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711 |
---|---|
한자 | 金漢藎 |
영어공식명칭 | Kim Hansin |
이칭/별칭 | 유보(幼補),월성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고순영 |
출생 시기/일시 | 1720년 - 김한신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732년 - 김한신 화순옹주와 혼인 |
활동 시기/일시 | 1732년 - 김한신 월성위 책봉 |
활동 시기/일시 | 1732년 - 김한신 오위도부도총관 활동 |
몰년 시기/일시 | 1758년 - 김한신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58년 - 김한신 합장묘 조성. 재실 건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4년 - 월성위 김한신묘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9호로 지정 |
거주|이주지 | 김한신 거주지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
부임|활동지 | 김한신 활동지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
묘소|단소 | 월성위 김한신묘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
성격 | 문신|부마 |
성별 | 남 |
본관 | 경주(慶州) |
대표 관직 | 오위도총관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남도 예산에서 활동한 부마이자 문신.
[개설]
김한신(金漢藎)[1720~1758]은 영조의 둘째 딸인 화순옹주(和順翁主)와 혼인하여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졌다.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일대를 별사전(別賜田)으로 하사받아 집[지금의 김정희 선생 고택]과 아버지의 묘소를 짓고, 경주김씨 원찰인 화암사를 중건하였다.
[가계]
김한신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유보(幼補), 시호는 정효(貞孝)이다. 아버지는 영의정 김흥경(金興慶)이며, 어머니는 평시령 황하영(黃夏英)의 딸 창원황씨(昌原黃氏)이다. 1732년(영조 8)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에 봉해졌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증손자이다.
[활동 사항]
김한신은 1732년 영조의 둘째 딸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에 봉해졌고, 벼슬은 오위도총부도총관·제용감제조를 지냈다. 김한신은 키가 크고 인물이 준수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총명하였다고 한다.
김한신은 서예에 관심을 두어 글씨를 잘 썼으며, 그중에서도 팔분체(八分體)에 뛰어나 애책문(哀冊文), 시책문(諡冊文) 등을 많이 썼다. 전각에도 뛰어나 인보(印寶)를 전각하였다. 1758년(영조 34) 사망하였다.
[묘소]
1758년 김한신이 사망하자 부인인 화순옹주도 김한신을 따라 자결하였다. 이에 영조는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애통해하였고,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두 사람의 합장묘가 조성되었다.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묘인 월성위 김한신묘는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9호로 지정되었다. 두 사람의 묘를 지키기 위해 53칸의 재실이 건립되었으나 불에 타 없어지고, 화순옹주 홍문[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5호]이 걸려 있는 대문간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