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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리 밭노래』를 이어가는 앞소리꾼, 김금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C030204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마을/마을 이야기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도장 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미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근대 1941년 - 김금순이 영암군 금정면에서 출생하다.
근대 1950년 - 김금순이 한국전쟁으로 인해 영암읍으로 피난하다.
근대 1958년 - 피난갔던 영암읍에서 다시 금정면 고향으로 돌아오다
근대 1960년 - 김금순이 혼인하여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로 오다.
현대 1986년 - 김금순이 도장밭노래 모임에 참여하여 노래를 배우고 부르기 시작하다.
현대 1992년 10월 23일 - 김금순과 도장 마을밭노래 팀이 제20회 남도문화제 출연하여(목포), 우수상을 수상하다.
마을지 화전놀이 뒷산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마을지 향토음식 가공공장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화전놀이하며 노래로 흥을 돋구고]

“저 건네라 한양봉에 딱주 캐는 저 처녀야

늑 어머니 어디가고 너 한자 딱주 캐냐

울 어머니 오오강강 배를 타고 지주 귀경을 가겠다요

늑 어머니 어느정께 오시마디

군밤 닷되 찐밤 닷 되 문턱 밑에 묻어놓고

그 싹 나먼 오신다요”

도장 마을 김금순 씨가 들려주는 ‘한양봉에’라는 노래다. 노래에 옛 도장 마을 할매들의 한이 맺혀 있어서 김금순 씨가 지금도 제일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 노래란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의 도장 마을은 지금보다 훨씬 흥이 넘치던 마을이었다. 봄날 화전놀이를 가서도, 여름 한낮의 뜨거운 열기에 잠시 쉬는 참에도 마을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놀았다. 일이 힘들면 힘들다고 놀고, 비가 오면 비 온다고 모여 놀았다. 방이나 마당에 앉아 장구 치면서 신나게 놀고 노래 부르다 보면 어느 새 삶의 고단함이 풀어지곤 했단다.

젊은 각시 시절 노래 부르고 놀던 옛 기억에 빠져있던 『도장리 밭노래』 앞소리꾼 김금순 할머니의 눈이 반짝인다. 그리고는 이내 우스운 이야기라며 들려준 이야기가 재미지다. 어느 해인가 그렇게 놀다가 배가 고파서 동네 친구집에서 보리를 볶아 먹은 후 뜨거운 솥에 물을 부었는데 그만 솥에 구멍이 나고 말았단다. 다행이도 당시 그 친구의 시어머니가 출타중이어서, 시어머니한테는 솥이 아무런 연유도 없이 구멍이 났다고 둘러대서 위기를 모면했다고 하니, 노래가 불러온 참사에 지혜가 위기를 모면케 한 셈이다.

김금순 씨에게서 듣는 화전놀이 이야기도 재미있다. 당시에는 보리가 ‘놀짱놀짱(노랗게 익어간다는 뜻)’하기 시작하는 음력 4월 그믐께 뒷산으로 화전놀이를 갔는데, 김치도 맛깔나게 담고 홍어도 무치고 돼지고기도 삶고 해서 이고지고 산에 올라가면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먹고 노래 부르면서 신나게 놀았다고 한다. 하지만 신이 나고 흥이 나는 화전놀이 대신 이제는 관광버스를 타고 놀러 가는 시절이 되고 보니, 화전놀이는 김금순 씨의 기억 속 아련한 추억이 되고 말았다.

[김아님 어매한테 소리 배웠소]

김금순 씨가 도장리 밭노래에 참여하여 활동한 시기는 1986년부터 2008년까지이며, 이 중 뒤로 10년간은 앞소리꾼으로 활약한 시기다. 물론 지금도 노래는 부르고 살고 있지만, 앞소리꾼으로서의 역할은 젊은 사람들에게 많이 미루고 있단다. 김금순 씨는 본래 마을 소리꾼이었던 김아님 씨에게서 민요를 배웠고, 그 뒤로 김금순 씨의 손윗동서인 양경순 씨와, 이병순, 나순례 씨에게서도 앞소리를 배웠다고 한다. 당시에는 지금의 ‘농산물 가공 공장’인 옛날의 마을 회관 건물에서 소리를 배우고 익혔는데, 그때는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노래가 좋아서 배우고 부르던 것이 지금의 앞소리꾼 김금순이 되어버렸단다. 이야기 도중 김금순 씨의 노래스승인 김아님 씨가 생전에 잘 불렀다는 ‘감태산’ 노래를 흥얼거리신다.

“감태산 감태산 육자백이도 감태산

늘늘이 밥묵고 날날이 잠자고

나무허로 가세

먼장이나 되얏는가 중장이나 되얏네

파장이나 되얏네

오두랑 또두랑 땅바지 질제 잡어 곤바지

모두락 가에 쉬운 놓고 쉬운 찾기도 난감해

잔두박밭에 바늘놓고 찾기도 난감해

물팍 밑에 골미 놓고 골미 찾기도 난감해

치매에도 가새 싸고 가새 찾기도 난감해

난감해 난감해 날과 같이도 난감해”

김아님 씨가 도장리 밭노래 앞소리꾼으로 활동하면서 맨 처음 상을 탄 것이 1992년 목포에서 열린 남도 문화제 우수상이다. 그때 김금순 씨의 나이가 쉰다섯 살이었는데 당시에는 힘든 줄도 모르고 노래를 배웠다고 한다. 그날 이후 화순군청에서 관심을 가져주었고, 그때 얼마나 신이 나게 장구를 쳤는지 금반지가 다 오그라졌을 정도였단다.

김금순 씨는 도장리 밭노래는 한이 많은 여인네들의 감정이 삭혀있는 노래라고 말한다. 92년도에 목포에 가서 노래를 부르니, 듣는 사람 중에는 옛 생각 때문에 그런지 눈물을 철철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는 할머니의 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알겠다.

“긍께 우리 밭노래 요것이 민요도 아니고 흥글흥글 어무니들이 시집살이 하면서 한이 맺혀서 부르는 노래라고.”

일평생의 한이 노래에 맺혀 있는 도장 들노래, 그리고 앞소리꾼 김금순 씨는 오늘도 노래로 평생의 한을 풀어내고 있다.

[시집살이의 한도 밭노래에 날려버리고]

김금순 씨는 1941년에 영암군 금정면에서 5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후 6·25 전쟁 때 읍으로 피난 가서 살다가, 열일곱 살에 다시 고향인 금정면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년 뒤인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 화순군 도장 마을로 시집을 왔다. 시집을 오고 보니 넉넉지 않은 시댁살림에 경제적으로 몹시 힘이 들었단다. 당시 화순군에서도 도암면이 제일 가난했고, 도암면에서도 전답이 없는 도장리가 또한 그중 가난한 곳이었고, 도장리에서도 그중 가난한 집이 시댁이었으니 갓 시집온 새색시 김금순 씨가 감당해야 할 현실이 참으로 힘들었다고 한다.

시집와서 큰집에서 큰동서와 일 년을 함께 살다가, 논 한마지기를 타서 남의 집 곁방살이로 제접살림[분가]을 났다. 전답이 없는 살림이었던지라 가마니를 짜서 겨우 먹고 살다가, 어찌해서 정미소도 하고 떡방앗간 일도 해서 이제 먹고는 살게 되었단다. 그렇게 힘든 세월을 살면서도 노래가 있고 자식 키우는 재미에 고생인 줄 모르고 살았다는 김금순 씨는,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하니 ‘새끼들 낳아서 갈치고 여울 때’ 라고 말한다. 그리고 또 무엇이 제일 재미진고는 노래 부르고 노는 것이라는 김금순 씨는 요즘의 생활방식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옛날에는 그러고 놀았는디 근디 지금 사람들은 돈 버느라고 그러고 안놀아. 돈만 벌라고 안놀아. 놀면 기껏 화토나 치고 놀고. 옛날에는 장구치고 종재기 돌리고 수건놓고. 녹음기 틀어놓고도 놀고 홀딱홀딱 뛰고. 근디 지금은 그러고 놀도 안해.”

요즘 사람들은 돈 버느라 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김금순 씨의 말씀이, 지금 우리가 보는 옛 노래의 모습일 것이다.

[정보제공]

  • •  김금순(여, 1941년생, 도장리 밭노래 앞소리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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