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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082
한자 梁會一
이칭/별칭 해심(海心),행사(杏史)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만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6년 9월 27일연표보기 - 양회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7연표보기~1908년연표보기 - 양회일 의병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08년연표보기 - 양회일 사망
출생지 양회일 출생지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오류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양회일 거주지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쌍봉 마을 지도보기
활동지 양회일 활동쥐 - 전라남도 화순군 일원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1907년(정미) 한말 의병 활동

[정의]

개항기 화순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해심(海心), 호는 행사(杏史).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양재욱(梁在郁)이다. 양회룡(梁會龍)이 동생이다.

[활동 사항]

양회일(梁會一)[1856년~1908]은 1883년(고종 20)에 쌍봉으로 이사한 후에 근 10여 년을 서울에서 보냈다. 1901년에 다시 쌍봉으로 돌아와 1904년 도적들이 횡행하자 도약장(都約長)이 되어 고을을 안정시켰다.

1905년(광무 9)에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통분하면서 고광순(高光洵), 기삼연(奇參衍), 양열묵(梁烈黙), 이백래(李白來) 등과 함께 거의하였다. 1907년 음력 1월 중순부터 능주(綾州), 화순(和順)을 중심으로 정읍(井邑), 보성(寶城), 남원(南原) 등지의 의병들을 모아 화순군 이양면 증리[당시에는 능주]에 쌍산 의소(雙山義所)를 세웠다. 총무에 양열묵(梁烈默), 참모에 임상영(林相永), 박중일(朴重一), 양수묵(梁壽默), 도통장(都統將)에 이정언(李正言), 선봉에 임창모(林昌模), 호군장(犒軍將)에 임노복(林魯福), 안찬재(安贊在), 의사에 이백래, 정세현(鄭世鉉), 임노성(林魯成) 등을 임명해 진용을 갖추었다. 이후 쌍산 의소계당산 밑의 증동과 쌍봉산에서 무기를 직접 제조하기도 했다. 또한 양회일은 가산(家産)을 내어 의병을 모아 장사(壯士) 100여 인을 훈련시켰다. 3월 9일에 기병하였는데, 이때 「서고 군중문(誓告軍中文)」을 발표하여 동지들이 합심하여 5적을 섬멸하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죽여 국가의 수치를 갚기 위해 서로 지켜야 할 바 5조를 발표하였다.

본래의 계획은 장성(長城)의 기삼연(奇參衍), 창평(昌平)의 고광순(高光洵), 능주에서는 양회일이 동시에 기의(起義)하려고 했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4월에 능주에서 먼저 봉기하게 되었다. 우선 쌍산 의소의 의병들은 4월 22일 능주의 군아(郡衙)을 공격하고, 이어 화순을 점령하였다. 관아를 비롯하여 주사청(主事廳), 우편소(郵便所), 경무서(警務署) 그리고 일본인 상가(商家) 등을 함께 공격하였으며, 양총(洋銃)과 탄약 등의 무기류는 노획하고 전주(電柱)는 파괴하고 전선(電線)을 잘라 버렸다.

이후 광주(光州)로 진격하려고 했으나 판치(板峙)[너릿재]를 넘지 못하고 화순과 동복의 경계인 도마산[도마치]에서 일본군과 격전하게 되었는데, 중과부적으로 주요 지도자 5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양회일은 광주(光州)의 감옥에서 심한 신형(訊刑)을 당하였으나 굴복하지 않았고, 이에 15년의 유배형을 받고 지도(智島)에 안치되었다. 유배된 지 6개월만인 1907년 12월 순종(純宗)의 즉위 은사(恩赦)로 풀려났다. 하지만 양회일은 다시 이백래가 주도한 호남 창의소에 가담하여 일본의 감시를 받다가 1908년 음력 5월 강진(康津)의 헌병대(憲兵隊)에 체포되었다. 이때에는 며칠간 구금되었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그 후 음력 6월에 다시 장흥(長興)의 헌병대(憲兵隊)에 체포되어 15년형을 선고 받아 장흥의 감옥에서 복역하였다. 이때 양회일은 단식투쟁을 하다가 7일만에 숨을 거두었다.

[저술 및 작품]

『행사 실기(杏史實記)』가 있다.

[묘소]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 마을에 있다. 묘비석에는 “대한 순국 의사 행사 양공지묘(大韓殉國義士杏史梁公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1977년에는 건국 포장이 추서되었다. 1946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행사 양공 회일 순의비(杏史梁公會一殉義碑)가 건립되었다. 2002년 10월에는 이양면 주민들에 의해 의병장 행사 양선생 회일 순의 기념비(義兵將杏史梁先生會一殉義紀念碑)가 세워졌다.

2006년 10월 16일에는 쌍산 의병의 최초 결의 장소가 화순군에 의해 복원되었다. 쌍산 의소는 1994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의거 100주년이 되던 2007년 8월 3일 사적 제485호로 승격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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