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9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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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
집필자 | 김성식 |
채록 시기/일시 | 1998년 5월 15일 - 「섬마 타령」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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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지 | 원평지 마을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
성격 | 민요 |
기능 구분 | 장원례 소리 |
형식 구분 | 선후창 방식 |
박자 구조 | 2분박 |
가창자/시연자 | 황덕주[67세, 남, 앞소리]|오길현[63세, 남, 앞소리]|황삼주[59세, 남, 뒷소리]|김문선[60세, 남, 뒷소리]|최원석[58세, 남, 뒷소리]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원평지 마을에서 김매기를 마치고 논 주인을 사다리에 태워 집으로 돌아오면서 부르는 장원례 소리.
[개설]
「섬마 타령」은 원평지 마을 논농사 민요 가운데 가장 독특하면서 신명난 노래이다. 이 노래는 김매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부르는 일종의 ‘장원례 소리’이다. 이때 김매기 한 논 주인을 사다리에 태우고 농악 풍장굿을 치면서 그 집으로 쳐들어가듯이 행진을 하면서 부른다. 농사가 장원을 했으니 한 턱 내라는 의미이다.
[채록/수집 상황]
「섬마 타령」은 1998년 5월 15일~16일에 마령면 원평지 마을에서 토박이인 황덕주[67세, 남, 앞소리]와 오길현[63세, 남, 앞소리], 황삼주[59세, 남, 뒷소리], 김문선[60세, 남, 뒷소리], 최원석[58세, 남, 뒷소리] 등으로부터 채록하였다. 앞소리의 가창자인 황덕주는 육자배기 토리에 능했고, 오길현은 기운찬 성음이 특징이었다.
평생을 농사일에만 종사한 황덕주는 근동에서 소문난 앞소리꾼이었던 그의 선친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소리를 익혔다고 한다. 오길현은 우체국 직원으로 근무한 바 있는데 마을의 토속 민요에 대한 애정이 대단히 깊다. 오길현은 소리하는 항성이 크고 우렁차며 매우 신명이 있다. 농요는 젊어서 어른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으며, 마을 농요가 마지막으로 불리던 때를 그의 나이 스물 서너 살 때쯤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1960년대 초중반으로 보인다.
[구성 및 형식]
「섬마 타령」은 한 사람이 앞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이 후렴구를 받는 선후창 방식으로 부른다. 그러나 앞소리를 다 마치기도 전에 이미 신명이 난 사람들은 앞소리 중간부터 소리를 따라 부르며 제창(齊唱)하듯이 부른다.
노래는 대단히 경쾌하고 힘이 넘치게 부른다. 장단은 부분적으로 중머리류와 세마치류가 섞여서 내재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가사 중에 “선마 선마가~” 하는 부분은 중머리에서 사용되는 2분박 리듬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음표에 부점을 사용하여 “가~고”, “따~라~서”라고 노래하는 부분은 그 흥겨운 느낌이 마치 세마치장단에서 사용하는 3분박의 리듬 형태에 속한 듯하다.
후렴구에서 “섬마 섬마가” 하는 부분은 뒷부분으로 노래가 진행되면서 “섬마 궁글려라”로 사설이 바뀌며 리듬이 분할되는데, 이에 따라 흥겨운 느낌도 더욱 배가되는 노래이다.
[내용]
진안군 마령면 원평지 마을은 김매기를 원칙적으로 두벌까지 맨다. 세벌은 두레라고 해서 부잣집에서 내는 술을 먹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치른다고 볼 수 있다. 초벌매기는 모심은 지 20~25일 후에 호미로 맨다. 그래서 ‘호무질’이라고 한다. 호미질은 모포기 사이의 흙을 뒤집어서 그 사이에 난 잡초를 땅에 묻어 썩히는 방식이다. 또 호미질을 하면 흙이 부글부글 끓으면서 거품이 빠지는데, 이는 거름이 썩으면서 발생하는 가스를 배출하는 효과를 말하는 것이다. 두벌매기는 초벌 맨 지 보름 후에 손으로 한다. 이때는 그 동안에 자란 풀을 손으로 훑듯이 쥐어뜯으면서 발자국의 깊이 팬 곳에 밀어 넣고 다시 밟아서 묻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섬마 타령」은 두벌매기 끝에 부른다. 물론 두레로 세벌까지 맬 경우라면 이때도 당연히 부른다. 두벌매기 할 무렵이면 벼의 생육 상태에 따라 그해 농사의 풍흉이 어느 정도일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따라서 농사가 잘 지어진 경우에는 두벌매기 끝내고 미리 준비한 사다리에 마치 가마를 태우듯이 논 주인을 태운다. 그리고 일행은 풍장을 치고 「섬마 타령」을 부르면서 마을로 진입하여 논 주인집으로 향한다. 이는 농사 장원했으니 닭 잡고 술내라는 시위이자 놀이이다.
「섬마 타령」은 마을의 다른 논농사 민요와 마찬가지로 메기는 소리[앞소리]와 받는 소리[후렴]로 구성된 노래이다. 먼저 앞소리꾼이 “에헤이 여루아 여루아 섬마 섬마가 내사 헤에헤이”라고 부르면 나머지 사람들이 똑같이 뒷소리로 받는다. 그러면 다시 앞소리꾼이 사설을 매기는 방식이다. 주요 사설은 “오늘 해도 다 돼야 가고 골목골목에 연기가 난다 에헤야”, “가면 가고 말면은 말지 네 잡놈 따라서 내가 돌아를 간다 에헤야”, “일락서산 해떨어지고 월출동녘에 달이 돋아온다 에헤야”, “옥사장아 문 열어 도라 불쌍한 춘향이 옥 안에 갇혔다 에헤야”, “간디 족족 정들여 놓고 밤길 걷기가 시시낙루헌다 에헤야” 등이다.
[현황]
원평지 마을의 논매는 소리가 농경 현장에서 사라진 시기는 1970년대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제초제의 보급으로 더 이상 집단 김매기의 필요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섬마 타령」을 부를 수 있는 주민들은 마을을 지키고 있어서 그 후에도 논매는 민요는 가창되었다. 1990년에 MBC 한국 민요 대전을 통해서 음반으로 녹음되었고, 전라북도립 국악원에서 녹음 및 보고서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또 7월 백중 술멕이 때는 여흥으로 간혹 부르곤 했다. 다만 현재는 앞소리를 메기는 사람들이 매우 고령인데다 건강까지 좋지 못하고, 또 「섬마 타령」을 부를 기회가 거의 없어 더 이상의 자연 전승은 힘든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