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3008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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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遺蹟-遺物-傳說 |
영어의미역 | Legend about Historic Sites and Relics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여수시 |
집필자 | 김준옥 |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에 전해 내려오는 유물과 유적에 얽힌 이야기.
[개설]
여수 지역에 전해지는 유적과 유물과 관련한 전설에는 임진왜란과 같은 전쟁을 통한 설화, 호국 불교를 통한 사찰 연기 설화, 지명의 유래와 관련한 설화, 여수 지역의 자연물과 관련한 전설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내용]
여수 지역에는 임진왜란과 관련한 유적과 유물, 그에 따른 민생들의 삶이 농후하게 드러난 이야기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전라남도 여수시 덕천동 마래산 석천사에는 용안수라는 샘이 있는데 용안수는 용의 꼬리에 해당하며, 용의 머리는 오동도에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석천사의 용안수를 마셨으며, 이것이 인연이 되어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후 제일 먼저 해전에 참전했던 유림의 교리 박대복이 충민사를 세웠다고 전하고 있다.
흥국사에 관한 연기 설화는 세 가지가 전해 온다. 흥국사 터를 잡을 때, 보조국사가 무등산 규봉암에서 기러기 세 마리를 만들어 날려 보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영취산 아래로 날아와 이곳에 흥국사를 지었다는 설화가 있다. 또한, 돌산 영구암에 있으면서 절터를 찾고 있었는데, 어떤 노승이 나타나 지금의 흥국사 터로 도사를 안내해서 와보니 과연 대가람이 들어설 만한 자리여서 흥국사를 지었다는 것이다.
어느 절이나 연기 설화가 있게 마련인데, 여수 지역에서 전쟁이 자주 일었기 때문에, 호국 불교의 필요성은 항시 강조되었고, 그래서 충민사에 대한 연기 설화도 흥국사와 같은 맥락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지금은 폐허로 변해 버렸지만,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현천리 매산의 흥국암 터도 문자 그대로 보면 역시 보국 사찰이었을 것임이 틀림없다.
전라남도 여수시 경호동에 있는 경도(京島)에는 백여 년 전만 해도 날씨가 흐리고 파도가 치는 밤이면 성산 어느 곳에서 가냘프게 흐느끼는 여인네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흔적이 사라진 채 비바람에 허물어진 돌들만 이끼에 쌓여 있다. 여기에는 신화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려 후기 어느 해에 경도의 내동마을 앞 해발 약 100m의 성산에 미모의 여인이 수많은 시종을 거느리고 외롭게 살고 있었다. 시종들은 두 무리로 나누어 한 무리는 성산 뒤쪽 평지에 커다란 대궐을 짓고, 또 다른 한 무리는 부근 해변과 산지 주변에서 커다란 돌을 주어다가 21m 높이의 성을 쌓아 올렸다. 바람결에 들려온 소문에는 경도에 정착한 미모의 여인은 왕비이고 그 밖의 시종들은 조정의 신하들이라 했다.
경도로 쫓겨 온 사연은, 어느 날 왕비가 어전에서 실수로 방귀를 뀌는 무례를 범하는 바람에 청천벽력 같은 귀양을 받고 유배된 것이라고 했다. 이후부터 왕비는 축성된 성내 4천 5백여 평의 땅을 갈아 춘하추동 갖가지 씨를 뿌리고 거두어 차차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궁궐을 잊지 못한 왕비는 조정에 나아가 관용의 은혜를 간곡히 진언했으나 거절당했다.
다시 경도로 돌아온 왕비는 유배 당시 옥동자를 낳았다. 왕비는 이 옥동자의 성을 자신의 성인 함양여씨를 성으로 주었다. 왕자는 날이 갈수록 무럭무럭 자라나 이웃 규수와 혼인하여 종족을 번성케 했다고 한다. 이 설화는 여씨 중시조 이야기다. 역사적 진실성이 없어 경도의 지명 유래 신화로 꾸며져야 하지만, 설화로 남아 있어 그 신비성이 다소 떨어진다.
한편, 여수 지역은 천혜의 자연 관광 자원이 많다. 백도나 거문도 등 남해안 중심의 볼거리에는 하나같이 전설이 따라다닌다. 다만, 이러한 곳의 전설은 지역의 형태에 따라 오랜 세월 주위의 지역민에 의하여 창작된 것으로, 이야기의 전설적 가치보다는 명소 소개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신선바위와 같은 이야기는 전설적인 측면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거문리 서도 기와집 몰랑과 전수월산[일명 보로봉] 중간 남서쪽 해안에 깎아 세운 듯한 약 50m 정도 높이의 바위가 있고, 정상에 5~6평정도 되는 평평한 바위에 커다란 바둑판 모양이 새겨 있다. 주변 경관이 너무도 수려한 나머지 하늘의 신령이 매일같이 내려와 바둑을 두고 풍류를 즐겼다고 하여 신선바위라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