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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601132
한자 始悟
이칭/별칭 계방(桂芳),호의(縞衣)
분야 종교/불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전라남도 화순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미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78년연표보기 - 시오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796년 - 시오 출가
몰년 시기/일시 1868년연표보기 - 시오 사망
활동지 만연사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만연산지도보기
성격 승려
성별
대표 경력 대흥사 천불 조성 참여

[정의]

조선 후기 화순 출신의 승려.

[가계]

세속의 성은 정씨(丁氏). 어릴 때 이름은 계방(桂芳), 호는 호의(縞衣). 아버지는 정삼달(丁三達)이고 어머니는 정씨(鄭氏)이다.

[활동 사항]

시오(始悟)[1778~1868]는 15세에 아버지를, 16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화순 만연사(萬淵寺)에 들어갔다. 1793년(정조 17) 9월 만연사 화재로 중수할 때, 경관(慶冠)이 도료장으로 참여하였는데, 중수를 마치고 만연사를 떠날 때 그를 따라가 1796년 경관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도연(禱演)에게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고, 유일(有一) 밑에서 공부하였다. 그 뒤 계속해서 완호(玩虎)·낭암(朗巖) 등으로부터 『능엄경』·『반야경』·『원각경』·『화엄경』 등 여러 경전을 배워 이에 통달하였고, 완호의 법을 이어받았다.

1817년(순조 17) 경상북도 경주시 기림사(祇林寺)에서 스승인 완호를 모시며 천불(千佛)을 조성하고 배를 타고 돌아오던 길에 풍랑을 만나 일본 나가사키[長崎]까지 표류하였다. 다음해 부산을 거쳐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大興寺)에 봉안하였다. 이후 도장사(道藏寺) 등지에서 머무르다가 1868년 입적하였다.

[사상과 저술]

저술로는 직접 지은 「행장」 1편과 『견문록(見聞錄)』 1권이 있다.

[상훈과 추모]

학문과 덕행이 뛰어나 초의(草衣)·하의(荷衣)와 더불어 삼의(三衣)라 불리었다.

[참고문헌]
  • 강동원 편, 『화순의 고승』(도서 출판 민, 1994)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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