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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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鳳捿齋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월평리 산 47-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노석 |
건립 시기/일시 | 1960년 - 봉서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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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0년 - 봉서재 보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0년 - 봉서재 보수 |
현 소재지 | 봉서재 -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월평리 산 47-1 |
성격 | 재각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나주 임씨(羅州林氏) |
관리자 | 나주 임씨(羅州林氏)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월평리에 있는 완산 이씨 집안의 재각.
[개설]
진안군 정천면 월평리에 있는 봉서재(鳳棲齋)는 임타의 두 번째 부인 완산 이씨[1621~1667]의 재각이다. 임진왜란 때 임타는 상주 목사였는데, 부인이 왜군에 사로잡히자 순결을 지키기 위해 자결하였다. 이 일을 알고서 선조가 옹주를 임타의 두 번째 부인[완산 이씨]으로 맞게 하였다.
완산 이씨는 봉림군(鳳林君) 이언선(李彦瑄)의 딸로 임타와의 사이에서 4남 2녀를 두었다. 임타는 금산 수령으로 있을 때 진안군 정천면 평은촌 만화정(萬花亭)에서 만년을 보내며 완산 이씨와 자녀들을 이곳으로 불러 함께 살았다. 임타의 무덤은 전라남도 함평군 신광면에 있으며 완산 이씨의 무덤은 재각 뒤쪽에 있다.
[위치]
봉서재는 진안군 정천면 월평리 오동 마을에 있다. 오동 마을은 용담댐 공사로 인해 수몰되었으며, 지금은 예전 오동 마을의 뒷산 자락에 있다. 정천면 월평리 하초 마을로 진입하다가 좌측 샛길로 들어가 용담댐을 따라 형성된 임도를 타고 약 3㎞를 가면 외따로 떨어져 있다.
[변천]
봉서재는 임타의 8대손 임학상(林學相)의 발의로 1960년에 건축하였다. 1970년과 2000년에 보수를 하였다.
[형태]
봉서재는 팔작지붕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현황]
봉서재 앞에 있던 마을이 용담댐의 수몰로 없어져 외따로 떨어져 있다. 산에서 북서 방향으로 있으며 앞에는 문이 있고 담장이 둘러싸고 있다. 나주 임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재각은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른 핵가족화와 교통의 발달 등으로 동족 관념이 희박해지면서 점차 소멸되어 가고 있으나 물질 만능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조상 숭배 등 효(孝)의 중요성을 일깨워 줄 수 있는 교육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