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938 |
---|---|
한자 | 崔斗七 |
이칭/별칭 | 자건(子建),추모재(追慕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송만오 |
출생 시기/일시 | 1683년 - 최두칠 출생 |
---|---|
몰년 시기/일시 | 1756년 - 최두칠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79년 - 최두칠 사헌부 감찰 추증 |
거주|이주지 | 최두칠 거주지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
묘소|단소 | 최두칠 묘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괘양산 |
사당|배향지 | 용계사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원평지 마을 |
묘도비 | 최두칠 묘도비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원평지 마을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전주(全州) |
대표 관직 | 증 통훈대부 사헌부 감찰 |
[정의]
조선 후기의 진안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건(子建), 호는 추모재(追慕齋). 만육(晩六) 최양(崔瀁)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진(崔璡)이고 아버지는 최이관(崔以官)이었다. 아들로는 최현위(崔玄暐), 최현휘(崔玄暉), 최현요(崔玄曜) 등이 있다.
[활동 사항]
최두칠(崔斗七)[1683~1756]은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서 태어났다. 도덕심과 정의감이 강하였고 부모에 대한 효심이 매우 깊었다. 이에 최두칠이 사망한 지 120년이 지난 1871년(고종 8)에 이르러 진안군 유생들은 최두칠의 효행을 포상해 달라는 취지의 상소문을 조정(朝庭)에 올리게 된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1879년(고종 16)에 최두칠에게 증직(贈職)으로 통훈대부 사헌부 감찰(通訓大夫 司憲府監察)이 제수되었다.
[상훈과 추모]
최두칠의 위패는 용계 서원(龍溪書院)에 봉안되어 있다. 1871년(고종 8)에 진안군 유생들의 효행에 대한 포창을 상신하였으며, 1879년(고종 16)에 이르러 사헌부 감찰이 추증되었다.
1945년에 건립된 최두칠의 묘도비는 현재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원평지 마을에 있는 용계사 앞에 있다. 비문(碑文)은 민병승(閔丙承)이 지었고 글씨는 김영한(金寗漢)이 썼다. 비의 전면(前面)에는 ‘추모재 최공두칠 묘도비(追慕齋崔公斗七墓道碑)’라 새겨져 있다.
[묘소]
묘는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괘양산(掛陽山) 간좌원(艮坐原)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