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2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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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武浦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무포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인철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무포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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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구간 | 무포리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무포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1.92㎢ |
가구수 | 59가구 |
인구[남,여] | 125명[남자 60명, 여자 65명]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화순군 동면 무포리는 무리동(舞狸洞)·가로포(加老浦) 등 2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명칭 유래]
무포리의 지명은 무리동 마을의 무(舞)와 가로포 마을의 포(浦)를 각각 취하여 만들었다. 무리동 마을에는 문턱샘이 있는데 그 물이 좋아 물골 또는 무리골이라 하다가 한자로 표기하면서 무리동(舞狸洞)이 되었다.
가로포 마을은 원래 갈호(葛虎)라 불렀다고 전한다. ‘갈호’의 뜻은 칡덩굴이 피난민을 보호하여 주었다 하여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또한 가로포 마을은 원래 가리개라 부르는데 물길이 갈리는 곳인 갈림개에서 변천되어 갈림개-갈리개- 가리개-가로개-가로포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개나 포(浦)는 포구를 의미하지만 여기에서는 곳·장소·께를 의미하는 개로 쓰인 것이며 한자로 표기한 것이 포(浦)이다.
[형성 및 변천]
1789년 『호구 총수(戶口總數)』에는 화순현(和順縣) 동면(東面) 무리동리(舞理洞里)로 기록되어 있고 1867년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화순현 동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1895년(고종 32)에는 면·결·호수의 다소(多少)에 따라 각 군의 등급을 정하면서 나주부(羅州府) 화순군(和順郡) 동일도면(東一道面)이 되었고, 1896년(고종 33)에는 13도 실시에 따라 전라남도 화순군 동일도면이 되었다. 1908년에는 능주군(綾州郡) 원화순방 동일도면이 되었고 1912년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에는 능주군 동면 무리동(舞狸洞)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화순군 동면 무포리[가로리·무리동]로 개편되었다.
[자연환경]
무포리는 화순군 동면의 북동쪽에 위치하여 북서쪽에서 남동쪽 방향의 산열이 이루는 골짜기인 옥밭쟁이골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은 산지를 이룬다. 중앙부는 화순천 상류와 규봉로가 통과하며 북서쪽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소규모 들이 펼쳐져 있다. 마을은 동쪽의 산열을 따라 들과 만나는 산록부에 위치하는데 무리동 마을의 동쪽에는 꿀봉·할미실·초봉골·산터골이 있고 서쪽에는 정상골·밥봉·점터골·똥메등·건지봉·진대보·홈거리보·상보가 있다. 남쪽에는 식기등·큰등·낙안터골·고깔봉·동댕이보·외양마지기보가 있고 북쪽에는 리비봉·웃골·미세봉이 있다.
가로포 마을의 동쪽에는 똥메산이 있고 서쪽에는 밥봉·빙기등·밥논·배쟁이·바라굴재·점터굴·정상굴·너리실이 있다. 남쪽에는 범바위·앞산·식기등·방가등·갈모배미·먹굴재가 있으며, 북쪽에는 뒷산·원터·배낭굴·초분굴·용샘·빈터가 있다.
[현황]
무포리는 2012년 현재 약 1.93㎢의 면적에 59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인구는 125명으로 남자가 60명[1구 35명, 2구 25명]이고 여자는 65명[1구 37명, 2구 28명]이다. 무포리는 1구의 무리동 마을과 2구의 가로포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남쪽의 복암리와 북쪽의 마산리, 서쪽의 오동리, 동쪽으로 읍애리와 접하고 있다.
규봉로가 마산리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가며 동남쪽의 국도 15호선과 연결된다. 무포리의 주산물과 주소득원은 벼이며 1구 무리동 마을의 특산물은 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