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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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漢默-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 산 126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희태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862년 4월 29일[음] - 양한묵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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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919년 5월 26일 - 양한묵 사망 |
이장 시기/일시 | 1922년 5월 5일 - 양한묵 묘소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로 이장 |
현 소재지 | 양한묵 무덤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 산126 |
원 소재지 | 양한묵 무덤 - 서울특별시 성동구 금호동[수철리 공동묘지] |
성격 | 근대 유적 |
양식 | 원형 봉토분 |
관련 인물 | 양한묵 |
봉분 크기/묘역 면적 | 1.6m[높이]|3.8m[지름]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에 있는 3·1 운동 민족 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지강 양한묵의 무덤.
[개설]
양한묵(梁漢默) [1862~1919]은 1919년 3·1 운동을 일으킨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 선언서」에 서명하고 3월 1일 태화관에서 개최된 독립 선언식에 참여한 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5월 26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고문으로 순국하였다. 서울 수철리에 안장되었다가 1922년 5월 화순 지역으로 이장하였다.
[위치]
양한묵 무덤은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 앵무촌 마을 뒤 서북쪽 능선의 앵무산 마루에 있다. 이 일대는 명당으로 알려져 충주 박씨와 금성 범씨의 선조 무덤들이 주변에 있다.
[변천]
1919년 5월 24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하여 서울 지역의 수철리 공동묘지[현 서울특별시 성동구 금호동]에 안장되었다. 고향을 그리던 마음을 헤아려 천도교단이 주선하여 1922년 5월 5일 수철리 공동묘지에서 위령식을 거행하고 오후 4시 남대문역[현 서울역]을 떠나서 현 위치에 안장하였다.
[형태]
양한묵 무덤은 높이 190m의 앵무촌 뒤 앵무산 마루에 정북 방향을 등지고 정남향을 바라보는 자좌오향(子坐午向)으로 자리 잡았다. 원형 봉토분의 일반형 무덤이다. 봉분의 높이 1.6m 지름 3.8m이다. 묘역 앞부분은 화강석을 견치석으로 3단~4단 쌓았고, 무덤 바로 앞에 1단의 화강석으로 묘단을 마련하고 소형 묘비석을 세웠다.
[금석문]
무덤 앞에 호패형의 소형 묘비석이 있는데, 앞쪽에 내려 쓰기로 ‘지강 거사 양공 한묵지묘(芝江居士梁公漢默之墓)’, 뒤쪽에 ‘사자 재계 임술 사월 일입(嗣子在桂壬戌四月 日立)’이라 음각되어 있다. 임술년에 양한묵의 아들인 양재계가 세운 것이다. 크기는 높이 74㎝, 너비 24㎝, 두께 9㎝이다.
[현황]
양한묵 무덤은 관리 상태가 양호한 편이며 매년 문중과 국가 보훈처 주관으로 제향을 올린다. 관련 유적으로 화순읍 광덕리 남산 공원에 추모비가 있다. 1965년 8월 화순읍 훈리에 위치한 화순군청 앞에 세웠다가 1984년 10월 26일 충혼탑이 건립되면서 현 위치로 옮겼으며, 박종화가 지은 추모 글이 있다. 태생지인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영계리 영신 마을에는 양한묵이 공부했다고 하는 서당 소심재(小心齋)와 선조를 모신 덕촌사, 1992년에 세운 지강 양한묵 순국비가 있다.
[의의와 평가]
3·1 운동 지도자 33인 가운데 유일한 옥중 순국 지사이면서 유일한 전라남도 출신으로 독립 운동가 양한묵의 무덤으로 근대사 이해에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