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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499
한자 和順鄕校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교동2길 14[교리 293]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윤희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433년연표보기 - 화순 향교 창건
훼철|철거 시기/일시 1594년연표보기 - 화순 향교 폐교
훼철 시기/일시 1597년연표보기 - 화순 향교 전소로 훼철
복교 시기/일시 1611년 - 화순 향교 대성전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647년 - 화순 향교 명륜당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723년 - 화순 향교 양사재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817년 - 화순 향교 대성전, 명륜당 중수
문화재 지정 일시 1976년 9월 30일 - 화순 향교 대성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63호로 지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2년 - 화순 향교 동재 복원
문물 지정 일시 1984년 2월 19일 - 화순 향교 만화루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60호로 지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6년 - 화순 향교 서재 복원
현 소재지 화순 향교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교동2길 14[교리 293]지도보기
성격 향교
양식 홑처마 맞배지붕
정면 칸수 5칸[대성전]
측면 칸수 3칸[대성전]
소유자 전남 향교 재단
관리자 화순 향교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교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

[위치]

화순 향교화순군청에서 서쪽으로 1㎞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외삼문 안으로 담장이 둘러쳐 있어 예전의 위용을 어느 정도는 보여주고 있으며, 화순 향교 바로 옆에 호남 유일의 항교 누각인 만화루(萬化樓)가 있어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변천]

화순 향교는 1433년(세종 15)에 공자와 선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때 누각인 만화루도 함께 세워졌다고 한다. 조선 초기의 지방 제도 개편에 따라 화순현의 연혁도 복잡하게 변천하는데, 화순과 능주, 또는 화순과 동복이 합쳐졌다가 분리되어 1418년(태종 18) 화순현이 독립하고 현감이 파견되었다. 화순현에 향교가 세워진 것은 1418년 이후로 짐작할 수 있는데, 따라서 1433년에 현재의 자리에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를 창건하였다고 보여진다.

임진왜란으로 인해화순현이 독립된 현으로 운영되기에는 힘들다고 하여 1594년(선조 27)에 능성현과 합쳐졌다. 1현 1교에 따라 향교도 하나만 존재할 수 있어 화순 향교의 위판은 땅에 묻고 향교는 폐교되었다. 그 후 건물만 있던 화순 향교는 그마저도 정유재란으로 모두 불타버리고 말았다.

화순현능성현에서 분리되어 다시 독립현이 된 것은 1611년(광해군 3)이다. 그리고 당시 현감인 이인부(李仁傅)가 주선하여 화순 향교도 다시 건립되었다. 그러나 이때는 재정이 부족하여 동무, 서무 없이 대성전만 겨우 다시 세운 정도였다고 한다. 그 뒤 1647년(인조 25) 현감 홍명하(洪命夏)가 대대적으로 중수하였다. 그런데 이때도 대성전과 명륜당만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1684년과 1687년에 교생들로부터 받은 원납을 비용으로 보태어 대성전을 보수하고 단청을 하였으며, 1817년에는 대대적인 보수를 하였다고 하지만 대성전과 명륜당만 해당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중수되었고, 1982년에 동재가 복원되었으며, 1986년에 서재가 복원되었다. 그리고 1998년에는 담장을 설치하고 전사청을 신축하였다. 이로 미루어 임진왜란 이후 화순 향교는 물력 부족으로 대성전과 명륜당만 유지되어 오다가 1980년대 이후에야 향교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게 되었다고 하겠다. 현존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을 비롯하여 명륜당, 동재(東齋), 서재(西齋), 전사청(典祀廳), 만화루(萬化樓) 등이 있다.

한편 화순에 양사재가 창건된 것은 1723년(경종 3)이다. 당시 현감의 주선으로 향교 서쪽에 양사재를 건립하고 전답을 마련하여 양반 자제들을 대상으로 교육 활동을 전개하였다. 1822년에 양사재를 중수하기도 하였는데, 언제인지 모르게 양사재는 없어지고 관련 기록만 남아 있는 실정이다.

[형태]

향교 밖은 홍살문이 설치되어 있고, 하마비가 있어 예전의 모습을 재현하는 듯하다. 담장으로 둘러쳐 있는 계단을 올라서면 대문에 ‘화순 향교’ 현판이 걸려 있고, 안으로 들어서면 왼편에 만화루가 있다. 만화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1층과 2층 모두 사방이 창호나 벽체 없이 개방되어 있다. 만화루는 유생들이 여름에 공부하는 장소로 활용되었고, 향시장(鄕試場)으로도 쓰인 호남 유일의 향교 누각이다.

만화루 안쪽 담장 아래에는 화순 향교를 중건하는데 공이 많은 현감 홍명하를 기리는 거사단(去思壇)이 꾸며져 있다. 원래는 향교 남쪽에 기천영당을 지어 기렸는데 대원군서원 철폐로 없어졌다가, 그 뒤 단이 만들어져 몇 차례 옮겼다 1999년에 이곳에 단을 쌓았다.

앞의 계단 위로 외삼문이 있고 ‘고경문(高景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안쪽 왼편으로 명륜당, 좌우로 동재와 서재가 마주보고 세워져 있다. 명륜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집이다. 양 측면에 외쪽지붕을 설치하여 1칸씩 이어 달았다. 동재인 돈인재와 서재인 숭의재는 모두 퇴를 둔 정면 4칸의 맞배집이다. 툇마루를 설치하고 양 측면으로 벽장을 설치하였다.

화순 향교는 전면에 명륜당을, 후면에 대성전을 둔 ‘전학 후묘’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명륜당 앞의 계단 위로 내삼문이 있고, 내삼문 안에 대성전이 있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풍판을 단 맞배집으로 막돌로 쌓은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현황]

화순 향교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고 있다. 대성전은 1976년 9월 30일에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63호로 지정되었고, 만화루는 1984년 2월 19일에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60호로 지정되었다.

화순 향교에는 다른 향교와 비교하여 매우 많은 전적과 고문서가 보관되어 있다. 향교 관련 자료로는 1817년 향교를 중수할 때 간여한 교임들과 유림의 명단을 담은 『수보유사안(修補有司案)』, 인적 구성을 엿볼 수 있는 『집사안』·『원납안』·『보직안』, 그리고 향교 재정을 보여주는 『향교 전답 양안』 2책[1744, 1799], 『노비안』[1819] 1책, 운영 현황을 보여 주는 『향교 도총 등록』[1807, 1838] 2책, 『제기제복서책병록』[신축년, 1601?], 『성묘수개소재력지수책』[1866] 1책 등은 다른 향교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자료들이다. 그 밖에 『향교죽전완문(鄕校竹田完文)』, 『교촌견역완문』 2책, 『상교기지수세절목(庠校基址收稅節目)』 등 벌목류 5건 등은 조선 후기 향교의 경제 현황을 알려주는 자료일 뿐만 아니라 향토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아울러 양사재 자료도 많은데, 『양사재 유안』[1735, 1822] 2책, 『양사재규』[1723]도 귀중한 자료이다. 그 밖에 화순의 향약·계 자료인 『향중약문』, 『향약좌목』, 『명륜계안』과 화순 향교를 중수하는데 노력한 현감 홍명하를 위하여 세운 기천영당(沂川影堂)의 의궤도 있다.

현판은 향교 앞 만화루에 걸려 있는데, 「교궁신수기」[1914]와 「성묘중수기」[1918]는 향교의 변천을 알려주는 기문이다. 화순 향교의 대문 안쪽 옆에 10여 개의 비석들을 옮겨와 세웠는데, 화순 현감들의 숭유중도비(崇儒重道碑) 7개와 근래 들어 세운 공적비이다.

[의의와 평가]

화순 향교의 건립과 중수, 중건 등을 통해 조선 시대 향교와 관아의 협조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향교에 보관되어 있는 각종 자료와 고문서 등은 향교의 운영, 배정, 향촌 사회에서의 위상을 헤아려 보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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