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8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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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獨上里同福吳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 |
집필자 | 최성은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에 있는 동복 오씨 집성촌.
[명칭 유래]
독상리는 한적굴에서 독자를 취하고 생가몰에서 상자를 취하여 독상리라 했다. 마을 내에 한적굴, 생가몰, 잿등, 옥앞에, 살푸정, 재궁골로 구분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시중 오대승(吳大陞)[?~?]을 입향조로 하면서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를 중심으로 세거하는 동복 오씨 집성촌이다. 1220년(고려 고종 7) 무렵 오현좌(吳賢左)[?~?]가 1216년 거란군을 토벌한 공로로 동복군(同福君)으로 봉해지면서 독상리로 입향하였는데 아들 오녕(吳寧)[?~?]도 동복군으로 봉해졌다. 오녕의 손자 오대승은 고려 원종 대 등과하여 벼슬이 시중에 이르고 시호는 문헌(文獻)이다. 탁행명절이 『고려사』에 실려 있다. 후손 호조 판서 오정일(吳挺一)[1610~1670]이 묘정 사적 비문을 짓고 오병석이 신도비명을 지었다. 석등 비각이 있다.
오광찰(吳光札)[1190~?]은 인명전 대장군을 역임했다. 오조영(吳祖英)[1239~1314]은 고려 후기의 국승으로 활동했다. 오한추(吳漢樞)[1802~?]는 효자로 1881년 사액되었고 오효술(吳孝述)[1802~?]은 효자로 1884년 사액되어 석류문이 건립되었다. 오연수(吳然琇)[1845~?]도 효행으로 효자비가 세워졌다. 오재영(吳在永)[1865~1919]은 1909년부터 1911년까지 보성 군수를 역임했다.
오병남(吳秉南)[1878~1949]은 1914년 동복 면장을 역임했고, 오계식(吳啓軾)[1864~?]은 중추원 의관을 역임했다. 오진(吳鎭)[1902~1968]은 1940년대 동복 금융 조합장과 1960년대 화순군 교육 위원을 역임했다. 오지호(吳之湖)[1905~1980]는 서양화가로서, 예술원 회원을 지냈다. 오종악(吳鍾岳)[1907~1959]은 1948년부터 1949년까지 동복 면장을 역임했다. 오연복(吳然福)[1906~1986]은 동복면 부면장과 동복면 의회 의장을 역임했다.
[자연환경]
독상 마을은 동쪽으로 연화봉이 있으며 동남쪽으로는 금계산, 북쪽으로는 학교산이 있다. 서쪽으로는 동복천이 남북으로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 임수 형태의 마을을 구성하고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15가구 23명이 동복 오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독상리 석등은 오대승이 1251년경 자연석 위에 48개의 구멍을 파고 거기에 기름을 부어 밤이면 불을 밝히고 국태민안과 자손번창을 기원했다고 한다. 현재 전라남도 문화재 자료 제62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