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9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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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後憲 |
이칭/별칭 | 사술(士述),취한(就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해장 |
[정의]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해주. 자는 사술(士述), 호는 취한(就閒). 아버지는 최홍우(崔弘宇)이다.
[활동 사항]
최후헌(崔後憲)[?~?]은 기골이 장대하고 행실이 엄정(嚴正)하며 능력이 한 나라를 다스릴 만 하였다. 중국 장수 하문진(河文晋)이 다리를 만지면서 말하기를 “이 아이는 반드시 큰 그릇이 되리라.”하고 차고 있던 칼을 풀어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1635년(인조 13) 선공감 주부(繕工監主簿), 1640년 신계 현령(新溪縣令), 1642년 칠곡 부사(柒谷府使)를 지내고, 내직으로 돌아와 1648년 호조 정랑을 지낸 다음 1649년(효종 원년) 상주 목사(尙州牧使)를 거쳐 1652년(효종 3) 개천 군수(价川郡守), 인천 부사(仁川府使)를 지냈다. 1659년(현종 즉위년) 사사로이 군병을 모집하고 군기를 점검하는 관하의 장수를 살피지 않은 죄로 장형(杖刑)을 받고, 파직 당하였다. 그 뒤 1663년(현종 14) 부호군(副護軍)이 되었다.
강화(江華)에 생사(生祠)가 있고 상주(尙州) 삼가(三嘉)에 청덕비(淸德碑)가 있다. 장수하여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