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16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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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書堂 |
이칭/별칭 | 학당,학방,숙(塾) |
분야 | 문화·교육/교육,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
집필자 | 박명희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에 생활 근거를 둔 사족(士族)과 백성이 주체가 되어 면·동·리를 단위로 설립한 초·중등 단계의 사설 교육 기관.
[개설]
서당의 역사적 기원은 삼국 시대부터 시작되는데, 첫째, 사숙(私塾) 또는 독서당, 둘째, 동계 서당(洞契書堂), 셋째, 훈장이 자영(自營)하는 서당, 넷째, 문중 연립 서당 등이 있다. 이 중 셋째 경우의 서당은 학자가 만년에 자연을 벗 삼아 후진을 가르치는 형태인데 당(堂)이나 재(齋) 또는 정사(精舍)로 구분하여 운영하였다. 서당에서는 주로 강독(講讀)·제술(製述)·습자(習字) 등의 교육이 이루어졌다.
[화순의 서당]
전라남도 화순군에는 명학재(鳴鶴齋)·백암 정사(白巖精舍)·부춘 정사(富春精舍)·사송당(四松堂)·삼계 정사(三溪精舍)·수산 정사(壽山精舍)·염수당(念修堂)·영귀정(詠歸亭)·죽림재(竹林齋)·취월정(醉月亭) 등이 있다.
1. 명학재
명학재[명학정]는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차리1구에 있는 누정 유형의 서당으로 이경덕(李敬德)을 기리기 위해서 세웠다. 원래 명학정이 있던 자리는 이경덕의 유허지(遺虛址)인데, 그의 손자 이지무(李枝茂)가 할아버지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건물을 세웠다. 명학정이 처음 세워진 시기는 20세기 초엽 정도로 추정하고 있는데, 근래 들어 건물이 노후해 도비와 군비 지원을 받아 2006년 12월 재개축에 착공였고, 2007년 6월 말에 준공하였다.
2. 백암 정사
백암 정사는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천암1구에 있는 문재희(文載熙)의 강학소(講學所)로 백암사(白巖祠)라고 불리기도 한다. 백암 정사는 그 건립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문재희의 생몰년을 따져볼 때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근대기에 세워진 전라남도 화순군의 한 강학소로서 교육을 한 주체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공간이다.
3. 부춘 정사
부춘 정사는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부곡1구에 있는 문달환(文達煥)의 문인들이 건립한 정사로 문달환이 만년에 학문에 힘을 쏟았던 곳이다. 문달환은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으로서 1906년 4월 무성 서원에서 최익현이 의병을 모집하자 임병찬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가 일본 대마도까지 끌려가 가혹한 고문을 받았는데, 풀려난 이후 두문불출하며 학문을 연마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부춘 정사는 일제 강점기 애국 의지를 보여준 문인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공간적 의의를 지닌다.
4. 사송당
사송당은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어리에 있는 양주남(梁柱南)의 강학소로 11대 손자인 양규승(梁圭承)이 1979년에 다시 건립하였다. 양주남의 외할아버지는 해광(海狂) 송제민(宋齊民)이다. 양주남은 은봉(隱峰) 안방준(安邦俊)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았고, 병자호란 당시 안방준이 의병을 일으키자 함께 의병 활동을 하였다. 따라서 사송당은 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의병 활동을 했던 사대부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 공간이다.
5. 삼계 정사
삼계 정사는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에 있는 문세정(文世禎)의 강학소이다. 문세정은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 당시 서인 세력이 대거 축출당하거나 사사(賜死)되던 시기에 도내의 유림을 대표하여 상소문을 올렸다가 화를 입고 은거하면서 정사(精舍)를 구축한 후 후진을 양성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삼계 정사는 『능주 읍지(綾州邑誌)』 등의 기록에 따르면, 삼벽정(三碧亭)으로도 불리었다고 한다.
6. 수산 정사
수산 정사는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만수리에 있는 배석면(裵錫冕)의 강학소이다. 배석면은 일신재(一新齋) 정의림(鄭義林)의 문인이다. 수산 정사의 건물은 현대에 세워진 것으로 화순 지역의 교육열을 엿볼 수 있는 공간적 의의를 지닌다.
7. 염수당
염수당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오류리에 있는 양우승(梁佑承)의 강학소이다. 사실 염수당은 양우승의 아버지인 양회한(梁會澣//梁會翰)이 건립하고, 주로 양우승이 활용했다고 할 수 있다. 양우승이 지은 「염수당기」에서 아버지인 양회안이 강학소를 지은 목적을, “너희들은 뜻이 서지 못하고 배움이 이루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근심하여 이 집을 짓고 이 책들을 장서하였다.”라고 서술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 화순 지역 강학소를 이해할 수 있으며, 당시 학맥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 수가 있다.
8. 영귀정
영귀정은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칠송리 칠송 부락에 있는 정의림(鄭義林)의 강학소이다. 정의림은 노사(盧沙) 기정진(奇正鎭)의 3대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정의림의 문집인 『일신재집(日新齋集)』의 「영귀정기(詠歸亭記)」에서 “임진년 봄에 칠송 마을에 강당 터를 정하고 가을에 역사(役事)를 시작하여 이듬해 겨울 12월에 낙성을 하게 되었다.[壬辰春 卜地于七松之里 秋設役 越明年冬十二月落之]”라고 한 것으로 보아 임진년인 1892년에 터를 닦아 1893년 12월에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호남 교육의 산실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9. 죽림재
죽림재는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초방리에 있는 양회갑(梁會甲)이 강학소로 활용했던 장소이다. 양회갑은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으로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과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에게서 수학하였다. 일제 강점기 호남을 대표하던 문인 양회갑이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 장소라는 데서 의의를 가진다.
10. 취월정
취월정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건립되었다고 추정되는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월곡리에 있는 회운 처사(晦雲處士) 김용현(金容玹)의 강학소이다. 취월정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엽 화순 지역 강학의 양상을 알 수 있는 공간으로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