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8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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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平文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노석 |
입향 시기/일시 | 1453년 - 문상효 진안군으로 입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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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남평 -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
입향지 | 남평 문씨 입향지 -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 |
성씨 시조 | 문다성(文多省) |
입향 시조 | 문상효(文尙孝) |
[정의]
문다성(文多省)을 시조로 하고, 문상효(文尙孝)를 입향조로 하여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연원]
남평 문씨의 시조인 문다성(文多省)은 신라 제20대 왕인 자비 마립간 때의 인물로, 현재의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인 남평현 출신이다. 신라 지증왕과 진흥왕, 진지왕 대에 걸쳐 고위 관직을 지내고 남평백에 봉해지고, 전라남도에 세거하면서 남평 문씨의 시조가 되었다.
이후 경절공 문익(文翼)을 중시조로 하여 2세 경정공 문공유(文公裕), 3세 충숙공 문극겸(文克謙), 4세 충숙공의 두 아들인 충열공 문후식(文侯軾)과 효혜공 문유필(文惟弼) 세대에 와서 파가 나뉘었다.
[입향 경위]
진안에는 충열공 문후식의 후손인 10세 충선공, 강성군, 부민후인 문익점(文益漸)의 후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진안에 처음 들어온 사람은 문익점의 현손으로 만호를 지낸 문상효(文尙孝)이다. 문상효는 1453년(단종 1)에 서울에서 백운면 운교리로 들어와 살았다. 이후 문익점의 9세손인 문창(文昌)이 지례에서 진안군 용담면 상거리로 이주하였다.
[현황]
남평 문씨는 진안군 백운면 운교리, 용담면 상거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2000년 기준으로 전국 11만 8491호에 38만 530명, 전라북도 6만 416호에 20만 027명, 진안에 143호에 387명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