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C02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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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회치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마을/마을 이야기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도장 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옥희 |
[그때가 시절이 좋았지]
농사일 하랴, 살림하랴, 도장 마을 여성들은 늘 시간이 부족했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도 친한 부인들끼리 모여 노는 즐거움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은 여성들이 바쁜 농사일에서 잠깐 해방이 되는 날이다. 시부모님 눈치 덜 보는 집에 옹기종기 모여서 놀다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한다.
“친한 부인들끼리 집에 모여서 놀았어. 비가 오면 놀고. 계란 삶아 먹고. 장구치고 놀고. 수건놓기도 하고 종지도 돌리고. 그때가 시절이 좋았지. 지금 같으면 남의 밭에 감자 캐먹으면 불량하다고 하겄지만 그때는 감자도 캐서 먹고 파도 뽑아서 숙지해먹고 보리 비어 와서 밤새 비벼서 솥에다 덖어 먹고 그랬어.”(김금순)
[보리가 놀짱 놀짱할 때 회치를 가]
특히 마을 여성들이 총동원되는 화전놀이는 제일 재미진 날이었다. 도장 마을에서는 화전놀이라는 말 대신 ‘회치한다’고 표현한다.
“여그서는 화전놀이 한다고 하잖애[하는 것이 아니라] 회치한다고 해. 늦은 봄이여. 따땃할 때. 보리가 [누렇게 익어] 놀짱 놀짱할 때 회치를 가.”(구순임)
보리가 누렇게 익어갈 무렵에 마을 부녀자들이 삿갓봉 기슭이나 백파정이 있는 뒷산 산몰랭이 반반한 데에다 자리를 펴고 하루 종일 준비해 간 음식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춤추며 신나게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회치를 가기 위해 미리 준비를 하는데 집집마다 쌀을 걷어서 쌀밥을 짓고, 맛나게 새김치도 담그고, 돼지고기를 삶고, 미나리 넣고 홍어도 무친다. 그때는 집집마다 미나리방죽이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미나리 방죽에 관한 재미난 기억들을 갖고 있었다.
“놈[남] 논에다 줄줄이 해놔. 이녁이[각자] 칸칸이 딱딱 막어갖고. 그래갖고 아궁이재 갖다가 붓고. 그때는 비료도 없네. 재 갖다가 부으면 젤로[제일] 껌허니[싱싱하니] 좋아. 미나리 방죽하면 그놈 물보러 가고 재밌어. 애기 때 늘 물보러 갔어.”(김재님)
비료나 농약 대신 아궁이에서 나오는 재로 거름을 주고 키운 미나리니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았을 것이다. 할머니들이 어렸을 때는 미나리방죽 물 보러 가는 일도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할머니들께 회치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귀가 솔깃했다. 산에 가서 음식을 차리는 방식이 생소했기 때문이다.
“미영베를 갖고 가서 쫙 깔고. 거기에다 밥을 붓어.”(구순임)
주민들은 산에 가서 반반한 곳에다 새하얀 미영베를 쫙 깐 다음 그 위에 하얀 쌀밥을 부어놓고 먹었다고 한다. 무거운 사기그릇 대신 흰 미영베를 그릇으로 사용한 것이다.
[장구는 장글 장글, 춤은 도구방애]
음식을 먹고 나서는 장구 반주에 노래 부르고 춤추며 신나게 놀았다. 아침 일찍 산에 가서 저녁나절까지 놀고 어둑어둑해지면 내려왔다. 때로는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노들강변」, 「창부 타령」, 「노래 가락」, 「아리랑 타령」 등을 주로 부르며 놀았다고 한다.
“놀고. 장구치고 영 재미졌어. 장구는 장글장글 치고 춤은 도구방애쳐(도굿대방아). 장구소리 맞춰서 뛴 것이여. 그때가 좋았어.”(김재님)
김재님 씨는 그때 추던 도구방애 춤 흉내를 내며 웃음을 짓는다. 도구방애 춤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도굿대가 위 아래로 움직이듯이 위 아래로 몸을 움직이며 마음껏 추는 춤이라고 한다.
「노들강변」
“노들강변에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 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돌려서 매어나 볼까
에헤이요 에헤헤요
봄버들도 못믿을 이로다”(김재님)
「진도 아리랑」
“무정 세월아 오고가지를 말어라
아까운 내 청춘 다 늙어간다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이러다 저러다 나 죽어지면
어떤 애 친구가 날 찾아올게
아리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애 얼씨구 아라리가 났네
무정한 기차는 날 실어다 놓고
한고향 생각이 저절로 난다”(김재님, 구순임)
부녀자들 중에서도 유난히 잘 놀고 장구도 잘 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저그 민등덕이라고 지금까지 살아 있소. 88살 잡솼어. 그 양반이 장구 잘쳤소. 용암덕[영암댁]도 잘 치고. 금천덕[금천댁]도 잘 치고. 새평아짐이라고, 그 양반이 참말로 잘 쳤는데 폴새[벌써] 돌아가셔 불었소.”(김재님, 구순임)
할머니들은 그때 장구도 잘 치고 즐거움을 알던 분들이 어느새 고인이 되시거나 나이가 많으셔서 더 이상 활발하게 활동하지 못 하신다며 아쉬워하신다. 도장 마을에서 회치를 안 하게 된 것은 회치 대신 버스로 관광을 다니게 되면서부터이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회치를 안했다고 한다. 버스타고 관광을 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회치만 못하다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올 봄에는 보리가 놀짱 놀짱 익어갈 무렵에 도장 마을에서 회치 한 번 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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