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8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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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田里-洞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김전리 못밑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여수경 |
의례 장소 | 당산 -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김전리 10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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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민간 의례|동제 |
의례 시기/일시 | 정월 대보름 [음력 1월 15일] 0시 |
신당/신체 | 당산나무[느티나무] |
문화재 지정 번호 | 면 보호수 11-19-8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김전리에서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올리는 마을 공동 제의.
[개설]
청도군 금천면 김전리의 못밑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음력 1월 15일]이 되면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며 마을 어귀의 당산나무에 동제를 올린다.
[연원 및 변천]
김전리 못밑 동제 는 마을이 형성되고 나서는 중단 없이 계속 지속되어 왔다고 한다. 못밑 마을의 정확한 입향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대략적으로 1600년 무렵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동제도 이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못밑은 김전 소류지라는 못 아래에 있어 붙은 이름으로, 한자로 지하(池下)로도 불린다. 동제는 김전 소류지를 중심으로 못 위쪽의 못안[지내(池內)] 마을과 못 아래쪽의 못밑[지하] 마을이 함께 지낸다.
[신당/신체의 형태]
김전리 못밑 동제 의 당산은 2013년 현재 나이가 480년 정도인 느티나무 한 그루인데, 1989년 1월 25일 면 보호수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주변으로는 시멘트를 동그랗게 둘러서 다른 길과 구분하였으며 아래쪽으로 계곡이 흐른다. 이 느티나무는 마을의 입향과 함께 심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1970년 새마을 운동 당시 마을에서 당산나무을 보호하기 위해 주변에 시멘트를 둘렀다고 한다.
[절차]
못밑 마을의 제는 정월 대보름 0시에 올린다. 제의를 위한 준비는 일주일 전 제관의 몸가짐에서 시작된다. 제의를 맡은 제관은 정월 대보름 일주일 전부터 바깥출입을 삼가하고 아침저녁으로 목욕재계한다. 다른 사람과 함부로 말을 섞지 않으며 모임에도 나가지 않는 등 몸가짐을 조심한다. 이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당산은 꼬끄랍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라고 한다. 당산은 성정이 까다로우니 몸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제삿날 이틀 전 음력 열사흗날이 되면 마을에서는 금줄을 만들어 당산에 두른다. 이때 금줄에는 한지를 끼우고 당산 주변으로 황토를 뿌린다. 제사를 지내기 하루 전날 아침이 되면 제관은 금천면 동곡리의 동곡장 또는 경상북도 경산시의 자인장을 이용하여 장을 본다. 경산과 청도의 경계선에 자리 잡은 김전리는 동곡장이 약 7㎞ 이내, 자인장이 10㎞ 이내로 제관의 편의에 따라 장을 선택한다.
제물은 집에서 올리는 제사와 유사하게 준비하는데 자반고기, 돔배기[상어고기], 과일, 나물, 탕 등을 마련하고 이 밖에도 미역국을 올리는 것이 다른 지역과 다르다. 밥은 마을 사람들이 당산에 깃들었다고 여기는 당산할배와 당산할매 모두를 위하여 두 그릇을 올린다.
제물이 준비되면 제관은 밤 11시쯤 집에서 출발하여 당산 앞에 제물을 차린다. 이때 제관만 참석할 뿐 다른 사람은 참석하지 않는다. 자정이 넘어가면 제관은 제를 올린다. 유교식 기제사와 동일하게 잔을 한 잔만 올리고 절하는 단잔 배례(單盞拜禮)를 올리고 축문은 읽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 당산과 마을, 그리고 마을에 거주하는 다섯 성씨[최, 윤, 허, 송, 박]을 위하여 소지(燒紙)[부정을 없애고 소원을 빌려고 태우는 흰 종이]를 올린다. 제가 마무리되면 제관은 음식 중 떡을 조금 떼어 한지에 싸서 당산 옆에 놓아두고 나머지 제물은 모두 집으로 가져온다.
이튿날 아침 마을 회관에 모인 사람들은 제관에게 수고의 인사를 건네고 한 해의 마을 일과 동제를 결산한다.
[부대 행사]
정월 대보름 아침 마을 회관에서는 마을 회의와 함께 제관에게 인사를 건넨다. 마을 회의에서는 한 해의 결산과 함께 다양한 안건이 처리되는데 이 중에는 이듬해의 제관을 선출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고 나서는 음복과 함께 윷놀이 등을 통해 하루를 즐긴다.
[현황]
지방도 69호선의 확장에 따라 이주한 김전 1리에서는 동제가 중단되었지만 김전리 못밑 마을에서는 2013년 현재에도 동제를 올리고 있다. 하지만 고령화와 마을 인구의 감소로 과거와 같이 성대하게 올리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과거에는 제관을 뽑을 때에도 대내림을 통해 엄격하게 선정하였지만 1980년대 초반부터는 길일인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을 따져 깨끗한 사람으로 선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때 40대 이하의 젊은 사람과 집안에 우환이 있는 사람, 그리고 가족이 임신한 사람은 제관을 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또한 인구 감소 때문에 여의치 않아 현재는 집집이 돌아가면서 제관을 담당하고 있다. 제물과 축문 또한 간소화되었는데, 돼지 한 마리와 소를 잡는 것에서 현재는 돼지고기만을 올리며 축문은 생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