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30003 |
---|---|
한자 | 林慶業秋蓮刀 |
이칭/별칭 | 임경업 환도,임경업 호신도 |
분야 | 문화유산/유형 유산,정치·경제·사회/과학기술 |
유형 | 유물/유물(일반),인물/문무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충열1길 6[단월동 385-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제광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9년 4월 10일 - 임경업 추련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00호 지정 |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임경업 추련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장처 |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 충청북도 충주시 충열1길 6[단월동 385-1] |
원소재지 |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 충청북도 충주시 충열1길 6[단월동 385-1] |
성격 | 무기 |
재질 | 철|청동|나무 |
크기(높이,길이,너비) | 101.4㎝[전체 길이]|6㎝[폭]|86.7㎝[칼날 길이] |
소유자 | 충주시 |
관리자 | 충주시 |
문화재 지정번호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에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임경업이 사용했던 칼.
[개설]
임경업(林慶業)[1594~1646]은 조선 인조(仁祖) 때의 명장으로 이괄(李适)의 난에 공을 세우고, 병자호란 때 중국 명나라와 합세하여 청나라를 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김자점(金自點)의 모함으로 죽었다. 임경업 추련도는 도검의 이력과 형태, 도신에 새겨진 명문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4월 10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0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전체 길이는 101.4㎝, 폭 6㎝, 칼날 길이 86.7㎝로서 칼날은 철, 손잡이와 칼집은 나무로 만들었다. 황동으로 장식하였고, 칼코등이는 철판 방자 위에 주석·납으로 합금하여 도금하였다. 칼날의 형태, 칼집 고정 방식, 패용 장식 등 전형적인 조선 시대 환도의 형태를 띠고 있다. 보관함은 후대에 제작한 것이다. 임경업 추련도 칼날의 양면에는 칠언 절구 한시(漢詩) 28자가 새겨져 있고, 일부 판독되지 않는 명문(林物合有時□□)이 있다.
시호시래부재래(時乎時來否在來)[시절이여! 한 번 왔다 가면 다시 오지 않나니]
일생일사도재연(一生一死都在筵)[한 번 태어나고 죽는 것은 모두 여기에 있도다.]
평생장부보국심(平生丈夫報國心)[대장부의 한평생은 나라 위한 마음뿐이고]
삼척추련마십년(三尺秋蓮磨十年)[삼척의 추련도를 십 년토록 갈고 갈았다.]
[특징]
임경업 추련도는 임경업이 평상시 호신용으로 애용한 보검으로 알려져 있는데 관련 문헌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또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에는 임경업 추련도와 함께 실제 전투용으로 사용하던 용천검(龍川劍)이 있었다고 하나 일제 강점기에 분실되었다고 한다.
추련도라는 이름은 검에 새겨진 시구에서 따온 것으로 ‘추련(秋蓮)’, 곧 가을 연꽃은 다른 연꽃이 피지 않을 때 의연하게 핀 꽃, 즉 지조가 있는 대장부를 상징한다고 한다. 따라서 임경업 추련도는 대장부로서 불의를 용납지 않는 성품을 키우면서 절제와 충(忠)을 닦기 위해 사용된 칼이라 할 수 있다. 『임충민공 실기(林忠愍公實記)』[1890]에 ‘삼척용천만권서 황천생아의하여 산동재상산서장 피장부혜아장부(三尺龍泉萬卷書皇天生我意何如山東宰相山西將彼丈夫兮我丈夫)’라는 검명(劍銘)이 기록되어 있는데, 임경업 추련도의 명문 내용과 내용면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의의와 평가]
임경업 추련도는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에 전해 오는 환도로서, 임경업 장군의 대장부로서의 기개를 느낄 수 있는 명문과 조선 후기 환도의 형태를 알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