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6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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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道一 |
영어공식명칭 | Seong Do-il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하지영 |
출생 시기/일시 | 1864년 1월 6일 - 성도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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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4일 - 성도일 밀양 태룡리 장터 만세 시위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10일 - 성도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태 90대 언도 |
몰년 시기/일시 | 1939년 10월 31일 - 성도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6년 - 성도일 대통령 표창 추서 |
출생지 | 성도일 출생지 - 경상남도 밀양군 단장면 구천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성도일(成道一)[1864~1939]은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군 단장면 구천리에서 1864년 1월 6일 태어났다.
[활동 사항]
성도일은 1919년 4월 4일 밀양군 단장면(丹場面)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4일의 시위는 3월 하순 양산 통도사(通度寺) 승려들이 밀양 표충사(表忠寺)를 방문하면서 계획되었다. 승려들은 4월 4일 태룡리(台龍里) 장날에 거사를 치르기로 결정한 후,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만들며 시위를 준비하였다. 이어 인근 사찰과 단장면, 산내면(山內面), 산외면(山外面) 등으로 계획을 알리며 농민 등 지역민들의 참여를 독려하였다.
시위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성도일은 주민들과 함께 단장면 사연리(泗淵里)로 갔다. 사연리에는 이미 각 마을에서 모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대형 깃발 아래 선 수백 명의 군중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정오 무렵에는 태룡리 시장으로 이동하였다.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든 표충사 승려 등이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시장에 모인 5,000여 명의 군중들이 이에 호응하여 일제히 “만세”를 고창하였다. 군중들은 열을 지어 시장 곳곳을 행진하였고, 일부는 단장면 헌병주재소로 몰려가 헌병 등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밀양군 읍내에 있던 밀양헌병분견대에서 헌병들이 급파되었고,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하는 등 무력을 행사하자 군중들은 오후 1시 30분경 해산하였다.
1919년 4월 4일 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체포된 성도일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태 90대를 언도받았다. 성도일은 1939년 10월 31일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2006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