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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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都市化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희송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이 도시가 되어가는 과정 또는 도시적 생활 양식이 화순군 지역으로 확산되고 심화되는 현상.
[도시화와 이농]
도시화는 근대화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데 근대화와 관련된 도시화의 의미는 인구의 대부분이 농촌에 살다가 도시에서 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구의 이동은 단순한 주거지의 변경이 아니라 농촌적인 삶이 근대 산업적인 삶의 방식으로 변모하는 것은 물론 지역 사회의 공간적 변화를 동시에 수반했다. 1970년대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농촌 지역의 경우 이촌 향도((離村向都)[농촌의 인구가 도시로 이동함]현상으로 급격한 인구 감소를 겪게 되는데 화순도 예외는 아니었다.
화순군의 인구는 1967년 15만 1637명으로 최대 인구를 기록한 이후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 이촌향도 현상이 본격화되면서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1974년 13만 7067명, 1984년 9만 9396명, 1994년 7만 274명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이를 보이다가 2004년 7만 5380명으로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으나 2011년 6만 9788명으로 감소하면서 7만 명 선도 붕괴하면서 최저치를 기록한다.
인구 감소는 이농 현상으로도 설명되는데 1970년 농가 호수는 2만 847호에 이르렀으나 2008년에는 무려 1만 2970호가 줄어든 7,877호이다. 농가 인구는 1965년 12만 6811명에서 2008년에는 1만 8605명으로 줄었으며, 경지 면적은 1970년 1만 4800ha에서 2008년에는 1만 2606ha로 2,194ha나 감소하였다.
[화순군 도시화의 특징]
일제 강점기 광주가 전남 도청 소재지로 정해지면서 광주 바로 남쪽에 위치한 화순군은 광주의 도시권 영향에 놓이게 된다. 1970년 화순 너릿재 터널이 개통되고, 1992년 광주를 잇는 국도가 4차선으로 확장되면서 광주와의 거리는 10분대 거리로 단축되었다. 화순읍 광덕 지구 택지 개발 등 고층 아파트 건립이 본격화되면서 더욱 광주광역시의 위성 도시 성격을 지니게 된다.
산업 구조의 측면에서도 화순군은 지역 경제에서 3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남의 다른 군과는 달리 도시형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1996년 3차 산업 인구 74.6%로서 다른 군에 비해 높은 편이며 오히려 시 평균에 가깝다. 이러한 특징은 화순군이 광주광역시의 배후지역으로서 광주광역시에 출퇴근하는 인구가 많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한편 화순군은 농공 단지를 조성해 산업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1988년 능주 농공 단지가 조성된 이후 1991년 도곡 농공 단지, 1994년 동면 농공 단지, 1996년 이양 농공 단지가 순차적으로 개설되었다. 특히, 2004년 화순 전남 대학교 병원이 화순에 들어선 이후 녹십자의 백신 공장, 전남 생물 의약 연구 센터 등이 입주하면서 바이오 메디컬 산업의 중심지로 부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