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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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盧判順 |
이칭/별칭 | 노성엽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이경엽 |
[정의]
화순군의 한천 농악을 이끌던 국악인.
[활동 사항]
노판순(盧判順)[1919~1992]은 한천 농악[전라남도 지정 무형 문화재 제6호]의 전성기를 이끌던 상쇠다. 1950년대에 마을의 청년들이 농악계를 결성해서 농악 전수를 할 때 중심 역할을 담당하였다. 인근 독상리에 살던 이선일 상쇠를 마을로 초빙해서 생계를 보조해주고 거주하도록 주선했으며, 이선일 상쇠를 통해 짜임새 있는 농악을 전수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노판순은 1959년 이선일 상쇠가 작고하기 전에 농악 전반을 전수하고, 농악 절차와 가락을 적어 놓은 문서를 남겨 놓았다. 그 문서가 지금까지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이런 점에서 노판순은 한천 농악의 체계를 정립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대포수로 활동하다가 나중에 쇠를 배웠다고 하는 노판순은 이론에 밝은 상쇠라고 평가받는다. 가락 연주에서는 전임 상쇠보다 못하지만 가락 진행에 밝았기 때문에 같은 한천 농악의 상쇠 박천한이 미흡한 부분을 많이 채워 주었다고 한다.
한천 농악이 무형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1980년대에 대학생들이 농악을 배우기 위해 많이 찾아왔는데, 이론에 밝은 노판순 상쇠가 열성으로 지도한 까닭에 대학생들이 한천 농악을 더 많이 배워 갈 수 있었다.
[저술 및 작품]
이선일[1895~1959] 상쇠에게 배운 내용을 정리한 「한천 농악」[대학노트 필사, 18쪽]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