름에 가려 어둠은 칠흑처럼 짙었다. 어두운 길을 랜턴의 작은 불빛에 의지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나무 손수레를 끌고 가는 제관들의 뒷모습이 오랜 동무의 모습처럼 정겹다.

그렇게 마을 회관을 끼고 돌아 도착한 곳에는 마을 안 ‘금사정터’라는 곳으로 첫 번째 당산제를 지내는 할아버지 당산나무에는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한 곳에 심어져 있다. 수령이 20년 정도밖에 안 되는 나무들이다. 원래 할아버지 당산나무는 노거수 느티나무였다고 한다. 느티나무가 죽자, 그 자리에 새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를 심고 여전히 할아버지 당산나무로 모시고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 당산나무에는 금줄을 둘러치는데, 은행나무에는 치지 않고 느티나무에만 금줄을 쳐져있었다. 그리고 나무에는 ‘이사지신위(里社之神位)’라 써진 목신위패가 붙여 있다.

“첫번째 당산제를 올리는 나무가 저쪽에, 마을 가운데 있어요. 원래 당산은 타서 죽고 없어지자 새로 심은 거지요. 없어진 나무가 기라고 봐야지요. 거기가 지금도 연자방아 돌이 있는 것으로 봐서 마을 공동으로 하는 것이 있었것지요.”(하상백)

[세 곳에서 지내는 세 번의 제사]

제의 절차는 하얀 도포를 정갈히 입은 제관들에 의해 집안 제사와 비슷하게 유교식으로 진행되었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축문을 읽고 나무 뒤쪽에 음식을 묻는 헌식을 끝으로 제의는 마무리가 되었다.

두 번째 제를 지내는 당산은 폐교된 동면 중학교 야사 분교 운동장 한가운데에 있는 화순 야사리 쌍 느티나무이다. ‘할머니 당산’으로도 불리며 학교 운동장에 있어서 마을 사람들은 보통 ‘학교 당산’이라고도 부른다. 여기에는 ‘당산지신위(堂山之神位)’라고 쓰인 목신위패가 붙여져 있다.

야사마을 당산제의 절정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화순 야사리 은행나무에서 지내는 세 번째 제사이다. 마을 사람들은 ‘화순 야사리 은행나무’이라 부른다. 이 당산에는 ‘별신지신위(別神之神位)’라고 쓴 목신위패를 붙이지만, 마을 사람들 중에는 ‘할머니 당산’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단다. 아마도 은행이 주렁주렁 열리는 그 생산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모든 제의 절차가 끝나자 제관들은 다시 마을 회관으로 돌아온다.

[꼭 음복해야 할 음식, 약떡]

당산제를 모시고 마을 회관으로 돌아오자 마을의 어르신들은 제사상에 차렸던 다양한 음식을 큰 상에 차려놓으셨다. 그리고 그 많은 음식 중에 하얀 쌀가루에 몇 알의 붉은 팥이 박힌 떡을 제일 먼저 먹기를 권하신다. 당산제를 모신고 난 후에 꼭 먹어야 할 가장 의미 있는 음식임을 강조면서 말이다.

“시루를 맵떡으로 했어요. 시루떡으로. 그것을 약떡이라고 그래. 약떡. 그것을 얻어 먹을라고 12시까지 애들이 잠을 안자고 놀아. 그만큼 정월달에 몸에 좋은 떡, 보신떡이에요. 제 지내고 남은 떡이니까 당산할머니가 점지해준 복이 여기 들었어. 약떡을 먹으려 우리도 잠을 안자고 12시까지 논 적이 있어요. 지금은 마을에 애들이 없어서....”(정기호)

과거에는 그렇게 제를 모시고 나면 다음 날인 보름날 아침 각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했다. 떠들썩한 쇠 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지는 난장이었다.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풍물패를 따라다니면서 어깨춤도 덩실덩실 그야말로 신명나는 한판을 즐겼었다.

이제는 그런 쇠소리도 없고 먹을 것이 다양해져 과거처럼 ‘약떡’을 먹기 위해 밤을 세우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일 아침이면 마을 회관에 모여 약떡을 먹으며 정담을 나눌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오랜 역사와 함께한 야사 마을의 당산제의 현재가 그려진다.

[정보제공]

  • •  김덕남(여, 1957년생,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주민)
  • •  라정숙(여, 1933년생,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주민)
  • •  서복순(여, 1948년생,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주민)
  • •  이순준(남, 1955년생,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전 이장)
  • •  정기호[정영기](남, 1940년생, 이서면 야사리 야사 마을 이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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