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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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茂松 |
이칭/별칭 | 수부(秀夫),창주(滄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권수용 |
출생 시기/일시 | 1577년 8월 23일 - 나무송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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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06년 - 나무송 사마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615년 - 나무송 알성시 병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36년 - 나무송 병자호란 때 임금 호종 |
활동 시기/일시 | 1636년 - 나무송 물염정에 은거 |
몰년 시기/일시 | 1653년 - 나무송 사망 |
출생지 | 나무송 출생지 - 전라남도 담양군 대곡면 구화동 |
거주|이주지 | 물염정 -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373 |
사당|배향지 | 송재사 - 전라남도 나주시 문평면 동원리 서원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금성(錦城) |
대표 관직 | 정랑(正郞) |
[정의]
조선 후기 화순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금성(錦城). 자는 수부(秀夫), 호는 창주(滄洲). 참판 나빈(羅彬)의 후손으로, 나세집(羅世緝)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나율(羅慄)이고, 아버지는 증 장악원 정(贈掌樂院正) 나덕용(羅德用)이다. 어머니는 홍주 송씨(洪州 宋氏) 송정순(宋庭筍)의 딸이고, 부인은 정붕(丁鵬)의 딸과 이영선(李榮先)의 딸이다. 담양 대곡에서 태어났으며, 외할아버지 송정순(宋庭筍)으로부터 동복에 있는 물염정을 물려받았다.
[활동 사항]
나무송(羅茂松)[1577~1653]은 담양 대곡에서 태어나,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15년(광해군 7)에 알성(謁聖) 문과에 합격하고, 이어 거산찰방에 제수되었다. 당시 이항복(李恒福)이 광해군 폐모 사건으로 북청에 유배 생활을 할 때 친밀하게 종유하다가 그가 귀양소에서 별세하자 제문을 지어 영혼을 위안하는 제사를 지냈다.
그 후 예안 현감이 되어 그 지방의 효자 열부의 묘에 보내어 치제하고 또한 퇴계 선생의 묘에 제문을 지어 제사함으로써 평일에 현인을 존경하고 숭모하는 정성을 보였다.
예조 정랑을 역임하고,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파천할 때 임금의 대가를 호종하여 시위하였으며, 속히 돌아가서 임무를 수행하라는 전교에 의해 적의 포위망을 뚫고 임지에 들어가려고 할 때 적이 이미 도성을 점령하고 도로가 막힌지라 임지에 가지 못하고 동지 이명익(李命益)을 만나 순국을 언약하고, 양주에 이르러 상주 목사(尙州牧使) 이유성(李惟誠)과 회암사(會巖寺)에서 서로 만나 눈물을 흘리며 순국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강화 소식을 듣고 물러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동복의 물염정(勿染亭)으로 물러나서 시인 묵객과 더불어 읊조리며 지내고, 정자 모퉁이에 대명단(大明壇)을 축조하고 존주(尊周)의 의(義)로 숭상하였다.
[학문과 저술]
『창주 선생 유고(滄洲先生遺稿)』가 있다.
[묘소]
묘는 전라남도 담양군 고면 불노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전라남도 나주 송재사(松齋祠)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