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5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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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雲莊劇場 |
이칭/별칭 | 대한 석탄 공사 화순 광업소 복지 문화관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위경혜 |
준공 시기/일시 | 1961년 - 천운장 극장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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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천운장 극장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 |
성격 | 극장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오동리에 있었던 극장.
[개설]
천운장 극장은 마을 이름을 따와 부른 것으로 공식명칭은 ‘대한 석탄 공사 화순 광업소 복지 문화관’이다. 천운장 극장은 화순 광업소에서 1㎞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였다. 화순 광업소 복지문화관을 천운장 극장으로 칭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화순군 동면 오동리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한다. 화순군 동면은 화순군 중심부에 해당하는 곳이지만, 대체로 평지가 넓지 않고 임야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악 지대이다. 동면의 복암리·천덕리·오동리 일대는 화순 탄전 중심 지대로 인구 유입이 잦았다. 오동리는 천운 마을, 오곡 마을, 동림 마을이라는 3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천운 마을은 원래 오곡 마을의 일부였다.
해방 이후 대한 석탄 공사의 무연탄 생산이 활기를 띄게 되고, 1956년 화순 광업소가 확장되면서 내빈을 위한 영빈관(迎賓館)을 건립하게 된다. 영빈관은 정면으로 멀리 보이는 천운산 이름을 취하여 천운장이라 하였다. 이후 마을이 확대되면서 1958년 1월 1일부터 천운장이 자리한 마을은 오곡 마을에서 분리되어 천운장(天雲莊) 마을 또는 천운 마을로 불리게 된다.
화순군 동면 복암리에 위치한 화순 광업소는 화순 탄광으로 일반인들에 알려져 있으며 2013년 현재 석탄을 생산하고 있다. 화순 탄광에서 채굴된 석탄은 산업 전용철도인 복암역과 화순역을 거쳐 타지로 운송되고 있다. 화순 광업소는 1905년 박현경(朴賢暻)이 동면 구암리와 복암리 일대의 산야에 광업권을 등록하면서 채탄이 시작되었다. 당시 기관차와 방적 공장의 연료로 쓰인 석탄은 1934년 일본 미쓰이[三井] 기업 계열사인 종연 방직이 화순 탄광 개발에 착수할 정도로 중요한 자원이었다. 화순군 채탄업 활황 시기는 일제 강점기 후반으로 화순 광업소 석탄은 전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메탄가스가 발생하지 않아 화재의 위험이 없고 채탄 작업의 효율성이 높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해방 이후 주택 온방 주요 연료로 연탄을 사용하던 시절, 화순 광업소에서 채굴되는 석탄은 접착력이 좋아 연탄 제조업자들이 선호하는 물산이 되었고 화순 광업소는 활황을 맞았다. 당시 화순 광업소 정규 직원 숫자는 1,362명에 이를 정도였다. 2005년 기준 화순 광업소 연간 채탄 가능 양은 2,100만 톤으로 대한 석탄 공사 전체 물량의 24% 비중을 차지하였다. 요약하면, 화순 광업소는 화순군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5일장이 실시되던 시절, 화순 지역 ‘장날’은 화순 광업소 직원 월급날이라고 부를 정도로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따라서 지역 경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화순광업소의 직원과 가족은 화순읍 중심지인 향청리의 신안 극장은 물론 천운장 극장의 주요 관객이 되었다. 신안 극장에서 영화 배우들의 무대 인사와 공연 예술이 자주 개최된 것 역시 화순 광업소 존재를 의식한 것이었다.
[건립 경위]
대한 석탄 공사 화순 광업소의 활황은 광업소 직원의 증가를 가져왔고, 이들을 위한 문화 시설의 필요성에 따라 1961년 대한 석탄 공사 화순 광업소 복지 문화관이 건립되었다. 화순 광업소 측은 복지 문화관을 약칭하여 문화관이라 불렀으며 화순 광업소 노동조합 간부들이 문화관 관리를 맡았다. 문화관 운영 책임자는 화순 광업소 경비로 재직한 애칭 ‘고바우 영감’으로 불린 사람이었다.
[변천]
천운장 극장은 1961년 건립되었으며, 1983년부터 1992년까지 화순군 예비군 교육장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1980년대 초반 이전에 영화 상영이 중단된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화순 광업소 직원 가운데 자신이 처음으로 근무를 시작한 1974년 12월 이미 천운장 극장이 영업을 중단한 것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천운장 극장은 화순 광업소 직원의 문화생활 증진을 위해 설립되었지만, 극장 운영 방식과 상영 작품은 일반 상설 극장의 것과 동일했다. 천운장 극장의 영화 상영 프로그램 구성은 화순읍 향청리 신안 극장이 맡아서 했다. 신안 극장이 특정 영화 작품의 상영 기간을 5일 배정 받으면 3일은 신안 극장에서, 2일은 천운장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였다.
보통 신안 극장에서 영화 상영이 종료된 영화 필름 전체를 천운장 극장으로 가져와 상영하였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동일한 날짜에 동일한 작품을 신안 극장과 천운장 극장에서 동시에 상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신안 극장에서 상영이 끝난 필름 가운데 하나의 릴(reel)을 시차를 두고 천운장 극장에서 상영하는 방식이었다. 1970년대 전국적으로 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천운장 극장을 찾는 관객은 줄어들었다. 천운장 극장을 가끔씩 찾은 관객은 화순 광업소가 위치한 화순군 동면 복암리와 이서면 주민들이었다.
[현황]
천운장 극장은 현재 극장 건물 자체가 철거되어 극장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1981년 건립된 화순 광업소 직원들의 주거지이자 천운장 극장 바로 뒤편에 자리했던 석공 연립 주택 역시 현재 폐건물로 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