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3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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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豊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삽교읍|고덕면|봉산면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초기 |
집필자 | 임선빈 |
제정 시기/일시 | 고려 초 - 덕풍현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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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시기/일시 | 1405년(태종 5) - 덕풍현과 이산현을 덕산현으로 합병 |
관할 지역 | 덕풍현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
[정의]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까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일원에 설치되었던 지방 관청이자 행정구역 명칭.
[개설]
덕풍현(德豐縣)은 지금의 예산군 덕산면, 삽교읍, 고덕면, 봉산면 일원에 고려 초 개설되어 조선 초까지 존속되었던 지방 행정구역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덕풍현(德豐縣)은 백제의 금물현(今勿縣)이었으며, 신라 경덕왕 때에 금무현(今武縣)이라 고쳐 이산군의 속현이 되었고, 고려 초에 덕풍현으로 변경되었다. 백제 때의 마시산군과 금물현이 통일신라 경덕왕 때 각각 이산군과 금무현으로 개칭되었고, 고려 태조가 금무현을 다시 덕풍현으로 개칭하였다.
[변천]
덕풍현은 1018년(현종 9)에 운주에 속하게 되었고, 1173년(명종 5)에 감무를 두었다. 그런데 고려 말 최영의 건의로 도절제사영을 이산현에 설치하면서, 이산현 치소가 내상(內廂)[고려시대에 출정군 총사령부의 참모기구 또는 각도 도절제사의 군영] 성밑[城底]에 있었기 때문에, 작은 고을인 이산현은 각종 노역과 공물의 부담이 커져 인구가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리하여 1405년(태종 5)에 덕풍현과 이산현을 합병하여 덕풍현(德豊縣)으로 이름을 고쳤다. 감무가 파견되던 덕산현에는 1413년(태종 13)에 전국의 모든 감무가 현감으로 바뀌는 조치가 취해지면서 종6품직인 현감이 부임하여 근무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태종 말 충청도 도절제사의 영문을 덕산에서 해미로 옮긴 후에는 덕산현 옛 성은 사방으로 통하는 곳에 있는데도 수호하는 자가 없어서, 1421년(세종 3)에 현감이 근무하는 덕산현 치소를 도절제사의 영문이 있던 성내로 옮겼다.
덕산현은 1837년(헌종 13)에 군으로 승격되었다. 1895년(고종 32) 부제(府制)가 실시되면서 홍주부 덕산군이 되었으며, 1896년(견양 1) 도제(道制)가 실시되면서 충청도 덕산군이 되었다. 조선시대의 덕산현[군] 지역은 1914년의 지방행정구역 통폐합 때 예산군으로 병합되어 덕산면, 삽교읍, 고덕면, 봉산면을 이루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덕풍현 지명의 변천과 행정구역의 변동을 통해 예산군 역사의 일부를 고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