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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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承瑜旌閭 |
이칭/별칭 | 효자 이승유 정려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상항방산로 280[방산리 344-5]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해준 |
건립 시기/일시 | 1904년 - 이승유 정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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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이승유 정려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상항방산로 280[방산리 344-5] |
성격 | 정려 |
양식 | 맞배지붕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에 있는 1904년 세워진 효자 이승유의 정려.
[개설]
이승유 정려는 조선 후기 예산 지역에 살았던 이승유(李承瑜)[1824~1890]의 효행을 기리고자 1904년(광무 8) 세운 것이다. 이승유의 본관은 한산, 아버지는 이광임(李廣任)[1784~1857]이고, 아계 이산해(李山海)[1539~1609]는 10대 조부이다. 이승유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공경하고 받들어 모시는 일이 예에 어긋난 적이 없다고 한다. 아버지 이광임이 학질을 얻어 위독하자, 자신의 손에 상처를 내어 피로 아버지를 두 번이나 살렸다고 전한다. 아버지 이광임이 죽은 이후 아침저녁으로 산소를 찾아가 인사를 하였는데 이승유가 절을 하던 자리에는 풀이 자라지 않았다고 한다.
[위치]
예산군 대술면 소재지 북동 방면으로 약 3.5㎞ 이동한 후 방산저수지 방향으로 3㎞ 더 가면 방산저수지 남쪽에 이광임 선생 고택[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이 있다. 이승유 정려는 이광임 선생 고택바로 앞에 있다.
[변천]
이승유의 효행이 널리 알려지면서 지역 인사들이 상소를 올려 정포(旌褒)를 내려 줄 것을 수차례 청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1904년에 이르러서 ‘종사랑 중학교교관’ 증직과 함께 효자 정려가 내려졌다. 이승유의 효행은 후손 수당 이남규(李南珪)[1855~1907]의 문집『수당집(修堂集)』에 ‘효자 이공 행장’으로 기록되어 후세에 전한다.
[형태]
이승유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형식이다. 건물 중앙 상단에 1904년 내려진 ‘효자 증종사랑 중학교교관 이승유지문(孝子贈從仕郞中學校敎官李承瑜之門)’이라는 명정 현판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