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6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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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潘鳳甲 |
영어공식명칭 | Ban Bong-gab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하지영 |
출생 시기/일시 | 1898년 1월 18일 - 반봉갑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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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4일 - 반봉갑 밀양 태룡리 장터 만세 운동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11월 20일 - 반봉갑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태 90대 언도 |
몰년 시기/일시 | 1944년 8월 7일 - 반봉갑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5년 3월 1일 - 반봉갑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미촌리 - 경상남도 밀양군 단장면 미촌리 475 |
활동지 |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반봉갑(潘鳳甲)[1898~1944]은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미촌리에서 1898년 1월 18일 태어났다.
[활동 사항]
반봉갑은 1919년 4월 4일 경상남도 밀양군 단장면(丹場面) 태룡리(台龍里) 시장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태룡리 시장 시위는 1919년 3월 20일경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通度寺) 승려와 밀양군 단장면 표충사(表忠寺) 승려들이 모여 계획한 것으로, 4월 4일 태룡리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이후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들며 시위를 준비하는 한편 인근 사찰과 단장면, 산내면(山內面), 산외면(山外面) 등으로 계획을 알리며 농민 등 지역민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태룡리 장날인 4월 4일 정오 무렵 시장에는 5,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있었다.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앞세우고 선두에 선 표충사 승려들이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시작하자 군중이 이에 호응하여 일제히 “만세”를 고창하였다. 반봉갑은 군중의 일원으로 시위에 참여하여 “대한 독립 만세”를 크게 외쳤다. 시장 곳곳을 행진하던 군중들은 단장면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헌병 등을 공격하였다. 밀양군 읍내에 있던 밀양헌병분견대에서 헌병들이 급파되었고,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하는 등 무력을 행사하며 진압에 나서자 오후 1시 30분경 군중들이 해산하였다.
이날의 만세 시위로 300여 명이 검거되고 70여 명이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반봉갑 역시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11월 2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요 혐의로 태 90대를 언도받았다. 반봉갑은 1944년 8월 7일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반봉갑에게는 2015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