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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놀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707
한자 花煎-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갑동리|금과면 매우리|동계면 구미리
집필자 황금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세시 풍속

[정의]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부녀자들이 봄철에 산을 찾아 화전을 부쳐 먹던 풍습.

[개설]

화전놀이는 부녀자들이 꽃피는 음력 3월 무렵에 산이나 들로 나가 꽃을 보고 화전(花煎)을 부쳐 먹으며 하루를 즐겁게 즐기던 풍속이다. 음력 3월 3일을 삼짇날이라고 한다. 이때는 또한 진달래가 만발할 즈음이다. 날씨가 따뜻하여 주로 부녀자들이 간단한 취사도구를 가지고 계곡을 찾아가 하루를 즐긴다.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진달래꽃으로 전을 부쳐 먹는데, 이것을 화전이라고 한다. 봄이면 삼삼오오 떼를 지어 산과 들로 봄놀이를 나가는데, 주로 ‘화전놀이’를 간다고 한다.

[연원]

『삼국유사(三國遺事)』 김유신조와 『고려사(高麗史)』「악지(樂志)」 속악(俗樂) 양주편(楊州篇)에는, 매년 봄에 남녀가 시냇가에 모여 잔치를 베풀고 노래를 불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권7, 세조 3년 4월 22일[을묘]의 기록을 보면, “이때에 금령(禁令)이 자못 간략하므로 무풍(巫風)이 성행하였으니, 도성의 남녀들이 떼 지어 술을 마시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매양 한 번 술자리를 베풀면 반드시 음악을 베풀고 해가 저물어서야 헤어져 돌아갔다. 남녀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큰소리로 떠들면서 태평 시대의 즐거운 일이라고 하였다. 귀가(貴家)의 부인들도 또한 많이 본받아서 장막을 크게 설치하고는 며느리들을 다 모아서 호세(豪勢)와 사치를 다투어 준비하는 것이 매우 극진하였다. 진달래꽃[杜鵑花]이 필 때에 더욱 자주 그러하니 전화음(煎花飮)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도 화전놀이는 양반 부녀자들에게 가장 기품 있고 풍류적인 놀이였다. 특히, 전라도와 경상도 등 남쪽으로 올수록 화전놀이가 성행하였다.

[절차]

부녀자들이 패를 나누어 봄철에 놀기 좋은 날을 정하여 인근의 야산이나 들로 나간다. 미리 준비한 음식과 전을 부칠 조리 도구 등을 챙긴다. 또 가무의 반주를 위해서 풍물을 가져가기도 한다. 천막을 치고 화전을 부쳐 푸짐한 먹거리가 마련되면 본격적인 놀이판이 벌어진다. 판마다 한결같지는 않았지만 음주 가무를 즐기고 담화를 나눈다. 그 밖에도 신명나는 다양한 놀이들이 베풀어졌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금과면 매우리에서는 여자들이 술 받고 떡을 해서 산등성이 평평한 곳을 골라 춤을 추고 장구치고 전을 부쳐 먹으며 하루를 놀았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버스를 이용하여 관광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화전놀이를 즐겼다.

동계면 구미리 귀주 마을에서는 예전에는 부녀자들의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일 년에 한 번 가는 화전은 여성들이 바깥바람 쐬는 날이었다. 평소에는 모를 심는다든지 하는 바깥일은 하지 않고, 낮에는 먹거리를 준비하고 밤에는 길쌈만 하며 힘든 나날을 보낸다. 화전 가는 날은 반드시 3월 삼짇날은 아니고 꽃피고 날이 따뜻해지면 간다. 쌀이나 돈을 걷어 밥과 반찬을 장만하여 이고 지고 산에 가서 참꽃 따서 전도 부쳐 먹고 논다. 지금의 꽃구경이나 단풍놀이와 같다.

인계면 갑동리 갑동 마을에서는 봄철 화전한다고 하면 마을에서 십시일반 추렴을 해서 하루 잔치를 벌인다. 돼지도 잡고 떡도 하고 전도 부치고 하루를 논다. 화전놀이가 끝나고 나면 바로 농번기에 들어가 바빠지기 때문에 그 전에 미리 노는 것이라 한다. 집집마다 약간의 쌀을 모아서 경비를 마련하였다. 한씨 종중에서는 논 한 마지기를 따로 두어 다소 얼마간이라도 재정적으로 화전놀이에 도움을 주었다.

갑동리 호계 마을의 할머니들은 젊어서 노상 화전놀이를 다녔는데, 주로 임실군 덕치면 일중리로 많이 갔다고 한다. 여자들이 또래끼리 무리 지어 밥을 해 갖고 가서 닭 삶아 먹고 전 부치고 장구 치고 춤추며 놀았다. 간혹 아들 못 낳은 사람이 부녀자들의 화전놀이에 따라가기도 했는데, 적선을 하기 위해서이다. 힘 못 쓰는 부녀자들을 위해 햇볕을 가릴 차일도 대신 쳐 주고 무거운 수통을 들어다 주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해서 결국 바라던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참고문헌]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한국 정신문화 연구원, 1991)
  • 『한국의 세시 풍속』Ⅱ-전북·전남·경북·경남·제주 편(국립 민속 박물관, 1998)
  • 『복흥 면지』(복흥 면지 편찬 위원회, 2008)
  • 『한국 세시 풍속 사전』(국립 민속 박물관, 2008)
  • 인터뷰(갑동리 호계 마을 주민 김복희, 여, 72세)
  • 인터뷰(갑동리 호계 마을 주민 서순남, 여, 86세)
  • 인터뷰(갑동리 갑동 마을 주민 한판호, 남, 80세)
  • 인터뷰(갑동리 갑동 마을 주민 한순효, 여, 85세)
  • 인터뷰(매우리 매우 마을 주민 조원임, 여, 86세)
  • 인터뷰(구미리 귀주 마을 주민 정지임, 여, 9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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