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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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신성리 출신의 국악인. 공기남(孔基南)[1917~1971]은 선천적인 음성과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특유의 소질을 가지고 동편과 서편 소리를 두루 섭렵하였다. 16세 때 아버지 공창식(孔昌植)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웠다. 19세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판소리 명창 박동실(朴東實)에게 판소리를 배운 후 5마당 소리를 두루 잘했으며,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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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출신의 판소리 명창. 「춘향가」가 장기인 판소리 명창이다. 공대일(孔大一)[1910~1989]은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자포실에서 태어났다. 14살에 판소리에 뜻을 두어 능주에 사는 공창식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공창식과 공대일은 삼촌과 조카 사이이다. 공대일은 공창식에게 「춘향가」를 배웠고, 이후 장판개와 임방울에게서도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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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출신의 판소리 명창. 공창식(孔昌植)[1887~1936]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범우골에서 태어났다. 16세에 김채만의 문하에 들어가 소리 공부를 시작했는데 타고난 재질과 성음으로 그의 소리는 일취월장했다. 10여 명의 문도 중에서 가장 늦게 공부를 시작했으나, 해가 감에 따라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게 되었다. 김채만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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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구대진(具大振)[?~?]은 능성 구씨의 후예로서 단가·잡가·한시·시조·산무 등에 능하여 능주와 나주의 풍류계에서 명망이 높았다. 특히 명기·명창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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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김규열(金圭烈)[1910~?]은 일찍이 국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했으며 시조를 전공했다. 전국 시조 명창 대회 심사 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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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대금 명인. 김동표(金東表)[1941~ ]는 셋째 형인 김동진의 영향으로 17살에 대금을 시작하였다. 1959년에는 고창의 대금 명인이었던 편재준에게 대금 산조와 풍류를 사사했다. 우리 국악단과 임춘앵 여성 국극단 등의 단체 활동을 하면서 한주환과 김동진에게 대금 반주법을 익혔다. 우리 국악단에서는 조한중에게도 대금 반주법을 배웠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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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출신의 판소리 명창. 김준섭(金俊燮)[1913~1968]은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출신으로 처음에는 공창식에게 소리를 배우면서 「심청가」 한 마당을 전공으로 수련했다. 그 후 김정문에게 「흥보가」, 「춘향가」, 「수궁가」, 「적벽가」를 차례로 배우고 난 뒤, 독학으로 계속 소리를 연마했다. 김준섭은 재주가 남달리 뛰어난데다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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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출신의 판소리 명창. 김채만(金采萬)[1865~1911]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서 태어나, 후에 현재 광주광역시 서구 효덕동 구암촌인 광주의 속골로 이사했다. 김채만은 이날치의 문하에서 판소리를 배웠는데, 본래 성음이 탁하고 평범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으나 각고의 노력으로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김채만이 성공하기까지 많은 일화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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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김학섭(金鶴燮)[?~?]의 호는 여송(與松)으로 박식한 선비로 존경받았다. 일본 유학시절에는 항일운동을 한 애국 지사이기도 한 김학섭은 고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판소리에 조예가 깊었다. 「춘향가」 중 범피중류가 특징이었다고 한다. 가곡과 가사에도 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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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군의 한천 농악을 이끌던 국악인. 노판순(盧判順)[1919~1992]은 한천 농악[전라남도 지정 무형 문화재 제6호]의 전성기를 이끌던 상쇠다. 1950년대에 마을의 청년들이 농악계를 결성해서 농악 전수를 할 때 중심 역할을 담당하였다. 인근 독상리에 살던 이선일 상쇠를 마을로 초빙해서 생계를 보조해주고 거주하도록 주선했으며, 이선일 상쇠를 통해 짜임새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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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가야금의 명인. 박경식(朴京植)[?~?]은 박경석(朴景錫)으로도 알려졌다. 가야금 산조 및 풍류의 명인인 한수동(韓壽童)에게 가야금을 사사했다. 1930년대 화순의 토반(土班)으로 거부였던 오판기(吳判基)가 집안에 풍류방을 꾸며놓고 많은 악사를 불러들여 즐겼는데, 이를 오판기 풍류방이라 한다. 이방의 풍류객으로 박경식(朴京植), 정남옥(鄭南玉), 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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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출신의 판소리 명창. 박기채(朴基彩)[1911~?]는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에서 태어났다. 보성 소리의 대부인 정응민의 수제자로 정응민의 문하생 가운데 박춘성과 함께 가장 먼저 소리를 배웠다고 전해진다. 박기채는 판소리 5바탕을 두루 잘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심청가」와 방아소리가 장기였다. 박기채의 애절한 계면조의 성음은 많은 청중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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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장동리 출신의 국악인 박농월(朴弄月)[1922~?]은 화순군 동면 장동리에서 태어나 광주광역시 남도 권번에서 기예를 닦았으며, 면모가 아름답고 품행이 방정하였다. 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인 박기홍 문하에서 15세인 박송희와 함께 단가 「뒷동산」, 「인호상이」, 「만고강산」 그리고 「흥보가」 중 ‘흥보 쫓겨나는데’, ‘흥보 집터 잡는데’,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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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마산리 출신의 국악인 박농주(朴弄珠)[1925~?]는 품행이 단정하고 예의가 바르다고 하여 주위의 존경을 받았다. 목포 권번에서 승무와 고법을 가르치던 명무이자 명고수인 이대조에게 소리를 배웠으며, 판소리 다섯마당 가운데 「심청가」와 「춘향가」를 잘했다. 1953년 박농주는 국악인 조정애에게 박정자를 소개받아서 「유관순전」을 가르쳤다.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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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교리 출신의 국악인. 박봉선(朴鳳仙)[1917~?]은 화순군 화순읍 교리에서 태어났다. 명창 박초선과 사촌간이며 강남중과 살았다 한다. 박동실에게 판소리를, 김종기에게 가야금을 배웠다 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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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이자 무용인. 박영구(朴永求)[?~?]는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훈리 출신이다. 남도 검무의 일인자로 알려졌으며 호남 국악계의 대표적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검무 이외에도 승무 등 무용에 능했으며 대금·양금·가야금 등의 악기에도 조예가 깊었다. 광주 남정 권번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는데 예절 교육과 철저한 법도를 세워 큰스승으로 존경받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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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의 한천 농악을 이끌던 국악인. 박천한(朴天漢)[1915~1984]은 전임 상쇠인 이선일의 예능을 물려받아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하면서 한천 농악[전라남도 지정 무형 문화재 제6호]을 널리 알렸다. 가락이 항상 신명이 넘치고 쇠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 너름새가 좋고 쇠를 멋있게 잘 치던 상쇠라고 전한다. 가락이 좋고 보풀이 짓을 잘 했으며 판을 이끄는 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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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가야금 산조 명인. 박춘섭(朴春燮)[1922~1955]은 화순군 화순읍 만연리에서 태어났다. 1934년 13세 때 안기옥(安基玉)에게 가야금 산조를 3년 동안 사사하였다. 16세 때부터 놀음청에 드나들며 명인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정기석에게서 한숙구제 산조를 2년간 학습한 뒤 20세 때부터 순천 권번의 가야금 선생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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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출신의 판소리 명창. 성원목(成元睦)[1912~1969]은 고수로서의 명성이 높은 판소리 명창이다. 명창 성창순의 아버지이며, 아쟁 산조의 명인인 한일섭의 매부로 이들에게 판소리를 가르쳤다. 성원목은 전라남도 화순군 사평면 출신으로 김채만에게 판소리를 배워 지방에서 크게 활동한 명창이라고 전해진다. 박유전-이날치-김채만-성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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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출신의 국악인 신평일(申平日)[1921~?]은 화순군 도곡면에서 태어났다. 명창 임방울의 부인인 신금월의 오빠이다. 정철호, 임준옥, 장월중선과 함께 임방울에게 소리를 배웠다. 신평일은 지방 소리꾼으로 활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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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국악인 가야금 산조 명인 안기옥의 동생이며 서편제 판소리의 맥을 잇는 여류 명창인 안채봉의 사촌 오빠이고, 딸은 창극인 안행련이다. 안기선(安基善)[1904~?]은 판소리 다섯 마당을 두루 잘했다. 지방에서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였고, 성우향, 박초선, 신영희, 박송희에게 소리를 가르쳤다. 부인과 딸들은 안향련을 제외하고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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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양농주(梁弄珠)[1875~?]는 말과 행동이 무거웠고 맵시가 뛰어나 재색을 겸비한 명기로 이름을 날렸다. 가무에 능했으며 가곡과 가사에 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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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기녀. 양학(梁鶴)[1875~?]은 제주 양씨로서 인품이 단아하고 학문 또한 깊었다고 한다. 시조·가곡·가사에 능통했으며 한시와 사군자에도 능하여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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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활동한 국악인 염금달(廉今達)[1920~1950]은 1920년 화순군 이서면 안심리에서 태어나 어릴 적에 화순읍 유천리로 이거하였다 천부적인 성대와 뛰어난 맵시를 지닌 소리꾼으로 예인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누렸다. 조선 후기에 더늠 소리를 넣어 득음하였던 창자들을 8명창으로 구분하였는데, 그 당시 8명창의 뒤를 이을 뛰어난 소리꾼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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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활동한 거문고 명인. 오똘남(吳突男)[1920~1950]은 거문고 명인이다. 오진석의 조카이며 양자이고, 명창 조몽실의 조카이다. 거문고로 새소리 등 모든 소리를 만들어낼 정도의 명인으로 백결 선생의 후신이라고 일컬어졌다. 6·25 전쟁 당시 공비들이 그를 사살하려 하자 마을 사람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표창을 받은 거문고의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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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국악인. 오재민(吳在珉)[1918~?]은 명문 가문인 동복 오씨 후예로 박학다식하며 전통 예술에 남다른 관심과 조예가 깊었다. 일찍이 전국 궁도 대회에서 개인 부분 장원을 차지할 정도로 궁도도 잘하였다. 사실 여부는 확인하기 어려우나 전주 대사습 고수 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했다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전해질 정도로 명고수이다. 판소리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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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대금 명인. 오진석(吳鎭錫)[?~?]은 재인 집안 출신으로 거문고 명인인 오똘남의 양아버지이며 대금 명인 한주환의 이모부이기도 하다. 항상 묵묵히 말이 없으며 품행이 방정해서 많은 한량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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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풍류객. 본관은 평택(平澤). 호는 호석(湖石). 임석윤(林錫潤)[1907~1976]은 명망이 있는 가문인 평택 임씨 가문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풍류를 즐긴 풍류객이다. 거문고와 가곡·가사를 전공하여 거문고 명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김용남과 김연수에게 거문고 풍류와 가곡을 배웠으며, 말년에는 서울에 살면서 가곡의 명인 이주환(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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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가야금 산조 명인. 정남옥(鄭南玉)[1902~?]은 가야금 산조의 명인인 한숙구(韓淑求)[1865~?]로부터 가야금 산조를 전수받아 명인이 되었다. 1930년대 화순의 토반(土班)으로 거부였던 오판기(吳判基)가 풍류를 즐기어 집안에 풍류방을 꾸며 놓고 많은 악사를 불러들여 풍류를 즐겼는데, 이를 오판기 풍류방이라 한다. 정남옥은 가야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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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가야금 명인. 정백옥(鄭白玉)[?~?]은 피리와 가야금에 능했으며 가야금을 직접 제작하여 썼다. 중요 무형 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의 예능 보유자인 정달영이 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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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운농리 출신의 국악인 정옥진(鄭玉珍)[1925~?]은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운농리에서 태어났다. 정옥진은 침착한 성격을 지녔으며 나직한 목소리로써 저음 사용에 뛰어난 여성 소리꾼이었다. 판소리 다섯마당에서 「춘향가」를 잘 하였고, 주로 광주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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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 출신의 국악인 조경환(曺京煥)[1885~?]은 화순군 춘양면 우봉리에서 태어났다. 풍채가 두목지를 연상케 하는 선풍도골(仙風道骨)의 풍모를 지녀서 조백(曺伯)이라고도 불렀다. 판소리 다섯 마당을 고루 잘해서 국창으로 예우를 받았다. 국창 송만갑이 조경환을 찾아와 그의 소리를 들은 후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는 일화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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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잠정리 출신의 국악인. 조계남(曺桂南)[1916~1987]은 당대 최고의 고수였던 조종엽의 아들로 능주 신청(神廳)이 없어진 이후 능주 지역을 중심으로 사라져 가는 전통 국악을 마지막까지 놓지 않고 전승하려 하였다. 다재 다능한 조계남은 능주 삼현육각의 전통 음악을 피리 시나위 가락으로 맥을 이어 왔으며, 능주 씻김굿의 음악에 접목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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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세습 무계 출신 국악인. 본관은 창녕(昌寧), 본명은 조동운(曺東雲), 별명은 조박(曺博), 조두(曺頭)이다. 아버지는 조정남이고 어머니는 오자근이다. 능주 조씨가는 전라도의 대표적인 무계 집안으로 꼽힌다. 대대로 무업을 이어왔던 가계이며, 더불어 기악과 판소리, 줄타기 분야의 명인·명창들을 배출했던 집안이었다. 조도화의 외가 역시 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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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출신의 가야금 명인. 조명수(曺明洙)[1907~1937]는 태도가 곱고, 얼굴이 맑아 달덩이처럼 예쁘다고 하여 ‘조떵어리’ 또는 ‘조떵구’라는 애칭을 지니기도 했다. 슬하에 조순애가 있다. 조명수(曺明洙)는 가야금 산조와 풍류의 거장으로 다양한 국악기를 섭렵하였다. 조선 성악 연구회 외교 이사를 맡아보며 1936년 2월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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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출신의 판소리 명창. 국극 협단에 참여하였고, 「심청가」가 장기인 판소리 명창이다. 조몽실(曹夢實)[1900~1949]은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같은 마을에 살았던 공창식에게 판소리를 배웠는데 특히 「심청가」를 전수받았다. 그 후 국창 김창환의 문하에서 「춘향가」와 「흥보가」를 배우고 고향으로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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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대금 및 피리의 명인. 조병문(曺秉文)[1880~?]은 일제 강점기 초기까지 지속되었던 능주 신청(神廳)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대금과 피리에 능해서 남도 각처 풍류방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 대금은 당대의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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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국악인이자 무용인. 조병현(曺炳鉉)[1885~?]은 시조·가곡·가사에 능한 국악인이었다. 또한 덧배기춤으로 호남의 명무(名舞)로 알려졌다. 명고수로도 유명해서 명창 임방울을 비롯한 여러 남도 소리꾼들이 찾아와 소리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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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출신의 국악인. 조상선(曺相善)[1903~?]은 당대 국창 정정렬에게 판소리를 사사하여 그의 수제자로 불렸고, 창극 작곡과 연출의 천재로 알려졌다. 1933년 전통 음악의 공연과 전수를 목적으로 창립된 조선 성악 연구회에서 연주자로 크게 활약하였고, 후진 양성에도 힘을 기울여 박초선에게 시조를 가르쳤다. 그는 월북하여서 생사를 파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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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조상엽(曺相燁)[?~?]은 능주 신청(神廳)의 우두머리인 대방(大房)을 역임했다. 당대 최고의 고수였으며 승무로도 명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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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 잠정리 출신의 국악인. 조송문(曺松文)은 세피리에 능해서 많은 선비와 한량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가곡, 가시, 시조의 전주(前奏)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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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군 출신의 예인. 조종률(曺鍾律)[1846~?]은 예인(藝人) 집안에서 태어났다. 능주 일대에서 유명하였으며 동생 조종엽(曺鍾葉)과 함께 활동을 하였다. 한말 고종 황제 앞에서 한강 변에 줄을 메고 그 위에서 승무를 추었더니 고종이 감탄하여 정구품(正九品)인 의관(議官)벼슬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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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국악인. 조종엽(曺鍾燁)[1876~1942]은 일명 ‘조상엽’, ‘조상언’이라고도 불렸다. 형 조종률과 함께 고종(高宗) 황제 앞에서 줄을 타 의관이란 벼슬을 하사받은 줄타기의 명수였다. 능주 신청(神廳)의 우두머리인 대방(大房)을 지냈는데, 당대 최고의 고수였으며 승무로도 명성이 높았다. 주로 한양을 무대로 줄을 탔던 조종엽은 임금으로부터 하사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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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풍류객. 주기준(朱基俊)[1904~?]은 신안 주씨로 명문가 출신의 문사이다. 일찍부터 풍류를 즐겨 시조와 한시에 능해 선망을 받았다. 이외에도 북과 산무(散舞)에 능했으며 사군자와 궁도에도 비범한 솜씨를 보였다. 면장을 역임하면서 덕망이 높아 공적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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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군 출신의 국악인. 주봉현(朱鳳鉉)[1875~?]은 성품이 강직하고 기골이 장대하여 위엄이 관운장을 연상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외모와는 달리 판소리에 대단한 예술적 안목이 있어 소리꾼들은 그의 예리한 지적과 추상같은 질정에 모두 넋을 잃었다고 한다. 호남 최고의 명고수로 이름이 높았으며 소리꾼들 사이에서 “능주 주봉현 선생 북에 때를 벗겨야 올바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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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국악인. 주응조(朱應祚)[1875~?]는 화순군 능주 출신의 국악인이다. 인품이 준수했고 당대의 명고수로 이름을 날렸다. 화순의 명고수인 주봉현과 사촌간이다. 산무(散舞)에 능한 무용인이기도 했다. 시조, 가곡, 가사에 능해 한량들 세계에서 선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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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에서 활동한 가야금 산조 및 풍류의 명인. 한수동(韓壽童)[1895~1940]은 전라남도 해남군 출신으로 화순군 동복에 살면서 활동한 가야금 산조 및 풍류의 명인이다. 아버지는 대금·시나위·가야금의 명인이던 한숙구(韓淑求)[1849~1934)이다. 아버지에게 가야금·풍류 및 산조와 대금을 배워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이 났고 역대 가야금 산조 명인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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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화순 출신의 가야금 명인. 한숙구(韓叔求)[1865~?]는 가야금의 명인이었던 한수동(韓壽同)[1895~1940)의 아버지로, 한선달(韓先達)이라고도 불렸다. 전라남도 해남 출신으로, 신방초(申芳草), 이장선(李壯善) 등에게 해남 등지에서 풍류를 사사하여 일가를 이루었으며, 대금과 피리도 잘하였다. 지금의 화순군 남면에서 주로 활동을 했고 제자를 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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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강성리 출신의 국악인. 한일섭(韓一燮)[1929~1973]은 「아쟁 산조」와 「호적 산조」를 발표함으로 민속악 연주곡을 넓히는데 공헌한 명고수이다. 할아버지는 대금과 가야금의 명인 한덕만이고, 아버지는 한경태이며, 작은 아버지는 판소리 명창 한성태이다. 사촌 형제는 창극배우 한갑순, 중요 무형 문화재 제16호 거문고 산조 예능 보유자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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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화순 출신의 대금 산조 명인. 한주환(韓周煥)[1904~1966]은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한천리 출신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소리와 태평소·장구 등을 배웠다. 이어서 가야금 산조 및 풍류의 명인인 한수동(韓壽同)에게 풍류 음악을 배웠으며, 단소 산조 및 풍류의 명인 전용선(全用先)에게서는 대금으로 삼현(三絃)을 배웠다. 30대 후반에 광주에서 대금 산조...
화가·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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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미술가. 강용운(姜龍雲)[1921~2006]은 서울 중동 중학교를 거쳐 1941년 일본 동경 제국 미술 학교 서양화과에 입학 하여 가와구찌 기가이[川口軌外] 교수에게서 추상 미술을 공부하였다. 이 무렵이 강용운의 작품 세계에서 방향 결정의 전기가 되었던 시기였다. 이 후 일본에서 1년 선배인 이중섭과 교류하였으며 재학시절에 제8회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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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서화가. 구철우(具哲祐)[1904~1989]는 화순군 한천면 정리 501에서 부농의 외아들로 태어나 1924년 서울 배재 학당을 거쳐 중동 학교 3학년을 다니던 중 고향으로 돌아와서 1928년에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으로 이거하였다. 평소 따르고 섬겼던 의재 허백련의 문하에 들어가 1938년에 연진회 회원으로 참여했다. 그 후 19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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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화가이자 공예가. 손동(孫棟)[1924~1991]은 광주 서석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가와바다 미술 학교[川端畵學校]에서 미술 수업을 받고 귀국해 광주 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43년과 1944년 선전[조선 미술 전람회]에 입상하여 실력을 인정받고 1947년 광주 숭일 중학교와 광양 중학교, 순천 사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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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에서 활동한 서화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안여(顔汝), 호는 사호(沙湖). 만년에는 노호(老湖)라 하기도 하였으며 동복(同福)에 은거하여 살았다. 호남 지방에서 일생동안 서화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소치 허련의 화풍에 영향을 받아 산수화와 묵죽도, 매화도 등 많은 작품을 남긴 예술가이다. 송수면(宋修勉)[1847~1916]은 화순군 남면 사평리에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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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화순 출신의 서화가.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평숙(平叔), 호는 염재(念齋)·염재거사(念齋居士), 또는 염재옹(念翁)으로도 불렸다. 아버지는 송긍면(宋兢勉)이다. 일제 강점기에 민족 교육에 헌신한 서화가로 근대 호남 화단의 마지막 시(詩)·서(書)·화(畵)의 삼절(三絶)로 일컬어지고 있다. 송태회(宋泰會)[1872~1941]는 어려서부터 타고난 천재성을 발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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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서양화가. 오승윤(吳承潤)[1940~2006]은 오지호 화백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조선 대학교 부속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왔으며 홍익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의 아카데미 드 라그랑드 쇼미에르 등에서 공부했다. 특히 한국의 자연과 전통 문화 등을 표현한 구상 미술에 몰두했다. 1982년 전남 대학교 예술 대학을 창설하여 후학 양성에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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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 출신의 서양화가. 본명은 점수(占壽), 호는 모후산인(母后山人). 아버지는 한말 보성 군수를 지낸 오재영(吳在永)이고 어머니는 김선군(金宣君)이다. 서구의 인상주의 회화 양식을 추구하며 빛과 색이 이루어내는 자연을 맑고 밝은 색채로 그려냈다. 오지호는 서구의 인상주의를 한국적 풍광과 정감으로 토착화시킨 화순 출신의 대표적인 서양화가이다. 오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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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항일 혁명 음악가. 본관은 하동(河東). 초명 부은(富恩). 아버지는 정해업(鄭海業)이고 어머니는 최영온(崔英溫)이며 부인은 딩쉐송[丁雪松], 외동딸은 정샤오티[鄭小提]이다. 정율성(鄭律成)[1914~1976]은 부친을 따라 1917년 광주에서 화순으로 이주하였고, 1922년 능주 공립 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1924년 다시 광주로 이주...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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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출신의 석공예 장인. 김성용(金成龍)[1900~?]은 일찍 석공으로 입문하여 석질과 조형미의 안목이 밝아 명인들의 신도비, 정려문 등을 제작하여 높이 평가 받았다. 특히 운룡 롱주(雲龍弄珠)의 조각은 절묘하여 양각의 비천상은 많은 사람들을 감탄케 했다. 타 지방을 주유하면서 작품을 남겼으나 화순에는 이름만 전할 뿐 작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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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조화장으로 활동한 장인. 김행년(金行撚)[?~?]은 화순군에서 활동하였으며, 애·경사 즉 혼인·초상에 쓰이는 꽃과 절에서 불사에 쓰였던 연등에서부터 모든 꽃들을 만들었다. 국화·모란·장미·매화 등 모든 꽃이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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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예치 출신으로 석각에 능한 석공.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노칠암(盧七岩)[1912~?]은 평생 동안 석각에만 종사하였고, 주로 음각을 전공하였는데 조각의 솜씨가 뛰어나 육필보다 각서가 뛰어나게 좋아서 많은 문사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석공들과의 협업을 주로 하는 석각 장인으로서 대표하는 작품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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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출신의 문 장식을 전문으로 하는 장식장(裝飾匠). 박삼칠(朴三七)[1880~?]은 1880년 화순군 백아면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철 장식을 시작하였고, 문 장식 스승을 만나 기술을 터득하였다. 문에 하는 장식은 다양하여 수복 문양, 사군자 문양 등 갖가지 정교한 문양은 보는 사람들로 감탄하게 하였다. 전(殿)·각(閣)·사우(祠宇)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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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윤씨 가문으로 출가해 온 자수장(刺繡匠). 영산 신씨 부인(靈山 辛氏 夫人)[?~?]은 윤씨 가문에 출가하여 일찍 상배하고 홀로 살면서 바느질과 자수를 전공하게 되었는데 솜씨가 비범하여 화초봉접(花草蜂蝶)·매란국죽(梅蘭菊竹)·십장생도(十長生圖) 등을 능달한 솜씨로써 표현하여 세상 사람들을 감탄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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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 살았던 각포에 능한 사람. 윤달노(尹達老)[?~?]는 마른 문어를 조각하여 제상 및 경축 연회상에 놓았다. 봉황이나 용 또는 매화, 국화, 화초봉접을 조각하여 진수성찬 연회상에 화심(花心)처럼 중앙에 놓아 음식의 미각을 돋우고 품위를 높이며 금상첨화로 시각미를 살렸다. 혼인상에는 봉화를 새겼고 회갑상에는 국화를 썼고 돌잔치 상에는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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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차동 출신의 장식장. 장판덕(張判德)[1905~?]은 일찍이 장식 공방에서 수업을 하여 장식공으로 상경하였다. 서울 장안 부호들의 가구를 보수하면서 금·은·동·철 등에 사군자·십장생도 등을 조각하였다. 모든 조각이 섬세하면서 세련미가 넘쳐 ‘장판덕 장식’이란 이름까지 얻었다. 학계에서도 관심이 깊어 문화재 평가를 받았으나 지정되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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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출신의 대목장. 정용순(鄭龍淳)[?~?]은 청풍 출신으로 일찍이 치목(治木)의 기량과 재능이 뛰어나 평생을 타향에서 건축물의 중수·보수 사업에 종사하여 많은 작품을 남겼다. 비각·정려각 등의 정교한 작품을 남겼고, 나주 지방에서는 ‘정대목’으로 매우 유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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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 출신의 대목장인. 정찬숙(鄭燦叔)은 화순 출신을 대표하는 대목장으로 어려서 장흥 대목으로부터 공법을 전수받아 대목이 되었다. 손기술이 뛰어나고 정예하여 모든 고건축에 솜씨가 능숙하였다. 신의 경지에 이른 기예로 그 앞에서는 한낱 나무의 형태가 예술 작품으로 승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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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서 활동한 부채를 만드는 장인(匠人). 조정달(曺正達)[?~?]은 화순군 능주면에 거주하며 한평생을 제선업(製煽業)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그가 고인이 된 후 제선업의 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개인 소장의 특성으로 인하여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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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출신의 대목장. 조정원(趙正元)은 일찍이 고건축 공법을 연수하면서 당시 유명했던 구례의 도편수 설씨를 만나 정교한 비전 공법을 전수 받았다. 그 후 대목으로 명성을 떨치면서 지리산 이남 지역에서 유명하였다. 많은 사찰에 중수 불사를 도왔다. 대표적인 정교한 솜씨가 순천 송광사에 많았으나 6·25 전쟁 때 모두 소실되어 작품을 찾을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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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출신의 조화 장인. 조형범[?~?]은 화순군과 능주면을 중심으로 각종 애·경사를 치르는 집안의 장식 조화를 활발히 제작하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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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출신의 소목장. 최경만(崔京萬)[1902~?]은 주로 소반을 만든 장인으로 화순군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나 일정한 거주 지역이 없이 자주 이주하여 다녔다. 구족상, 호족상, 반상, 면상, 주안상, 제상 등 모든 상을 만들었으며, 특히 상의 옆 사면에 사군자를 음각으로 새겼으며 또는 낙화를 놓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