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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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 정착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초명 시언(時言), 자는 자중(子中), 호는 하담(荷潭), 시호는 충익(忠翼). 할아버지는 영상공 김석(金錫), 아버지는 비안현감을 지낸 김인갑(金仁甲), 어머니는 남양홍씨이다. 1605년(선조 38)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로 벼슬길에 나아갔다. 1607년 승정원주서, 1609년(광해군 1) 예조좌랑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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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임진왜란 때 탄금대 전투에서 활약하다 순절한 무신.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사수(士秀), 호는 피구자(披裘子) 또는 외암(畏菴). 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김훈(金壎)이며, 아들은 영의정을 지낸 김류(金瑬)이다. 김여물은 어려서부터 호방하고 의협심이 강하고 구속받지 않는 성품으로, 활쏘기와 말 타기를 잘했으며 장수의 재략도 있어 문무를 겸비했다. 1567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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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갈천(葛川). 아버지는 찰방을 지낸 김성진(金聲振)이다. 1613년(광해군 5) 생원시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들어갔다. 홍무적(洪茂績) 등과 인목대비의 폐비에 반대하는 복합상소를 올렸다가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 금고형에 처해졌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 의금부도사에 임명되었다.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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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공납제(貢納制)를 폐지하고 대신해서 제정·실시한 재정제도. 대동법은 조선 전기 조세제도 중 호역(戶役)으로 부담하였던 세납(稅納)을 토지세로 전환하는 제도이다. 즉 조선 전기 지방의 특산물을 현물로 납부하는 형태로 운영되던 공납제는 방납(防納)의 성행, 지주제의 확산, 공납제 부담의 불균형 등으로 인해 큰 폐단을 야기하자 이를 바로잡기 위해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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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앙성면 지당리에서 삼당마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앙성면 지당리에 있는 지당저수지의 남쪽 방향으로 국도를 가로질러 다시 북쪽으로 1㎞ 정도 떨어진 지점에 삼당마을이 있다. 「삼당마을의 유래」는 마을에 불당·산제당·미륵당 등 삼당이 있어 삼당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전설로서, 각 당마다 깃든 전설을 지니고 있다. 1982년 충청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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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문. 1716년(숙종 42)에 명정(命旌)된 문화인 유충건(柳忠健)과 아들 유시량(柳時亮), 손자 유송제(柳松齊)의 3대에 걸친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문이다. 유충건은 유몽정(柳夢鼎)의 손자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했으며, 광해군 때 주부(主簿)를 역임하였다. 36세에 모친상을 당하자 죽을 먹으며 시묘(侍墓)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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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충주군 성태양면(省台陽面) 지역으로 청계산(淸溪山) 밑에 소재하여 지대가 매우 높아 오랑골·오량골·오량동이라 하였다. 또는 마을이 오방(午方)을 향해서 있다고 하여 오향동(午向洞)이라고도 하였다.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 때 오량동(五良洞)이라 하였다. 1760년의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원현조에 의하면, 원래 이 지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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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별묘마을에서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별묘택견은 소태면 면사무소와 소태초등학교가 있고 광해군의 후궁인 허씨(許氏)의 묘와 충정공(忠正公) 허잠(許潛)의 별묘가 있는 마을이다. 별묘택견 입구에 있는 서낭당과 돌장승에 금줄을 치고 매년 음력 1월 14일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서낭제를 지낸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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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고창(高敞). 증조할아버지는 의령현감을 지낸 오석복(吳碩福)이고, 할아버지는 전의현감을 지낸 오언의(吳彦毅)이다. 아버지는 오수정(吳守貞),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安氏)로, 안관의 딸이다. 1558년 19세 때 경상남도 김해의 산해정(山海亭)으로 남명 조식(曺植)을 찾아가 학문을 배우고, 1561년(명종 16) 생원시에 합격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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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주목사를 역임한 문신. 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노천(老泉) 또는 여용(汝用). 고려 말 고려왕조에 절의를 지킨 원천석(元天錫)의 후손이다. 원급은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 장군과 함께 충주방어전에 참전했으며, 광해군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1627년(인조5)에 전적(典籍)이 되었다가 충주목사(忠州牧使)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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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경임(景任), 호는 학암(鶴巖). 유관(柳寬)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유용량(柳用良)이고, 어머니는 안동인 권련의 딸이다.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하여 음보(蔭補)로 현감이 되었다. 1574년(선조7)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581년(선조 14) 영암군수로 있을 때 사간원의 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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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년 신분 차별에 불만을 품은 충청북도 충주 출신 서얼 박응서 등이 주도하여 역모를 꾀했다가 발각되면서 계축옥사로 확대된 사건. 조선은 서얼을 차별하는 정책을 시행하여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서얼들은 출세하는 데 제한을 받았으므로 서얼 출신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커져 갔다. 박응서(朴應犀)·서양갑(徐羊甲)·심우영(沈友英)·이준경(李俊耕)·박치인(朴致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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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자강(子强), 호는 약봉(藥峰). 고려시대 태사(太師) 유차달(柳車達)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유몽정(柳夢鼎)이고, 아들은 사어(司禦) 유시량(柳時亮)이며, 손자는 유송제(柳松齊)·유계제(柳桂齊)·유회제(柳檜齊)이다. 조선 광해군 때의 효자로 우계(牛溪)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공부하여 광해군 때 벼슬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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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8년(인조 6) 인조반정에 불만을 품은 충청북도 충주 출신 유효립 등이 광해군을 상왕으로 삼고 인성군 이공(李珙)을 국왕으로 옹립하려다 실패한 역모 사건.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권력에서 밀려난 대북파 잔존 세력인 유효립(柳孝立) 등은 정묘호란의 패배, 군적법(軍籍法)과 호패법 시행 등으로 민심이 동요하자 이를 기회라고 판단하였다. 이에 계룡산 천도설 등의 비결(秘訣)을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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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할아버지는 증영의정 이란(李鸞)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증좌찬성 이자침(李自琛)이다. 아버지는 훈련원판관을 지낸 이유일(李惟一)이고, 어머니는 참봉 민학용(閔學用)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5년(광해군 7) 사서(司書)를 거쳐 사헌부정언이 되었다. 이때 이이첨이 대사헌에 기용되어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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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출신이거나 충주 지역과 연관이 있는 사람을 ‘충주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충주는 국토의 중심이었고 예부터 사통팔달의 도시였기에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또한 충주 지역 자체에서 인물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음도 한 몫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른 고장과 비교하여 손색이 없는 면면을 지녔기에 충주를 인물의 고장이라 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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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습을 시조로 하고 유영길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충주 세거 성씨. 전주유씨는 유습(柳濕)을 시조로 한다. 유습(柳濕)이 고려 말에 완산백에 추봉되면서 후손들이 유습(柳濕)을 시조로 하여 전주(옛 이름은 완산)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전주유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89명, 재상 1명, 공신 2명, 대제학 4명, 청백리 10명을 배출했다. 충주에 입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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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에서 임경업 장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충주시 단월동 대림산 밑 노루목으로 가는 도중에 현재 정암사라는 절이 있었다. 임경업은 어릴 적에 이 절에서 놀기도 하고 공부도 했다고 한다. 「충신 임경업」은 임경업이 어려서부터 무술연마를 좋아했다는 일화와 신임목사가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임을 예언하는 인물전설이다. 1981년 중원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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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하담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홍이상을 모시는 서원. 홍이상은 본관이 풍산(豊山)으로, 자는 원례(元禮), 호는 모당(慕堂)이다. 1579년(선조 12) 식년시에 장원 급제하였으며 예조와 호조의 좌랑과 정언(正言)을 거쳐 수찬(修撰), 기랑(騎郞) 교리를 역임하였으며, 집의, 응교, 직제학, 동부승지 등을 거쳐 이조참의에 올랐다. 임진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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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경량(景亮), 호는 한천(寒泉). 아버지는 생원(生員) 허초(許礎)이고 어머니는 임하임씨(臨河林氏)이다. 숙종조 영의정을 지낸 허적의 할아버지이다. 선조 때 현량(賢良)으로 천거되어 등용된 뒤 1587년(선조 20) 선공감 봉사(奉事)가 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에 왕을 따라 호종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