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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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甘道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감도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환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화순군 서면 감도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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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32년 - 전라남도 화순군 서면 감도리에서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면 감도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63년 1월 1일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면 감도리에서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감도리로 개편 |
전 구간 | 감도리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감도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4.0㎢ |
가구수 | 116가구 |
인구[남,여] | 261명[남자 135명, 여자 126명]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감도리는 화순읍의 남쪽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화순군 동면, 서쪽으로는 화순군 능주면, 남쪽으로는 화순군 한천면, 북쪽으로는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내평리와 접하고 있다. 감도리는 하망굴·도방동·백련동 등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명칭 유래]
감도리는 감한리(甘閑里)[하망굴]의 감(甘)자와 도방동(道方洞)[도방굴]의 도(道)자를 각각 취한 것이다. 마을 불당골에 감한사라는 절이 있어 감한리 마을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감한리라는 지명 대신 화발봉 아래에 있다 하여 하망굴이라 부른다.
도방동 마을은 두루뭉술한 돔뱅이산[돈산] 아래에 위치하여 산 이름을 취하여 돔뱅이굴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점차 돔뱅이굴-돈방이굴-도방굴으로 와전되어 오늘날의 명칭이 되었다고 전한다.
백련동 마을의 원래 이름은 솔개촌인데, 이는 새로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의미의 새터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백련동’의 뜻은 두 가지로, 첫째는 마을 앞에 연못이 있어 백련동이라 했다는 설, 둘째는 마을 남쪽에 연화봉[도리봉]이 있고 그 기슭에 백련사로 추측되는 사찰터가 있는데 사찰 이름을 취하여 백련동으로 하였다는 설이다.
[형성 및 변천]
1705년 조하정(曺夏禎)[1675~1715]의 고지도에 화순현(和順縣) 감한리·도방동이라 기록되어 있고, 1789년 『호구 총수』에는 화순현 서면 감한리·도방리로 기록되어 있으며, 1867년 『대동지지』에는 화순현 서면, 1895년에는 나주부 화순군 남면, 1896년에는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1908년에는 능주군(綾州郡) 원화순방 서면, 1912년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는 능주군 서면 감한리·도방동이라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화순군 서면 감도리[감한리·도방동 일부]로 개편되었다. 1932년 서면이 화순면에 편입되어 화순면(和順面) 감도리가 되었고, 1963년 1월 1일 화순읍의 승격으로 화순읍 감도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감도리의 남쪽에 배후 산지인 덕음산[410m]이 위치하여 북쪽으로 완만해지는 구릉 지역으로 서쪽에는 감도제가 있다. 도방동 마을의 동쪽으로는 진등재, 서쪽으로는 붉은대기, 남쪽으로는 안산과 보랑천, 북쪽으로는 태평골재·백골전들·잔바대들·태평골이 있다. 백련동 마을은 동쪽으로는 소개재[혹은 솔개재]·동식이, 서쪽으로는 장골등·고사리 고개, 남쪽으로는 뒷굴·들독거리, 북쪽으로는 성적굴·뒷메가 있다. 하망굴 마을의 동쪽으로는 덕음산·불당골, 서쪽으로는 법석골·도방굴, 남쪽으로는 솔개재, 북쪽으로는 한식굴재가 있다.
[현황]
감도리는 2011년 12월 기준으로 면적은 4.0㎢, 116가구에 남자 135명, 여자 126명으로 총 261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주요 산업은 벼농사·축산업·고추·도라지·옥수수 재배이며, 주산물로는 쌀과 도라지, 특산물로는 토마토·도라지·옥수수가 있다.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에서 화순군 능주면을 잇는 지방도 822호선와 화순군 한천면에서 만나는 군도 11호선이 마을을 남북으로 지난다.
유물 및 유적으로는 감한사지(甘閑寺址)[불당골], 『오현 문집』[조장현 소장 문서], 선돌 2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