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C03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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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생활·민속/민속,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마을/마을 이야기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 도장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미옥 |
[막걸리 같은 질박함이 묻어나는 사람]
2012년 12월 도장 마을 축제 현장에서 가장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인근 마을에서 오신 손님들도 맞이하고, 마이크와 앰프도 손보고, 연 날리는 아이들도 살피고, 감색의 누빔 한복을 정갈하게 입은 도장 마을 민속 지킴이 김성인 씨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조사자들과 잠시 짬을 내서 막걸리 한 사발 마실 여유를 찾는다.
“내가 한 이십 살 먹었을 땐디. 외갓집에서 막걸리를 처음 먹어봤는데 입에 딱딱 붙는거요. 그래서 그 후로 막걸리 얻어 먹을라고 외가에를 몇 번을 갔는지 몰라요. 설에 가고 보름에 가고 또 하드랫날[음력 2월 1일]에 가고. 어찌나 막걸리가 맛있던지 잊을 수가 없어요.”
막걸리 맛에 심취해 있는 김성인 씨는 막걸리처럼 소박하면서도 질박한 맛이 있는 사람이다.
[농민 운동과 농우회 활동]
김성인 씨는 1958년에 이곳 도장리에서 출생했다. 그즈음의 도장리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그도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운 형편에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대는 젊은 대학생들의 뜨거운 열정을 요구하던 때였기에, 그 역시 시대의 사명을 온 몸으로 짊어지고 나갔단다. 결국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던 해인 1980년에 다니던 대학에서 제적을 당해 결국 고향으로 내려왔는데, 당시 자신의 눈에 비친 농촌의 현실은 참담했었다고 한다. 농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강제 농업 정책과 본격화되는 수입 개방 등 척박해지는 농촌의 현실은 김성인 씨를 농민운동에 나아가게 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면, 농협 측과도 마찰도 있었고 하마터면 삼청 교육대에 끌려갈 뻔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우리 마을에서는 ‘부모한테 불효하는 놈, 성희롱 하는 놈, 폭력 행사하는 놈’은 강력하게 제재를 했어요. 그런데 나는 폭력행사에 해당되었다고 해서 당시 유산각에서 열린 마을 회의에 붙여졌지요. 다행히 워낙 단결이 잘 되는 자자일촌하는 마을이라 어른들의 훈계만 받고 그냥 무사할 수 있었지요.”
그런 일이 있은 후에 김성인 씨는, 체계적으로 농촌 운동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스물세 살 때부터 ‘가톨릭 농민회’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줄기차게 농민 운동을 벌여오던 김성인 씨는 지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지방 자치제가 실시된 1995년 화순 지역 선거에서 군의원으로 당선되어 2002년까지 7년간 의정 활동도 펼치게 된다.
[도장 마을의 민요를 수집하다]
1980년대의 시대적 혼란 속에서 도장 마을로 내려온 김성인 씨는 농촌의 현실에 대한 개선과 함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마을 민속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우리 마을의 「상여 소리」를 배우자고 했던 것이 계기가 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상여소리가 잊혀지면 안 되니까 이를 같이 배워보자 했던 것이, 상여소리를 넘어서 민요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이죠. 그래서 1984,5년 무렵 본격적으로 마을 민요들을 채집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기록해 보니까 노래가 무려 80여 곡 되더라고요.”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그는 마을의 민속을 체계적으로 보존 전승시켜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1996년에 마을 사람들과 함께 ‘도장리 민속 보존회’를 결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느 농촌과 마찬가지로 마을 사람들의 고령화는 마을 민속의 보존과 전승을 어렵게 하고 있어서 걱정이란다.
“당연히 힘들어요 지금. 그때 당시에 40대 50대 됐던 분들이 지금은 거의 70대 80대 되버리니까 힘들죠. 민속 보존회가 맨 노인분들만 있으니까. 연습하기도 힘들고 뛰기도 하고 율동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래서 우리 마을 출신들 중에서 광주권에 있는 사람들을 좀 모아보자. 그래가지고 민속 보존회를 보강을 해서, 마을분들만 아니라 출향인사들까지 협력해서 하면 마을과의 유대감도 강화될 것이고...”
민속이 마을 안의 마을 사람과 마을 밖의 마을 사람을 이어주는 끈끈한 줄이 되어 줄 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도장 마을 민속지킴이 김성인 씨는 도장리가 가지고 있는 전통의 힘을 믿기에 앞으로도 도장리 민속의 전승은 희망적일 것이라고 말한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