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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0831
한자 和順寒泉農樂
이칭/별칭 ,한천 풍물,한천 농악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놀이/놀이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한천리
집필자 송기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9년 8월 3일연표보기 - 화순 한천 농악 전라남도 무형 문화재 제6호로 지정
성격 집단놀이|민속음악|민속예능
노는 시기 정월 보름|부정기적 공연
관련 의례 행사 당산굿|철륭굿|마당밟이
예능 보유자 노승대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무형 문화재 제6호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한천 마을에서 쇠·징·장구·북 등의 악기를 연주하며 행하는 놀이.

[개설]

화순군 동복면 한천 마을에서 전승되는 마을 농악으로 1979년 전라남도 무형 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한천 농악은 일반적인 마을 농악의 경우처럼 마을 내에서 당산굿을 하고, 마당밟이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그러다가 1950~60년대에 농악을 매개로 주변 마을과 경쟁하면서 예능적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당시 화순군 동복면에는 농악을 잘 하는 마을들이 많았는데 특히 천변리, 독상리, 연월리, 신월리 등은 마을 단위의 농악이 ‘씩씩했던’ 마을로 꼽힌다. 당시 독상리에 살던 이선일 씨가 가장 뛰어난 상쇠였는데, 그가 한천 마을로 이주해 오면서 비로소 한천 농악의 예능이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1950년대 농악계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1960~1970년대 왕성한 공연 활동을 하면서 외부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1979년 전라남도 무형 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연원]

한천 농악의 유래를 알 수 있는 확정적인 단서는 없다. 관련 자료가 없기 때문에 언제부터 어떤 식으로 농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 한천 농악은 일반적인 마을 농악의 경우처럼 마을 내에서 당산굿을 하고, 마당밟이를 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음력 정월에 마을의 평안을 빌기 위해 당산제를 지내고 집집마다 마당밟이를 하고 또 농사철에 두레를 꾸려서 일을 할 때에 농악을 하는 것은 보편적인 풍속 중의 하나다.

한천의 경우도 이와 같은 세시 풍속의 일환으로 농악을 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현 주민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선조들의 입향 시기로 본다면 18세기 이후에 현재의 마을이 설촌된 것으로 보이므로 농악의 성립도 그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역대 상쇠들의 계보에서 19세기 인물들이 초기 상쇠로 거론되는 것으로 보아 19세기에 한천 마을의 농악이 성립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한천 농악은 20세기에 특화된 것으로 보인다. 역대 상쇠들의 활동상을 점검해 보면, 1950~1960년대에 농악을 매개로 주변 마을과 경쟁하고 유명 상쇠의 영향을 받아 체제를 갖춰간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다. 동복면에는 농악을 잘 하는 마을들이 많았고 이름난 연희자도 여럿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특히 천변리, 독상리, 연월리, 신월리 등은 마을 단위의 농악이 ‘씩씩했던’ 마을로 꼽힌다. 당시 독상리에 살던 이선일 씨가 가장 뛰어난 상쇠로 이름을 날렸고, 그가 한천 마을로 이주해 오면서 비로소 한천 농악의 예능이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1950년대 농악계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1960~1970년대 왕성한 공연 활동을 하면서 외부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1979년 전라남도 무형 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놀이 도구 및 장소]

한천 마을에서는 농악을 하는 사람들을 치배, 매구꾼, 굿꿋, 군총 등으로 부른다. 농악대의 악기와 치배 구성은 기수, 취수, 악기수, 잡색으로 구분할 수 있다. 기수는 깃발을 드는 사람이고, 깃발로는 영기와 농기가 있다. 영기는 2개가 1쌍으로 제작되고, 깃발에 ‘令’이라고 쓰여 있으며 농악대의 질서를 상징한다. 농기는 만장 형식의 깃발에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이다. 취수로는 쇄납을 부는 쇄납수가 있다. 악기는 쇠, 징, 장구, 북, 소고 등으로 구성되고 각각의 잽이들이 편성된다.

상쇠는 흰색 한복 위에 검정색의 반팔 쾌자를 입는다. 쾌자 팔소매는 삼색 색동으로 장식한다. 등 뒤에는 쇠로 된 거울 두 개를 단다. 이 거울은 각각 해와 달을 상징한다고 한다. 쇠잽이의 대표인 상쇠가 농악대의 대표가 된다. 나머지 악기수들은 흰옷에 삼색 드림을 매고 고깔을 착용한다. 잡색으로는 대포수, 조리중, 비리쇠, 양반광대, 할미광대, 각시광대 등이 있다. 잡색들은 마당밟이에서 앞잡이가 되어 목적지를 지시하고, 집에 들어가서는 집주인과 흥겹게 춤을 추며 논다.

한천 마을의 전통적 연행 공간은 마을로서 ‘숲에’라고 불리는 천변 숲, 마을길, 가가호호 등을 돌면서 연행한다. 순서대로 살펴보면 전수 회관에서 판어울림굿을 시작해 들당산과 철룡굿을 하고 이어 마을 내 네 군데의 샘에서 샘굿을 하고 마당밟이를 하는 순으로 진행된다. 개인 집에 들어가 집안 곳곳을 돌며 마당밟이를 하고 판굿을 한 다음 마을 입구로 이동해 날당산을 하는 순서다.

[놀이 방법]

한천 농악의 연행 과정을 장면화해서 정리하면 1) 판어울림과 영제, 2) 들당산, 3) 철룡굿, 4) 마을 샘굿 -① 찬시암굿 ② 동청시암굿 ③ 버버리시암굿 ④ 온뜰시암굿, 5) 마당밟이 - ① 문굿 ② 샘굿 ③ 장꼬방굿 ④ 조왕굿성주굿 ⑥ 마당굿[구정 놀이] ⑦ 인사굿, 6) 판굿 - ① 1채굿 ② 2채굿 ③ 3채굿 ④ 4채굿 ⑤ 5채굿 ⑥ 6채굿 ⑦ 7채굿, 7) 날당산의 순서로 진행된다.

판어울림은 농악판이 어우러지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과정이다. 굿을 한다는 것을 주위에 알리고, 먼저 나온 치배들이 손을 맞춰 보면서 농악 연행을 준비하는 단계다. 농악대가 일채를 치면서 원을 그리며 돌다가 판어울림 가락과 삼채 등을 몇 차례 반복해서 친다. 판이 어느 정도 무르익을 무렵 영기와 농기를 세워 놓고 그 앞에 제상을 차린 후에 영제(令祭)를 지낸다. 영제란 영기(令旗)를 향해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들당산굿은 마당밟이를 하기 전에 신을 모셔 오는 과정이다. 들당산을 하는 장소는 ‘숲에’라고 부르는 곳이며 그곳에 있는 나무 아래에서 들당산굿을 한다. ‘숲에’는 마을 앞 천변을 들러 심어진 나무숲 중의 일부다. 농악대가 길굿을 하면서 들당산으로 들어서서 당산나무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고 영산다드래기, 28수, 열두머리, 느린삼채, 된삼채, 벙어리삼채 등을 치고 하직 인사를 한다.

철룡[天龍]굿은 농악대가 마을 뒷산인 ‘뒷메’를 향해 서서 하는 굿이다. 한천 마을에서는 풍수적으로 마을 뒤에 자리한 뒷메를 지맥(地脈)의 근원이라고 여겨서 각별하게 여긴다. 농악대가 뒷메[철룡]를 향해 늘어서서 “가강치배 문안이요”라고 인사를 한다. 이어서 ‘삼채-갠지갱-휘모리-다스름-삼채-영산다드래기-쟁열두머리-휘모리-삼채-갠지갱-휘모리-된삼채-갠지갱-휘모리-된삼채-갠지갱-휘모리-인사굿’ 순으로 가락을 연주한다.

샘굿은 마을 공동 우물에서 하는 굿이다. 한천에는 샘굿을 하는 샘이 네 군데다.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 찬시암[한천]이며, 이어 동청시암, 버버리시암, 온뜰시암 순으로 샘굿을 한다. 각 샘마다 치는 가락은 동일하다. 샘굿 가락을 치고 휘모리로 몰아가 끊고, 이채를 치고 영산다드래기를 하고 끝낸다. 샘굿 가락에는 ‘물 주소 물 주소 시암 각시 물 주소. 건너가 건너가 또랑 각시 건너가’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마당밟이는 개인 가정의 액막이를 위해 치는 농악이다. 길굿을 하고 이동하다가 대문 앞에 다다르면 문굿을 한다. 이어 집안으로 들어가 집안 곳곳을 다니며 액을 막고 복을 비는 굿을 하게 된다. 집 대문 앞에서 정문삼채를 친 후 집으로 들어가서 샘굿, 마당굿, 정재굿, 장독대굿, 성주굿, 노적굿 등을 연행한다. 정재굿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상쇠가 “매귀여”라고 치배들을 부르면 농악대가 “예”라고 대답을 하고, 상쇠가 다시 “일 년은 열두 달 과년은 열석 달에 드는 액을 몰아내세”라고 하면 치배들이 “그렇고 말고”라고 화답을 한다. 그리고 액막이 소리를 제창한다. 이어 삼채 가락으로 ‘몰아냈다 몰아냈다 방구석도 네구석 정재구석도 네구석 객구 잡신 몰아냈다.’라는 의미가 담긴 가락을 몰아치다가 이채로 돌려 끊고 길굿을 하며 장독대로 이동한다.

판굿은 채굿 형식으로 돼 있다. 판굿이 시작되면 맨 먼저 판어울림굿을 하고 이어 순서대로 채굿을 연행한다. 채굿은 일채부터 칠채까지 일곱 개의 과정으로 구성돼 있고 각 채굿마다 대표적인 굿이 하나씩 포함돼 있어서 그 순서에 맞춰 판굿이 진행된다. 1채부터 7채까지 일곱 개의 과정으로 구성돼 있고, 각 채굿 안에 특별한 가락이나 놀이가 들어 있어서 그것을 순서대로 펼쳐 보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독특하다. 채굿은 도입 부분에서 해당 채 가락을 연주하고 이어 대표 가락이나 놀이를 연행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1채굿에서는 ‘영산다드래기+28수+열두머리’등으로 구성된 가진가락 한 세트를 연주한다. 2채굿에서는 도입 가락[2채]을 친 후 풍년굿 가락을 연주하고, 3채굿에서는 도입 가락[3채] 후에 호호굿을 연주한다. 그리고 4채굿에서는 4채와 가진가락 세트를 연주한 후에 소고놀음, 북놀음, 장구놀음 등의 구정놀이를 연행한다. 또한 5채굿에서는 노래굿을 하고, 6채굿에서는 가진가락들을 연주한 후에 잡색들이 도둑잽이를 한다. 마지막으로 7채굿에서는 치배들이 등을 맞대고 노는 등밀이굿을 한다.

날당산은 판굿을 하고 난 다음 날 아침에 연행한다. 판굿을 마친 장소에서부터 굿이 시작된다. 그곳에 모아놓은 액과 잡귀 잡신들을 빠짐없이 쓸어 담아 가기 위해서는 직전에 농악을 연행했던 장소에서 농악을 시작해야 한다고 여겼다. 농악이 어우러지면 여러 가락을 빠짐없이 한바탕 친다. 그리고 모든 잡색들에게 얼굴에 검정 칠을 하고, 오장치를 등에 지게 하고, 도굿대도 지게 해서 웃음거리를 만든다.

진행 순서를 파악하면, 길굿을 하면서 일렬로 마을을 빠져나가서 잡귀 잡신을 몰아내는 의미로 방울진을 세 번을 싸고, 일렬로 늘어서 오채부터 순서대로 가락을 풀어서 가진 굿을 한다. 이렇게 한 후에 철룡을 향해 “가강 치배 하직 문안이요”라고 마지막 인사를 한다. 굿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올 때는 볏짚 한 단에 불을 붙여놓고 전 치배들이 그 불을 뛰어 넘어온다. 마을로 돌아올 때는 악기 소리를 내지 않고 말없이 이동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한천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 흥겨운 농악판을 크게 벌여왔다. 당산제는 일제 강점기에 중단되었지만 당산굿과 마당밟이는 지속해 왔다. 마을 공동체의 안녕을 빌고 각 가정의 복을 빌기 위해 마을신에게 농악을 연행하면서 축원을 하고 주민들이 신명을 나누며 놀았다. 농촌이 고령화되고 젊은 노동력이 도시로 유출되면서 마을에 활력이 줄고 마을 내에서 농악을 연행할 기회가 줄어들었지만 20여 년 전까지는 마을 축제로서 농악판이 성대하게 펼쳐졌다. 음력 정월에 농악을 연행하면 보름 무렵에 짧게는 1~2일에서 길게는 일주일 이상 농악을 하고 놀았다.

[현황]

1979년 전라남도 무형 문화재 제6호로 지정된 후 해마다 정기 공연을 행하고 있고, 화순군의 축제 등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10대 노승대 상쇠가 연로해지면서 11대 박춘백 상쇠가 보존회와 농악 연행을 이끌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