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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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여진족을 소탕해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역모에 연루되었다는 무고로 사형을 당해 보령시에 묻힌 명장. 강순(康純)[1390~1468]은 조선 전기의 명장으로 일찍이 북방 방어 능력을 인정받아 세조(世祖)[재위: 1455~1468]의 총애를 받았다.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고 여세를 몰아 북방의 여진족을 토벌하였다. 우의정으로 있을 때에 보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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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홍성군 결성면 지역에 비정되는 백제 신촌현이 예속되었던 상급 행정 구역의 명칭. 결기군(結己郡)은 백제 시대 신촌현의 상급 행정 구역의 명칭으로 보령시, 홍성군 결성면 지역에 비정된다. 신촌현과 신량현을 영현(領縣)으로 하였는데, 이 가운데 신촌현이 보령시 주포면 일대로 비정된다. 중앙에서 군장(軍長)을 파견하여 관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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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 시대 신라의 신읍현이 예속되었으며 충청남도 보령시, 홍성군 결성면에 비정되는 상급 행정 구역 명칭. 결성군(結城郡)은 웅주에 속한 군으로 백제 시대 결기군(結己郡)이었다. 통일 신라기에 신읍현과 신량현을 영현(領縣)으로 하였는데, 이 가운데 신읍현이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일대로 비정된다. 군·현에는 지방관을 파견하여 다스렸는데, 군에는 태수(太守), 현에는 현령(縣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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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전과 이몽규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 경주 이씨는 신라 건국의 주축을 담당한 6촌 중 하나인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촌장으로 알려진 표암공 이알평(李謁平)[?~?]을 시조로 하고 고려 시대 좌정승(左政丞)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을 중시조로 한다. 이후 이전(李筌)과 이몽규(李夢奎)[1510~1563]가 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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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봉당리에 있는 테뫼식의 토석혼축 산성으로 1400년부터 1430년까지 보령현의 치소지로 사용된 산성. 고남산성(古南山城)은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봉당리와 오천면 갈현리 경계의 산정부에 있는 테뫼식 토석혼축 산성이다. 1400년에 봉당고성(鳳堂古城)[봉당성(鳳堂城)]을 석성으로 축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남산성은 1430년 보령현의 읍성으로 보령성곽이 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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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전후부터 7세기 중후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이전까지의 충청남도 보령시의 역사. 한국의 고대는 고구려와 삼한의 여러 소국들을 병합한 백제, 신라, 가야 등이 형성되어 발전한 시기이다. 원삼국 시대 보령 지역에는 만로국(萬盧國), 또는 소위건국(素謂乾國)이 있었을 것으로 비정(比定)된다. 이후 한강 유역에서 성장한 백제가 마한의 소국들을 병합하면서 백제의 영역으로 편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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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 시기,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의 지방 제도 정비는 성종(成宗)[재위: 981~997] 초부터 시작되어 현종(顯宗)[재위: 1010~1031] 대에 이르러 일단락되었다. 1018년(현종 9) 전국을 5도 4도호부 8목으로 나누고, 그 아래에 56지주군사, 28진장, 20현령을 두었다. 보령 지역에는 보령현과 남포현의 2개 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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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교면에 있는 해협. 고만량(高灣梁)은 충청남도 보령시 주교면에 있는 해협으로 전라도의 세곡(稅穀)을 실은 조운선(漕運船)이 서울로 가기 위해 지나는 해로(海路)이다. 조선 초기부터 왜구의 약탈이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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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부터 현대까지 충청남도 보령 지역 근대 장시의 변천과 중심지 이동.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1차산업[농업, 어업, 임업] 위주의 자급자족적 경제가 주를 이루었다. 국토의 70%가 산악으로 이루어져 도로망이 열악한 관계로 상공업의 발달이 어려웠고, 일부 고을의 관아 또는 지방 거점 고을에만 시장이 열려 물물교환 행위만이 간간히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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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되는 과정과 의의. 기독교는 영어로 크리스트교(Christian religion)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적을 본받고 그를 인류를 구원한 메시아로 믿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이다. 세계 인구 약 70억 명 중 모든 교파를 합쳐 24억 명의 신자를 보유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로마 후기에 그리스정교회와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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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의 영보리와 교성리 사이에 있는 고개. 고개는 일반적으로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을 말한다. 예로부터 고개를 통해 사람과 물자의 교통이 이루어졌다. 오늘날 고개의 대부분은 고개를 대체하는 도로, 교량, 터널 등이 건설되면서 고유의 교통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김신고개를 포함한 보령시 대부분의 고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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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 지역에 설치된 행정 구역의 명칭. 남포현(藍浦縣)은 신라 때 개칭된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며, 서림군의 영현(領縣)이었다. 1018년(현종 9)에 가림현에 이속시켰다가 후에 감무(監務)를 두었으며, 1390년(공양왕 2)에 진성(鎭城)을 설치하였다. 대몽 항 쟁기에는 삼별초의 공격으로 감무가 잡혀갔으며,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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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에 보령 지역의 보령현과 남포현에서 동학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 혁명. 충청남도 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은 ‘내포’라고 불리는 서남부 지역, 천안을 중심으로 한 동북부 지역, 보령을 비롯하여 서천, 부여, 청양 일대를 아우르는 서남부 지역, 논산과 금산을 포괄하는 동남부 지역, 우금치 전투가 일어난 공주 지역으로 나뉘어 활동상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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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에 있는 조선 전기의 보령현 관아의 정문. 보령관아문(保寧官衙門)은 보령읍성의 남문이다. 관아문은 돌로 성을 쌓은 읍성의 남쪽 성벽 성문 앞에 옹성이 설치되고, 문루 위에 초루(譙樓)[궁문, 성문 따위의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가 들어서는 형태인 개거식(開据式)으로 만든 2층 누각 형태의 목조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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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에 속하는 법정리. 법정리(法定里)는 법률로 정하여진 리로서 지번의 기준이 되며, 법정리에는 인구와 생활권을 고려하여 1개 또는 여러 개의 행정리(行政里)가 설치된다. 행정리는 20~1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전통적인 촌락을 기초로 하는 경우가 많다. 법정리와 행정리로 구분되는 리는 우리나라에서 읍·면 지역의 하부 말단 단위로, 주로 농어촌 지역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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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의 삼국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의 중심 치소지 1430년 보령읍성이 건립된 후 보령 고을의 중심지는 보령성곽이었다. 1430년 이전 보령 고을의 중심지는 보령읍성에서 남서쪽으로 약 500m 떨어진 보령리 560번지 일원인 구성재로 추정된다. 구성재에서 백제 시대의 보령 고을명인 ‘신촌(新村)’이란 문자가 새겨진 백제 시대 기와 조각과 청자와 분청사기의 파편이 확인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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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 있는 조선 전기 보령읍의 읍성 시설 중 성벽. 보령성곽은 조선 전기 보령현의 치소지(治所地)인 보령읍성의 성벽 시설이다. 조선 시대 보령현은 현재 충청남도 보령시의 북부인 주포면 보령리가 중심지이다. 보령읍성은 보령현의 주산(主山)인 진당산(鎭堂山)[351m]의 서쪽 능선 끝 평지에 있다. 보령성곽은 평지에 설치된 사각형의 성곽이다. 성곽의 구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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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의 자연 지리적 및 인문 지리적 특성. 보령시는 동쪽으로 청양군, 부여군과 접하고 서쪽은 서해에 접하며, 남쪽은 서천군, 북쪽은 홍성군과 접한다. 동경 125° 57′~동경 126° 44′, 북위 36° 10′~북위 36° 31′에 자리한다. 면적은 586.56㎢이고, 2022년 11월 기준으로 인구는 9만 7188명이다. 행정구역은 1읍 10면 5동이며, 유인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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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있는 아름다운 산과 섬. 보령은 산과 섬의 고장으로 육지에는 산이 많고, 바다에는 섬이 많다. 보령의 주요한 산으로는 오서산, 성주산, 옥마산, 아미산, 백월산, 양각산, 잔미산, 진당산, 주렴산, 운봉산, 봉황산 등이 있다. 보령에는 90여 개의 섬이 해안가 주변에 흩어져 있다. 15개의 섬에는 사람이 살고, 75개의 섬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보령의 주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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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에 있는 조선 전기 관학 교육 기관. 보령향교(保寧鄕校)는 조선 시대 보령현(保寧縣)에서 유현(儒賢)을 배향(配享)하고 지방민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설립된 국립 교육 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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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지역에 설치된 고려 시대 행정 구역의 명칭. 고려 초에 신읍현(新邑縣)을 보령현(保寧縣)으로 변경하였다. 결성군(結城郡)의 영현(領縣)이었는데, 1018년(현종 9)에 홍주의 속현(屬縣)으로 하였다. 1106년(예종 원년)에 감무(監務)가 설치되었다. 보령현의 위치는 지금의 보령시 주포면 지역이며, 치소(監務)는 보령리 구성재에 비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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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서 석가모니를 교조로 하여 가르침을 따르고, 불경을 경전으로 삼는 종교.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어 공인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72년이다. 곧이어 백제와 신라에도 불교가 전래되었다. 백제의 불교는 384년(침류왕 원년)에 남중국 동진(東晋)의 마라난타(摩羅難陀)가 전래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다음해인 385년에 한강 유역의 도읍인 한산(漢山)에 불사(佛寺)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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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마강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2층 기와집. 석화촌가든은 주포면 마강리에 자리한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2층 주택이다. 1930년대 일본식 주택 양식인 중복도형 주택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2층 단독주택이다. 지붕은 기와를 올려 마감하였다. 마을에서는 이 주택을 ‘2층집’ 혹은 ‘2층기와집’이라고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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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같은 본관을 가지고 오랫동안 세거해 온 성씨. 세거성씨(世居姓氏)란 특정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세거하여 집성촌 또는 세거지를 형성하는 성씨를 의미한다. 이러한 세거에는 기원이 되는 특정한 지역에 들어오게 된 각 가문 입향조(入鄕祖)들이 있다. 다만 모든 가문이 입향조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입향조가 누구인지 알려졌다고 해도 생몰년을 모르거나 생몰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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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지역에 설치된 남북국 시대 신라의 행정 구역 명칭. 통일 신라기 웅주 관할의 결성군(潔城郡) 영현(領縣)의 하나로 백제 신촌현(新村縣)을 757년(경덕왕 16)에 신읍현(新邑縣)으로 개칭하였다. 지금의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 일대로 비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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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계권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신천 강씨(信川 康氏)는 강지연(康之淵)[?~?]을 시조로 하고 강계권(康繼權)[?~1413]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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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지역에 설치된 백제 시대 행정 구역의 명칭. 백제 시대 결기군(結己郡)[결성]에 편제된 행정 구역의 하나로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일대에 설치되었다. 중심 치소(治所)는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 구성재 부근으로 추정된다. 통일 신라기인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 대 신읍현(新邑縣)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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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충청남도 보령시의 역사. 보령은 원삼국 시대 만로국(萬盧國), 또는 소위건국(素謂乾國)이 자리했을 것으로 비정(比定)되지만 그 실체는 분명하지 못하다. 백제 시대에는 사비기(泗沘期)를 전후하여 방군성제(方郡城制)가 실시됨에 따라 설림군[서천]의 영현(領縣)인 사포현과 결기군[결성]의 영현인 신촌현으로 편제되었다. 고려 시대에 양광도로 편제된 보령은 보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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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충청도 보령 지역의 일본 해적 침입 사건. 고려 말에 왜구의 침략이 본격화하면서 보령 지역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보령 지역의 왜구 침입은 1380년(우왕 6) 남포현 침입과 1381년(우왕 7) 11월 보령현 침입을 들 수 있다. 1388년(우왕 14)에는 왜적 1,000여 명이 옥주(沃州)와 보령(保寧) 등의 현(縣)을 함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왜구의 침략으로 보령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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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춘과 이관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 우봉 이씨(牛峰李氏)는 고려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이었던 이공정(李公靖)[?~?]을 시조로 하고, 이승춘(李承春)[?~?]과 이관(李綰)[?~?]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의 이거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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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공자의 사상을 근간으로 그 계승자들에 의해 실천된 학문적 활동과 의례적 행위. 유교는 중국 춘추 시대 공자(孔子)[기원전 551~기원전 479]가 체계화한 사상으로 정치 사상, 학문 수양 그리고 의례 등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는 것이다. 맹자(孟子)[기원전 372~기원전 289], 증자(曾子)[기원전 506~기원전 436] 등 제자 및 계승자들을 통해 발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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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거주하는 주민의 수. 충청남도 보령시 인구의 주요 내역은 인구 추이(推移)와 인구 개황(槪況)을 중심으로 개관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인구 추이는 인구수의 시계열적 변화를 조선 시대와 근대 이후로 구분하여 파악하고, 인구 개황은 2020년 12월 말 기준의 세대 및 인구의 추이, 성비(性比), 읍면동별 인구 분포, 인구 동태(動態), 인구 이동, 총인구 중 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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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와 특성. 보령시는 충청남도 서남부에 있는 시로, 면적은 586.56㎢, 행정 구역은 1읍 10면 5동이고, 시청 소재지는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산로 77[보령시 명천동]이다. 인구는 2021년 12월 말 기준 98,408명이다. 보령시는 동경 125° 57′~동경 126° 44′, 북위 36° 10′~북위 36° 31′에 있으며,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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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을 시조로 하고 이몽열를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 전주 이씨(全州 李氏)는 이한(李翰){?~?]을 시조로 하고, 이몽열(李夢說)[1542~1607]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이거 성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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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 있는 조선 시대의 충신, 효자, 열녀의 행적과 의미를 기리기 위하여 나라의 명을 받아 세운 정려. 정려(旌閭)는 국가에서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해 충신, 효자, 열녀를 찾아내 행적을 기록하고 표창하던 풍습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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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 왕조 시기의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보령 지역은 서로 독립적인 행정 구역인 보령현(保寧縣)과 남포현(藍浦縣)으로 나뉘어 있었다. 보령현과 남포현은 서로 다른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보령현은 “본래 백제의 신촌현(新村縣) 이었는데, 신라 때에 신읍(新邑)이라 고쳐 결성군(潔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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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초인간적 세계와 관련된 신념이나 의례 등으로 구성된 문화 현상.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종교는 유교, 불교, 천주교, 개신교가 대표적이다. 보령시는 지리적으로 해안가에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수도에서 외진 곳에 있어 종교의 유입이 비교적 늦었다. 이러한 지역적 여건 위에 전통적인 민간신앙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어서 신흥 종교의 기반이 견고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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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청라면 및 주포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 보령시는 차령산맥의 말단부가 서해와 만나는 곳으로 서해안의 다른 지역과 달리 해안에 이르기까지 높은 산맥이 뻗어 있는 지역이다. 태백산맥이 오대산 부근에서 갈라져 서남쪽으로 뻗은 차령산맥은 경기도와 충청남도의 경계부와 충청남도의 중앙부를 통과할 때에는 산맥의 높이가 낮지만, 보령시에 이르러 높이 600~700m 정도로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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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와 청라면 장산리 사이의 진당산 산정부에 있는 테뫼식 석축 산성.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에 있는 진당산성(鎭堂山城)은 조선 시대 보령현의 진산(鎭山)인 진당산[당산(唐山) 혹은 당산(堂山)이라고 함] 정상부에 축조되어 있는 산성이다. 진당산성은 조선 시대의 기록에 ‘지을현성(地乙峴城)’ 혹은 ‘당산성(唐山城)’으로 기록되어 보령현의 중심 산성임을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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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와 청라면 장산리를 연결하는 고개. 고개는 일반적으로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을 말한다. 예로부터 고개를 통해 사람과 물자의 교통이 이루어졌다. 오늘날 고개의 대부분은 고개를 대체하는 도로, 교량, 터널 등이 건설되면서 고유의 교통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질고개를 포함한 보령시 대부분의 고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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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가톨릭교회.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천주교 전래는 천주교가 조선에 널리 수용되기 시작한 18세기 말에 시작되었으나 18~19세기 충청남도의 다른 지역에 비해 천주교 교세는 크지 않았다. 보령 지역은 충청남도 일대에서 가장 늦은 1962년에 이르러서야 대천성당이 최초의 본당으로 설립되었다. 대천성당이 본당으로 설립되면서 보령 지역에서도 천주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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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관산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보령의 역참. 청연역(靑淵驛)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광시역(光時驛)·세천역(世川驛)·용곡역(龍谷驛)·급천역(汲泉驛)·순성역(順成驛)·흥세역(興世驛)·풍전역(豐田驛)·하천역(下川驛)·몽웅역(夢熊驛)·해문역(海門驛)과 함께 금정도(金井道)[조선 시대 충청도 청양의 금정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역로]에 편제되었다.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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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에 있는 조선 시대 충청도의 해양 방어를 총괄하였던 성곽. 조선 시대 정3품의 충청도수군절도사(忠淸道水軍節度使)가 주재하는 수영(水營)으로 성곽은 1510년(중종 5)에 석성으로 쌓았다. 이후 충청도 해역에 대한 방비, 조운선 호송 등을 담당하다가 1895년(고종 32) 폐영(閉營)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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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통달산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통달산 봉수대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남포현 봉수조에 “통달산봉수(通達山烽燧)는 남쪽으로는 비인현 칠지산과 호응하고, 북쪽으로는 여도점(餘道岾)과 호응한다. 여도점 봉수는 현 북쪽 8리(里)[3.14㎞]에 있다. 서쪽으로는 보령현 조침산(助侵山)과 호응하고, 남쪽으로는 통달산(通達山)과 호응한다.”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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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동대동 구시마을에서 한내에 있는 돌다리를 밟으며 마을과 개인의 안녕을 기원하던 놀이. 답교(踏橋)놀이라고도 하는 다리밟기는 일반적으로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의 하나로, 정월 대보름날 다리[橋]를 밟으면 일 년 동안 액을 막고 다리[脚]가 튼튼해진다고 여겼다. 보령 지역에서는 보령의 중심지인 대천(大川)을 관통하는 한내, 즉 지금의 대천천(大川川)에 있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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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의 행정 기관 권한이 미치는 구·군, 읍·면·동·리로 구분된 지역. 행정구역은 일반적으로 시군구 등의 행정 기관의 권한이 미치는 일정한 범위의 구역을 의미하며, 개별 행정 기관의 행정구역 내역은 과거 행정구역의 변천과 현재 행정구역의 현황 파악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보령시의 행정구역은 1914년 일제의 부군통폐합령(府郡統廢合令)에 의하여 과거의 보령군(保寧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