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지도』 「덕산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055
한자 海東地圖德山縣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문헌/문서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민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750년대 - 『해동지도』 「덕산현」 제작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고지도

[정의]

1750년대에 제작된 『해동지도』에 수록된 현재 충청남도 예산군의 삽교읍, 덕산면, 고덕면, 봉산면에 해당하는 덕산현의 지도.

[개설]

『해동지도(海東地圖)』는 1750년대 영조 대에 홍문관(弘文館)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 후기의 회화식 지도이다. 군현 지도에 주기(註記)를 첨부한 형태로 당시 정책 결정의 차원에서 활용하였다. 현재의 예산군 삽교읍, 덕산면, 고덕면, 봉산면을 포함하는 조선 후기 덕산현의 모습이 수록되어 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제작 발급 경위]

『해동지도』는 민간에서 제작된 지도집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데 활용된 군현 지도집이다. 『해동지도』의 일부는 비변사(備邊司)에서 제작하고 사용하였던 군현 지도를 사용하고 있는데, 오려 붙인 지도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군현 지도 주위의 주기는 모두 정책 결정에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답 총수와 별개로 실(實)전답 총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과 더불어 호구(戶口), 환곡(還穀), 군병(軍兵) 등의 사항에 대한 총수를 주기로 담고 있는 것에서 정책적 측면에서의 활용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지도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형태]

규격은 가로 47㎝, 가로 30.5㎝이며, 지도의 주위에 주기를 배치하고 있다. 『해동지도』 「덕산현」의 경우 쪽지가 두개 붙어 있는데, 비변사 지도를 참조하여 수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구성/내용]

조선 전도, 도별 및 군현별 지도에 더하여 「천하도(天下圖)」, 「중국도(中國圖)」, 「황성도(皇城圖)」, 「유구지도(琉球地圖)」, 『요계관방지도(遼薊關防地圖)』 등 세계지도, 외국 지도, 관방(關防) 지도 등이 망라되어 있다.

덕산현 읍치는 덕산면 읍내리 일대에 있었다. 부근에 사직동, 향교말, 북문리 등 지명이 남아 있어 옛날 읍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형승조에 “덕산현은 동쪽으로 큰 들을 끼고, 북쪽에 앵산(鶯山)을 등지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읍치 서쪽에 가야사라는 절이 보인다. 흥선대원군이 가야사를 없애고 남연군의 묘를 쓴 곳의 지형은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뽑힌다. 읍치 남서쪽에 보이는 덕숭산 기슭 수덕사 대웅전은 1308년(고려 충렬왕 34)에 건립되었으며, 맞배지붕의 장중한 맛이 있다. 수덕사 대웅전은 창건 연대가 알려진 목조 건물로는 가장 오랜 것이다.

특이한 점은 객사(客舍)가 명당형국 안에 자리잡은 반면에 아사(衙舍)는 동쪽으로 약간 비껴 있다. 읍치 북동쪽 해창(海倉) 건물은 20칸으로 되어 있다. 해창포는 삽교천변에 있어 수운이 편리하여 덕산현에서 나오는 미곡을 실어 보내는 포구 역할을 하였다. 전체적으로 진도(津渡), 사우(寺宇) 등 고적 유적이 자세히 표시되어 있지 않다. 해미 경계에 있는 대치(大峙)는 내포 제읍(諸邑)의 인후(咽喉)로서 전략 요충지였다.

[의의와 평가]

『해동지도』는 국내 단위별 지도, 세계지도, 외국 지도 및 관방 지도 등 당대까지 제작된 회화식 지도를 집성한 것에 그 의의가 있다. 회화식 지도의 주위에 지방 통치에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을 주기에 넣은 것은 지도를 중심으로 지리지의 요소를 결합한 것이다. 후대의 『여지도서(輿地圖書)』 제작으로 이어지는 정책 지도 편찬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으며, 영조대 덕산 지역의 지명은 물론 주기를 통해 사회 모습까지 파악할 수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http://e-kyujanggak.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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