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20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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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凝翠樓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미선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474년 - 응취루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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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생년 시기/일시 | 1496년 - 임억령 출생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568년 - 임억령 사망 |
성격 | 칠언 율시 |
작가 | 임억령(林億齡) |
[정의]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 객사 남쪽에 있던 응취루에 대해 임억령이 읊은 한시.
[개설]
한시 「응취루」의 작가 임억령(林億齡)[1496~1568]의 자는 대수(大樹), 호는 석천(石川)이며 본관은 선산이다. 그가 담양 부사로 내려오자 인재(忍齋) 김성원(金成遠), 송강(松江) 정철(鄭澈),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이 그의 문하에 들어가 시학을 배웠으며, 사람들은 이들을 성산동(星山洞) 사선(四仙)이라고 불렀다. 임억령의 사위이자 제자인 김성원이 서하당(棲霞堂)과 식영정(息影亭)을 지었는데, 임억령은 서하당에서 거주하였고 식영정에서 많은 시를 지었다.
시의 배경인 응취루는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남쪽에 있던 정자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하여, 『동복군 읍지』, 『동복현 읍지』, 『호남 읍지』 등에 모두 등재되어 있으나 현존하지는 않는다. 원래 객관(客館)의 남문루(南門樓)였으며 1474년(성종 5)에 현감 유의(柳誼)가 건립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현감 황진(黃進)이 이곳에서 의병을 모았다.
[구성]
먼저 응취루에 오게 된 과정을 읊은 후, 응취루 주변의 풍경을 재치 있게 표현하고 있다.
[내용]
부재참괴죽부분(不才慙愧竹符分)[재덕 없는 이 몸이 분부를 받음이 부끄러워]
내와강남곡구운(來臥江南谷口雲)[강남 고을 찾아들어 구름 속에 누웠노라]
원율과권공노모(園栗過拳供老母)[주먹보다 큰 동산의 밤은 노모께 드리고]
계어영척공명군(溪魚盈尺貢明君)[한자 넘는 개울 물고기 임금님께 진상코자]
임심산귀황혼출(林深山鬼黃昏出)[숲이 깊어 황혼에 산도깨비가 나오고]
지벽강원백주문(地僻江猿白晝聞)[궁벽한 강가에는 낮에도 원숭이소리 들린다]
왕왕성남최대처(往往城南崔大處)[성남에 사는 최대처가 이따금 찾아와]
온청해소취운운(穩聽諧笑醉云云)[해학과 취한 웃음 항상 듣고 즐기노라]
[특징]
운(雲), 군(君), 문(聞), 운(云)의 운자를 사용하였다.
[의의와 평가]
응취루는 현존하지 않지만, 시 「응취루」가 전하고 있기 때문에 밤이 있는 동산, 물고기 많은 개울, 깊은 숲 등 당시 응취루 주변의 풍경을 상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