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6015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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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山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삽교읍|봉산면|고덕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임선빈 |
제정 시기/일시 | 1405년(태종 5) - 덕산현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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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시기/일시 | 1914년 - 덕산현 덕산군이 예산군으로 폐합 |
개정 시기/일시 | 1837년(헌종 13) - 덕산현 덕산군으로 승격 |
관할 지역 | 덕산현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
[정의]
조선시대에 충청남도 예산군의 덕산면, 삽교읍, 고덕면, 봉산면 일원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개설]
덕산현은 현 예산군의 덕산면, 삽교읍, 고덕면, 봉산면을 포괄하는 지역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옛 고을명이다. 1405년(태종 5) 고려시대의 덕풍현(德豐縣)과 이산현(伊山縣)을 합병하여 덕산현이라 하였으며, 1413년(태종 13)부터 현감이 부임하였다. 1837년(헌종 13) 덕산군으로 승격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예산군의 일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이산현은 백제의 마시산군(馬尸山郡)이었는데, 통일신라 때에 이산군(伊山郡)으로 고쳤으며, 고려에 와서 1018년(현종 9)에 운주(運州)에 붙였다가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던 고을이다. 덕풍현은 백제의 금물현(今勿縣)이었는데, 신라 때에 금무현(今武縣)이라고 고쳐 이산군의 속현으로 만들었고, 고려에 와서 덕풍으로 고쳐 1018년에 운주에 붙였고, 1173년(명종 3)에 감무를 두었다. 그런데 고려 말 최영의 건의로 도절제사영을 이산현에 설치하면서, 이산현 치소가 내상(內廂)[각도 도절제사의 군영]의 성밑[城底]에 있었기 때문에, 작은 고을인 이산현은 각종 노역과 공물의 부담이 크고 인구가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이에 이산현과 덕풍현을 합쳐 1405년 덕산현을 개설하게 되었다.
[관련 기록]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여도비지(輿圖備志)』, 『대동지지(大東地志)』, 『호서읍지(湖西邑誌)』 등의 옛 지리지나 읍지 등에 기록되어 있다. 각 지리지와 읍지들은 형식과 방식에 차이가 있으나 연혁을 시작으로 호구, 군정, 성씨, 전답, 토의, 토공, 약재, 토산, 성곽, 역원, 불우, 인물, 관원, 형승, 산천, 학교, 사묘, 고적, 열녀, 제영 등 여러 항목에서 덕산현의 자세한 상황들을 기록하고 있다.
[내용]
조선 초기의 자료인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덕산현의 사방 경계를 동쪽으로 예산(禮山)에 이르기 15리[약 5.89㎞], 서쪽으로 해미(海美)에 이르기 15리, 남쪽으로 홍주(洪州)에 이르기 10리[약 3.93㎞], 북쪽으로 면천(沔川)에 이르기 20리[약 7.85㎞]라고 하였으며, 내박소(乃朴所)와 신곡소(薪谷所)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였다. 또한 덕산현의 호구는 649호, 3,214명이며, 군정(軍丁)은 시위군(侍衛軍)이 20명, 진군(鎭軍)이 230명, 선군(船軍)이 87명이었다. 조선 초기 덕산현에는 종6품 현감과 훈도 1명을 두었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조선 후기의 덕산현감은 문과, 무과, 음서 출신을 골고루 임명하였으며, 관속은 좌수 1명, 별감 2명, 군관 8명, 아전 40명, 지인 32명, 사령 27명, 관노 16명, 관비 12명이었다. 관아는 81칸이며, 62칸의 객사가 있었다. 장촌면(場村面)·대조지면(大鳥旨面)·대덕산면(大德山面)·나박소면(羅朴所面)·현내면(縣內面)·내야면(內也面)·도용면(道用面)·외야면(外也面)·고현내면(古縣內面)·고산면(高山面)·거등면(居等面)·비방곶면(非方串面) 등의 12개 면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1759년(영조 35)의 기묘장적(己卯帳籍)에 의하면 호수는 편호 5,044호, 인구는 남자 7,808명, 여자가 1만 560명이었다. 토지는 밭이 1,867결, 논이 2,771결이었다.
[변천]
덕산현은 조선 초기인 1405년 설립되었다. 1413년 전국의 모든 감무가 현감으로 바뀌면서 덕산현에도 감무 대신 종6품직인 현감이 부임하여 근무하였다. 태종 말[1418년 추정] 충청도 도절제사의 영문을 덕산에서 해미로 옮긴 후에는 덕산현 옛 성은 사방으로 통하는 곳에 있는데도 수호하는 자가 없어서, 1421년(세종 3)에 현감이 근무하는 덕산현 치소를 도절제사의 영문이 있던 성내로 옮겼다. 덕산현은 1837년 군으로 승격되었으며, 조선시대의 덕산현[덕산군] 지역은 1914년의 지방행정구역 통폐합 때 예산군으로 병합되어 덕산면, 삽교읍, 고덕면, 봉산면을 이루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덕산현 지명의 변천과 행정구역의 변동을 통해 예산군 역사의 일부를 고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