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0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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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琛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조민희 |
부임|활동지 | 대련사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동산2길 119[동산리 산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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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활동지 | 임존성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마사리 |
성격 | 승려 |
성별 | 남 |
[정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백제부흥운동을 주도한 승려.
[개설]
도침(道琛)[?~?]은 백제가 멸망한 후 백제부흥운동에 가담한 승려이다. 예산 봉수산 기슭에 있는 대련사를 창건했다고 전한다.
[가계]
도침이 어디에서 출생하였는지 밝혀진바 없으나 도침은 그 당시 상당히 높은 신분계층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임존성과 주류성 부근의 사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활동 사항]
도침은 백제가 멸망하자 무왕(武王)의 조카인 왕족 복신(福信)과 함께 일본에 있던 왕자 부여풍(扶餘豊)을 데려 와 왕으로 추대하여 당나라로 압송된 의자왕을 대신하여 백제의 왕통을 이었다. 나당연합군에게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백제부흥운동을 펼치며 주류성에 부흥군의 근거지를 만들고 독립 국가의 면모를 갖추었다. 도침은 스스로 영군장군(領軍將軍), 복신은 상잠장군(霜岑將軍)이라 칭하고 백제의 유민들을 모아 임존성에 웅거하여 기세를 떨쳤다.
백제부흥군은 날로 기세가 높아져 사비성을 포위하여 당군을 궁지에 몰아넣기도 하였다. 대전 부근의 지라성, 사정성, 옹산성, 진현성 등에 웅거하면서 신라군이 웅진[현 공주시]과 사비[현 부여시]로 통하는 양도를 끊어 나당연합군을 괴롭혔으나 끝내 사비성은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이후 신라 문무왕의 친정으로 인하여 백제부흥군의 거점이 무너지며 사비성 부근의 20여 성이 다시 당에 항복하여 부흥군의 세력은 점차 약해졌다. 거기에다 자진, 복신, 도침 등 세 장수의 세력 다툼은 내부 분열 양상마저 나타냈다. 먼저 자진을 유인궤와 내통한 혐의로 처형한 복신은 도침마저 처형하였다. 도침이 처형된 배경은 기록이 정확하지 않아 알 수 없으나 여러 정황이나 문헌 기록으로 미루어 도침의 세력이 복신을 능가하였기 때문에 지휘권 다툼으로 인해 분노한 복신에게 도침이 살해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