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19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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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致寅 |
이칭/별칭 | 광화(光華),광제(廣濟) |
분야 | 종교/신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순철 |
출생 시기/일시 | 1855년 - 김치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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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95년 - 김치인 사망 |
출생지 | 김치인 출생지 -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
활동지 | 김치인 활동지 -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중리 |
성격 | 종교인 |
성별 | 남 |
본관 | 경주(慶州) |
대표 경력 | 오방 불교[처사교] 창시 |
[정의]
개항기 진안 출신의 종교인.
[개설]
김치인(金致寅)은 연담(淵潭) 이운규(李雲圭)의 남학을 계승하여, 유·불·선 삼도(三道) 중 불교를 중심으로 유교와 도교의 장점을 취함으로써 일반 대중들이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신흥 종교인 금강 불교[처사교·오방불교]를 창시한 종교인이다..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광화(光華). 은진현(恩津縣) 여술(如述)[현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서 서씨(徐氏)에게 장가를 들었으며 슬하에 아들 김관봉(金寬鳳)을 두었다. 동생은 김영제(金永濟)이다.
[활동 사항]
김치인(金致寅)[1855~1895]은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서 태어났다. 1881년에 전라북도 고산 선야동으로 옮겨 도를 닦았고, 그 후 진산(鎭山) 태고사에서 부연(夫蓮) 이용래(李用來)라는 스승을 만나 구령주(九靈呪)를 받고 열심히 수도하여 득도하여, 1888년에는 오방 불교(五方佛敎)라는 명칭으로 포교를 시작했다. 35세 때 대둔산(大芚山) 석천암(石泉庵)으로 옮겨 수도할 때는 병자를 치료하는 신통력을 발휘하였고 36세 때에는 앞을 내다보는 예지력을 갖추었다 한다.
1893년 봄 39세 때 진안군 대불리 중리로 돌아와 많은 후학을 양성하다가,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을 때 보국을 위해 남학군을 조직하였다. 그는 남학에 의한 오방 불교 또는 처사교로 사회 운동을 전개하여 잘못된 국시(國是)를 바로잡고자 하였으나 사전에 관군의 습격을 받아 김치인을 비롯한 간부들이 체포되어 1895년 교수형에 처해졌다.
[저술 및 작품]
김치인에 관계된 자료는 문인들이 스승의 몇 편의 글을 모아 편찬한 『광화 선생집』이 있고, 스승의 법언을 채록하여 편찬한 『광화 김처사 법언록(光華金處士法言錄)』이 있으며, 후학들의 연원을 기록한 『금강 불교 연원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