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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성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091
한자 曺守誠
이칭/별칭 청강(淸江),효백(孝伯)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만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70년 12월 6일연표보기 - 조수성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36연표보기~1637년연표보기 - 조수성 의병 활동
몰년 시기/일시 1644년 5월 26일연표보기 - 조수성 사망
추모 시기/일시 1804년 - 조수성 쌍충각 건립
출생지 조수성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삼천리 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병자호란 때 의병 활동

[정의]

조선 후기 병자호란 때 활약한 화순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효백(孝伯), 호는 청강(淸江). 병조 판서 조흡(曺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산 현감(尼山縣監) 조굉중(曺閎中)이고 어머니는 광산 김씨(光山金氏)로 이조 전랑(吏曹銓郞) 김약(金約)의 딸이다.

[활동 사항]

조수성(曺守誠)[1570~1644]은 1606년(선조 39)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병자호란이 발생했을 때 1636년 12월 25일 인조(仁祖)의 교유문(敎諭文)을 접하였는데, 곧바로 종질(從姪)인 진사(進士) 구봉(九峯) 조엽(曺熀)과 향유(鄕儒)인 최명해(崔鳴海)·임시태(林時泰), 유함(柳涵) 등과 더불어 창의하여 군기(軍器)를 제작하고, 군량미를 모집하였으며 격문을 사방에 돌렸다.

이후 한림 양만용(梁曼容), 옥과 현감 이흥발(李興浡) 형제, 순창 군수 최온(崔薀) 등 오현(五賢)과 더불어 여산(礪山)에서 회맹(會盟)하였는데, 이때 의병도대장(義兵都大將)으로 추대되었다. 하지만 남한산성을 향하던 중 청주(淸州)에서 적과 화의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를 해산하였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와 두문불출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는 화순군 화순읍 지곡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804년(순조 4) 쌍충각(雙忠閣)에 제향되었고 역정사(櫟亭祠)[부일사(扶日祠)]에도 배향되었다. 현재 화순읍 다지리에 있는 지곡 서원(芝谷書院)과 오현사(五賢司)에서 향사(享祀)하고 있으며 1999년 화순군 화순읍 감도리의병 도대장 청강 조수성 선생 창의비(義兵都大將 淸江 曺守誠先生 倡義碑)를 세웠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고** 본문중 역정사(櫟亭祠)라 썼지만

늑정사라 써야 옳은 표현입니다.
  • 답변
  • 디지털화순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하의 의견을 면밀히 검토해 보았습니다. 櫟翁稗說을 늑옹패설로 읽는다거나 櫟亭 권시중의 문집을 늑정일고로 읽는 등 櫟의 독음을 '늑'으로 표기한 경우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역옹패설의 경우, '늑'보다는 '낙'이 더 타당하지만 이미 '역'으로 고착화되어 있어 변경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며, 권시중의 호는 역정, 늑정을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귀하께서 늑정사가 '옳은 표현'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역정사와 늑정사 두 가지 독음을 동시에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신 것으로 보입니다. 늑정사가 옳다고 하신 근거 자료를 알려주시면 검토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소중한 의견 개진에 깊이 감사드리며, 검토를 위한 도움 부탁드립니다.
2018.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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