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물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361
한자 今勿縣
영어공식명칭 Geummulhyun
이칭/별칭 금무현,덕풍현,고덕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고대/삼국시대/백제
집필자 임재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 시기/일시 백제시대 - 금물현 개설
개정 시기/일시 742년(통일신라 경덕왕 1)~765년(통일신라 경덕왕23) - 금물현이 금무현으로 개칭
관할 지역 금물현 -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일대지도보기

[정의]

백제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 설치되었던 행정구역.

[개설]

예산 지역에 군현이 설치된 것은 백제 때부터다. 당시 예산 지역에는 임존성과 함께 마시산군이 설치되어 있었다. 삽교천 지역은 내포 지역에서는 큰물로 불렸기 때문에 이 물줄기를 다스리는 현을 큰물현이라 했다. 이것을 백제시대에는 백제식 한자음으로 금물현(今勿縣)이라 하였고, 통일신라 경덕왕 때 금무현(今武縣)으로 개칭하였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임존성임성군으로 바뀌고, 마시산군이산군으로 바뀌었다. 임성군의 영현으로는 고산현과 고량부리현이 있었고, 이산군의 영현으로 우견현과 금무현이 있었다. 이산군은 대체로 현재의 덕산면 일대에 자리하고 있었고, 이산군의 영현인 우견현은 서쪽, 즉 지금의 홍성군 갈산면과 서산시 고북면, 해미면 일대에 있었으며, 금무현은 지금의 고덕면 일대에 자리하고 있었다.

고려 태조 때 큰물현의 본뜻을 살리면서 고려에 ‘큰 덕을 베푼 곳’이란 의미를 담아 덕풍현(德豊縣)이란 순한자식 이름으로 고쳤다.

[관련 기록]

금물현 명칭의 변경에 대해서는 『삼국사기(三國史記)』나 『고려사(高麗史)』,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 나타난다. 『삼국사기』에 “금무현은 원래 백제의 금물현이었던 것을 경덕왕이 개칭한 것이다. 지금의 덕풍현이다.”라는 기록이 처음 실려 있다.

[변천]

백제 때의 마시산군금물현이 신라 경덕왕 때 각각 이산군금무현으로 개칭되었고, 고려 태조가 금무현을 다시 덕풍현으로 개칭하였다. 1405년(태종 5) 이산현과 덕풍현을 합쳐 덕산현이라고 하였고, 1895년(고종 32) 부제(府制)가 실시되면서 홍주부 덕산군이 되었으며, 1896년(견양 1) 도제(道制)가 실시되면서 충청도 덕산군이 되었다, 1914년 덕산군 전체가 예산군에 통합되면서 덕산면이 되어 오늘에 이른다.

백제부흥운동 때 활약했던 흑치상지는 원래 백제 왕실과 마찬가지로 부여씨였는데 흑치 땅에 오랫동안 거주하다보니 흑치가 성이 되었다고 한다. 흑치금물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