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8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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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和順裵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집필자 | 김덕진 |
본관 | 화순 배씨 - 전라남도 화순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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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화순 배씨 입향지 - 전라남도 화순군 |
세거|집성지 | 화순 배씨 세거지 - 전라남도 화순군 |
성씨 시조 | 지타 |
입향 시조 | 배련 |
[정의]
배련(裵練)을 시조로 하는 전라남도 화순군의 세거 성씨.
[개설]
고려 때 국자감 진사(國子監進士)를 지낸 배련이 화순 배씨의 시조이다. 무열공 배현경(裵玄慶)을 중시조로 하는 경주 배씨의 분파 중 하나로 근래에는 경주로 일원화되고 있다.
[연원]
배씨의 도시조(都始祖)는 지타(祗沱)로 신라의 전신인 사로(斯盧)의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 촌장이었다.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왕으로 추대한 공으로 개국 공신이 되었으며 총재태사(冢宰太師)에 올랐다. 32년(고구려 유리왕 9)에 금산가리촌의 명칭이 한지부(漢祗部)로 바뀌었고 배씨를 사성(賜姓)받게 되면서 배씨의 시원이 되었다. 고려 개국 공신 배현경이 중시조이고 후손 배련이 화순 배씨의 시조이다. 배련이 입향하게 된 경위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는다.
[현황]
1558년 배현(裵絢)[1522~?]이 사마시 식년시에 2등으로, 배숙(裵璹)[1524~?]이 3등으로 급제했다. 1573년 배련(裵練)[1526~?]이 사마시 식년시에 3등으로 급제했다. 1579년 배홍렬(裵弘烈)[1547~?]이 사마시 식년시에서 2등으로 급제했다. 1591년 배징(裵澄)[1554~?]이 사마시 식년시에 3등으로 급제했다.
1584년 배응록(裵應祿)[1552~?]이 무과 별시에서 병과로 급제했다. 1586년 배홍렬(裵弘烈)[1557~?]이 문과 별시에서 병과(丙科)로 급제했다. 1651년 배효립(裵孝立)이 무과 별시에 병과로 급제했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주택 총조사 결과에 의하면, 전국의 화순 배씨는 79가구 234명이고, 화순군의 화순 배씨는 1가구 5명이다. 화순 지역에 거주하는 화순 배씨의 수는 적으며 광주, 전남, 경기, 서울 등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